페달 키트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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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키트 만들어본 게 참 오랜만이라 어렸을 적 생각도 나고 재밌겠다란 생각도 들고 중고로 들이지 않길 잘했단 생각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 같은데, 당시에 전자키트가 붐이었다. (덕택에 엄청나게 많은 중생들이 불행한 인생 한번 살아보겠다고 엄청난 경쟁률을 뚫기 위해 목숨 거는 일이 생겨났다만) 당시에 이런 키트가 살짝 럭셔리하게 만들어져서 동네 문구점에서 팔리기도 했고, 합리적인 가격의 실속 키트는 소위 ‘청계천’이라 불리던 종로 세운 상가에서 많이 팔았다. 물론 애플 II의 전성시대에 플로피 디스크로 S/W 복제 천국이기도 했지만. 지금의 청계천 이미지가 관광명소의이미지라면 과거 ‘청계천’의 이미지는 (글쎄 나만 그랬을지 모르지만) 도색잡지와 비디오를 유통하던 이들의 주 활동 무대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였달까?
더 웃긴 건 내가 대학 신입생 시절에도 그분들 여전히 왕성히 활동하셨다는 거다. 당시 학교 교육보다 많이 어드밴스드한 공부를 하려면 일본의 기술서적이나 잡지 같은 것도 봐줘야 하고, 나름 컴퓨터로 설계도 해보고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설계한 걸 실현해보려면 세운상가의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었는데, 용산에 전자상가가 새롭게 생긴 다음에도 대형 뷔페식 부품 소매점 (석영전자? 아직도 있나?)과 그런 대형 매장이 취급하지 않는 다양한 부품을 취급하던 상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종로구 장사동에 자주 갔었다. 물론 그 근처의 서점, 극장들, 음반 가게 등등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이것들과 함께 기억나는 얼굴과 이 느낌은 뭔가? 정신차리자.
지금은 왠만한 상점들이 온라인으로 이동했으니 그저 업무 외시간에 인터넷을 떠돌아다니거나 밤늦게 퇴근해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쇼핑할 시간이나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실상은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니 답답함을 감출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저 럭셔리한 상가를 돌아다니며 사지도 않을 터무니없이 비싼 물건들을 흘깃거리며 빈부격차의 문제라든가 자신의 능력없음을 재산을 나눠주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며 쓰디쓴 침을 삼키는 불쌍한 인생들의 삶이 마치 보편적인 사람들의 삶인 양 하며 살아가는 것도 지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추억을 부르는 이 키트는 몹시나 불친절하게도 아무런 가이드 없이 달랑 부품만 날아오기 때문에, 초등학생도 만들 수 있는 키트가 아닌 적어도 회로도를 들여다 보며 뭘 어디에 어떻게 달아야 할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사람만이 힘들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다. 거기에 모든 부품이 들어있는 패키지도 아니라 이것 저것 부품도 살 줄 아는 센스도 필요하다.
다용도실 구석에 쳐박힌 내 부품 창고에 가보니 그 옛날 틈나는 대로 사모아둔 부품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나름 럭셔리한 구성의 50와트 앰프를 만들겠다고 사둔 트랜스포머며 말로리/스프라그의 전해콘이며..지금은 다들 스스로 용도를 잊은 채 잠만 자고 있을 뿐..
1시간 작업 결과..(생각보다 잡 노가다가 매우 많다)
진공관으로 만들었으면 한 대가 거의 다 완성되었어야 되는데, 겨우 기판에 부품 올려 땜한게 전부다.
나머지 다 끝내려면 1시간 더 필요할 듯. 그냥 새거 살 걸 그랬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