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진다는 것..2

새로운 곳에 이사온지 이제 3달반 정도가 되었다. 그리 빠르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은 거의 한달만에 익숙해졌다. 여전히 이것 저것 낯설기는 하지만. 또 탐색해봐야 하는 구석도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그런 모험을 즐기지도 않지만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냥 단지 좁은 내 세상안에 갇혀있고 싶은 생각이라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다. 3달 전까지 내가 어느 곳에서 살고 있었는지 내 머리와 내 몸이 완전히 잊어가고 있다. 물론 다시 돌아간다면 용케 기억을 해내겠지만. 그립다거나 돌아가고 싶다거나 가만히 있어도 생각이난다거나 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기억해내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가 스스로의 과거를 그리위하고 돌아가고 싶어하고 하는 것은 스스로 뭔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싫어서다. 그 사람이 무작정 과거지향적이다 할 것이 아니다. 사람은 비교할 대상이 없을 땐 당장 가진 것이 만족스럽든 아니든 불평하지 않지만,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비교할 것이 생겨버리면 좋은 점이 뭔지 나쁜 점이 뭔지 비교하려고 든다. 당장 가진 것의 좋은 점은 당연시하는 대신 나쁜 점은 부각하려든다. 100개 중 99개가 만족스러워도 99개가 어떤 만족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만족스럽지 못한 1가지 때문에 괴로워한다. 돌아가고 싶어하고 그리워한다. 막상 그 사람에게 그 둘을 딱 1번만 바꿀 수 있게 선택권을 준다면 과거의 것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현재가 100% 만족스럽지 않다면 말이다. 그 불만족이 어디서 나왔는지 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겠지만 곧 다시 후회할 것이다. 또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들어 비교하게 될 것이니까.

하지만 이 사람에게 어느 것이든 맘대로 고르고 바꿀 수 있는 선택권을 주면 어떻게 될까? 익숙해진 어떤 것을 좋아보이는 어떤 것과 바꾸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바꿀 수 있는 선택권을 주더라도 바꾸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지금 선택한 것이 상대적으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다시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없다고 할 때, 그 직전에 놓쳐버린 어떤 선택에 대해 연연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든 돌아가거나 바꿀 수 있다면 후회하지 않는다. 언제든 다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인생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번 선택하면 다시 그때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어떤 선택을 할 때 잠 못 이루는 장고를 거듭해 결정을 한다. 그래도 막상 결정을 하고 나면 후회하는 마음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인 이상 어렵지 않을까 한다. 정말 솔직한 어린아이의 입장이라면, 그 어린아이에게 큰 결정을 하라고 하면, 당장 눈에 보이는 좋은 점 때문에 결정하고나선 그 이후에 발견된 (상대적으로) 좋지 못한 점 때문에 두고 두고 후회하고 그리워하듯 말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다시 번복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래도 타임머신을 타고 계속 과거로 돌아가서 부족한 점/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채울 뭔가를 선택하려고 할까? 변덕이 죽끓든 하는 사람이라도 여러 번 시도 해보고 무엇을 선택하든 대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란 것을 깨닫게 되면 선택을 하느라 밤잠 이루었던 일도, 선택한 뒤에 만족스럽지 못해 다른 선택을 해보고 또 해보고 하는 모든 일이 부질없다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러한 생각이다. 살아온 인생을 되돌려서 이미 해놓은 선택들을 모두 번복해서 다른 방향으로 살아가게 된다면 난 더 행복해질까? 내 주관적인 관점으로 더 나아질까? 지금과 많이 (좋은 방향으로) 달라지게 될까? 아니다. 그것은 순간적인 어리석음에서 오는 생각이다. 나란 존재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 달라지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어떠한 성황이라는 것도 내가 만들어나가기 마련이다. 단편적인 몇 가지의 선택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보다는 연속된 선택의 패턴이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다. 그러한 선택의 패턴은 나 자신을 의미하며 그 선택의 패턴에 따라서 나의 과거를 알 수 있고, 나의 미래도 어느 정도 가늠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빅데이터’가 난리 아닐까?

신기하게도 이 빅데이터로 사람의 성향을 잘 잡아놓으면 그 사람의 선택은 과거 기록으로 얻어진 하나의 패턴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늘 같은 스타일의 선택만 한다. 우리는 살면서 그런 경우를 수도 없이 봐온다. 따라서, 지금의 나는 내가 지금까지 이루어왔던 선택들의 결과이다. (라는 말은 너무 흔해졌다) 여기에 덧붙여 그런 과거의 선택의 패턴은 내 미래도 결정하게 된다. 그런 선택이 옳았든 옳지 않았든 좋았든 좋지 않았든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동일 조건에 다른 선택을 했을 때 나오는 결과를 직접적으로 보지 않고서는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 없다. 또 그 이후의 나의 선택들이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른 변수가 있기 때문에 내가 하는 그 어떤 결정도 좋다 나쁘다 평가할 수 없고, 그것 하나 때문에 내 자신이 어떻게 된다 할 수 없다.

뇌과학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이것이 정말 그러한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은 어떠한 선택의 상황에서 그 결정을 순간적으로 미리 해놓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상황이 처해지면 그 사람은 스스로 어떻게 해야할지 미리 결정을 자동적으로 해놓는다. 하지만 스스로 결정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결정에 대한 자기 합리화가 이루어진 다음이란 거다. 흔히 여러 가지 생각을 통해서 좋고 나쁨을 따져 결정이 이루어질 거란 상식에 벗어나는 현상이다. 만일 그러하자면 차라리 이렇게 뇌를 고생시킬 바 맘 내키는 대로 선택하고 후회하지 말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