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전기 회로 읽기: 들어가며

전기회로를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는 분들이 읽으실 것으로 알고 적어본다. 나 개인적으로는 아주 어렸을 적에 부품들이 잔뜩 박혀있는 기판을 들여다보면서 왜 이걸 (방금 땐) 한글 처럼 읽지 못할까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그 때문에 전자공학을 공부하게 된 것인데, 전기/전자 공학이 교양과목처럼 되지 않는 것도 좀 이해가 안될 때도 있다. 사실 학문으로 분류하지만 이 역시도 삶의 기술이라고 난 이해한다. 반대로 내 입장에서 인문 교양서적들을 읽는 것은 내 입장에서 회로를 읽고 이해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오히려 이것들이 삶에 주는 도움 보다는 전기회로를 읽고 이해하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되고 교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자리엔가 가서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작가의 이름이나 작품을 들이대면서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든가, 어떤 사상가의 사상에 대해 줄줄이 늘어놓는 것 보단 최신 기술, 특히나 우리가 늘 접하는 재미난 과학 상식이나 기술 상식이 사람들에게 더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뉴스를 보고 듣거나 신문을 읽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를 할까한다. 다시 얘기하지만 난 전자공학을 두고 두고 파야하는 학문 혹은 계속해서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역시도 우리 생활의 일부이고 알면 알 수록 도움이 되는 상식에 가까와지고 있다. 다만 요즘 세상은 소프트웨어라든가 소프트웨어 사용법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기 회로는 사실 그 뒤로 묻혀있는 것이라 선진국에서도 사실 회로를 설계하고 만드는 일은 예전보다도 더 급이 낮아졌다고나할까? 칩을 만들고 설계하는 기술도 마찬가지로 낮은 레벨로 분류되는 것 같아 조금 애석하다. 사실 소프트웨어를 다루거나 만드는 일은 예전 같으면 칩을 만들거나 칩을 팔기 위해 했던 일들이었는데, 이젠 소프트웨어적으로 어떤 일을 하기 위하여 하드웨어가 거기 맞춰가고 있다고도 볼 수 있고, 칩을 만드는 일도 순수한 물질에 불순물을 섞고 핀을 뽑고 패키징을 하는 제조의 영역을 제외하면 설계/구현/검증에 이르긱까지 소프트웨어를 작성하고 다루는 일이 대부분이 되었다. 즉 다시 말하면 회로를 만드는 일은 다 이상 창의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종의 공식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처럼 되어아고 있으니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원리라든가 이해 또한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잘 알아두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회로를 읽는 일은 음악으로 치면 악보를 읽는 것과 같다. 음대생이 되려면 입시에 악보를 읽고 노래를 부르는 능력을 테스트 받는다. 그러나 전자/전기 공학을 하겠다는 사람에게는 입시과목 외엔 전기회로를 읽거나 설명하거나 그리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세상이 좋아져서 이젠 컴퓨터가 악보를 인식하고 그것을 기게적인 데이터로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 또 디지털 음향기술을 이용해서 악보를 그럴싸한 음악으로 재창조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마찬가지로 전기회로를 인식해서 그것을 기계적인 데이터로 바꾸고 사람들의 편의대로 실험하고 그 결과를 그대로 받아볼 수도 있다. 사람이 연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듯, 사람이 회로를 직접 만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여기서는 회로도를 보고 이해하는 단계까지만 다룰 일이지 컴퓨터가 하듯이 정확한 회로의 동작 값들을 얻어내려하진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을 뿐더러, 난 그것이 학문이 되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전자회로라는 학과목은 사람이 회로를 시뮬레이션 하듯이 전부 손과 계산기를 이용하여 그 결과를 도출하는 작업들을 하는 학문이다. 회로에 따라 해석하는 방법도 패턴식으로 외우기도 하고 말이다. 그것이 회로를 이해하는데는 도움을 주지만, 주로 점수를 메기기 위해서 계산을 잘하느냐를 더 우선적으로 보고 있는데, 그것이 어떤 직관을 얻게 하는데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지는 모른다.

단적으로, 전자/전기 공학을 전공했어도 쉬운 회로도 하나 이해 못하고 해석 못하는 사람들은 수두룩 하다. 비율로만 봐도 졸업하고 10년이 지나서 해석이 가능한 졸업생은 대략 5% 정도이지 싶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물리 교과서에 나오는 수준의 회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여기서는 간단한 회로들을 이해하고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만 본다. 상식에 도움이 되는 수준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