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앰프를 만들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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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좀 게으른 탓도 있고 호기심이 에전 같이 않은지라, 또 호기심을 발동시키면 그 호기심 해결을 위해 들어가는 시간이 만만치 않은지라 (물론 해결하는 동안에 흐르는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기에 언제 흘러버렸는지도 모른다) 탐구 생활은 최근 몇년간 엄청나게 자제하고 있는데, 이젠 아무 생각않고 그냥 살까 한다. 어젠 퇴근해서 집안에 널려져있는 것들을 치우면서 ‘오늘 하루에 마신 콜라가 몇 개인가’ 생각하며 ‘이렇게 많이 먹으면 칼로리가 얼마고 칼슘손실이 얼마고..!@#*&!@#’ 하는 걱정을 하고 있는 날 발견했다. 시간을 되돌려서 10년전 혹은 20년전이라면 내가 그날 콜라를 몇 잔이나 마셨는지 기억 하긴 고사하고, 아마도 누군가 콜라를 끝없이 제공했다면 적어도 배가 부를 때까지계속 들이키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 인생살이에 도움이 안되는 이러한 잡념들이 날 괴롭게 만들었구나 생각했다. 앞으로는 매순간 재미있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하고 즐기고 더 이상의 생각은 하지 않기로 맘 먹었다. 이제 각설하고, 앰프에 관심이 있어서 누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혹여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봤는데, 증폭회로가 나오면 대부분 바이어스라는 말이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데 그 bias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먼저 설명해주어야 할 것 같다. Bias라는 것은 증폭소자 (트랜지스터/진공관)가 설계된 조건에서 제대로 돌게하게끔 전압 조건을 맞춰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트랜지스터나 진공관이 증폭하는 기능이 있다고 잘 알려져 있지만, 이것들은 원래 그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기 보다는, 실험실에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다 보니 이런 성질이 있구나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다시말하자면 증폭소자를 사용하는 사람에 편의에 맞춰진 물건이 아니라서 사용하는 사람이 이 물건의 까다로운 성격을 잘 맞춰주어야 우리가 목표로하는 증폭효과를 얻을 수 있단 얘기 되겠다. 그와 함께 그래프에 곡선을 엄청 그려주고 부하선(Load line)도 그려주고 이런 저런 수식들을 꺼내놓기 시작하면 아마도 앰프 고수들도 그 사람이 너무 분석적이지 않다면 흥미를 잃게 된다. 사실 이러한 내용은 전기/전자 공학 전공하는 친구들이 1학년때 배우는 과정이다. 전공하기로 맘 먹었다면 그 이후로도 쭉 하게 되겠지만, 어차피 이런 소자들은 요새의 연구 아이템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기에 전공분야 학생이라도 제대로 알리 만무하다. 요새는 이것이 전기/전자공학의 생기초이긴 하지만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배우려는 사람도 없고, 배워봐야 취직에 아무런 도움도 못주다보니 아예 하지 않는 곳도 많은 것 같다. 특히 전기회로 과목은 유사한 과목인 전자기학과 함께 새로 부임한 교수들의 전담 과목이기도 하다. 어떤 과는 아예 교수급도 아닌 강사급에게 일임하기도 한다. 왜냐면 이 사람들은 말을 잘 듣고 성실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목들은 기본적으로 자연현상이나 원리를 배우는 과목인데 대부분은 연습문제를 푸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전자/전기 공학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이지만 그만큼 잘 알고 잘 가르칠 사람이 없는 거다. 열정은 더더욱이나 없고 말이지 (좋은 강사/교수를 만나는 경우는 교과서와 상관없이 실험이나 응용분야를 가지고 한학기 내내 스스로 설계하고 분석할 능력을 갖추게끔 키워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계속 글이 옆길로 새는데, 실제로 작은 신호를 크게 만들어주고 하는 일이 흔히 ‘곱하기’를 생각하는 것과 같이 단순하진 않다. 그저 트랜지스터나 진공관 하나를 회로 상에 끼워넣으면 입력신호가 수십배 커지고 그러면 오죽 좋겠냐만 (그러면 아마도 진작부터 수많은 엔지니어들은 집에 가서 놀아야 되었을 듯) 실제로는 정말로 다양한 요소/성질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내가 50배 증폭하는 회로를 만들고 싶다고 해서 모든 주파수에 골고루 50배의 증폭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부하를 뭘로 붙이느냐에 따라 50배가 되기도 하고 아니게 되기도 하고, 또 주파수에 따라 50배가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한다. 또 입력 신호의 크기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50배가 되기도 하고 아니게 되기도 하고. 기타 앰프를 만들겠다는데 도무지 왜 이렇게 복잡한 게 많으냐 불평할 수 있다. 정말로 그렇다. 쓸데없이 괜히 복잡하다. 나는 마샬소리가 나는 앰프를 만들고 싶다, 아니면 메사부기처럼 값비싼 앰프를 만들고 싶다거나, 이 앰프들은 도무지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길래 그런 소리가 나는 거냐 이런 게 궁금한 건데, 이해할 수 없는 그래프만 그리고 있으니까 답답할 밖에. 결국 시작도 해보기 전에 나가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걸 다 떠나서 그냥 기타 앰프 회로를 바라보자. 당장에 triode 한개를 가지고도 엄청난 그래프와 썰이 풀리고 있는데, 기타 앰프 회로는 이게 못해도 4-5개씩 박혀있다. 그래프로 그리자면 엄청나게 복잡한 그래프가 될 것 같고, 천재가 아니면 도무지 만들거나 생각할 수도 없는 물건이란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러나, 기타 앰프 회로를 잘 보면 이상하게 뭔지 모를 허접함이 보이기 시작한다. 앰프 회로를 만들때 대단한 고민을 해서 만들어진 게 맞는지, 하나의 앰프 안에서도 같은 패턴이 여러 번 반복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메이커와 모델이 다르더라도 같은 모양의 패턴이 들어가 있는 일이 다반사다. 회로를 그리는 방법만 다를 뿐이지 내용이 같은 경도 많고. 앰프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 유명한 어떤 주자의 세팅이다 하면서 볼륨 노브 트래블/미들/베이스 노브 돌려놓은 값이며 스위치 세팅을 신주단지 다루듯 노트도 해놓고 정리도 해놓기도 하는데, 막상 앰프를 만들어보면 부품값도 대충 이것 저것 써서 만들어도 소리의 별 차이가 없음을 느낀다. 어떤 것들은 원래 값보다 다른 부품을 썼을 때가 더 좋게 들리기도 한다. 그 이유는 정말로 ‘대충 만들었기 때문이다’라고 난 생각한다. 심심할 때 마다 생각나는 것들을 계속 적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