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카/트로트?

이 음악은 나이든 사람들이나 듣는 음악이구나 해서 별로 관심도 없고 피아노나 기타로도 쳐 볼 생각도 없었는데, 심심한 김에 하나 도전해봤는데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위 3개의 코드는 대중음악에서 가장 흔히 등장하는 코드니까 그렇다 치고, 이를테면 II-V7 같은 흔한 진행도 없고, 흔히 잘 아는 5도씩 이동하는 패턴(Am-Dm-G-C-F-Bm7-5-E7)도 잘 없다.

그냥 들으면 그런데, 3화음 코드 3개로 뺑뺑이 돌다보면 이거 좀 어떻게 매끄럽게 바꿔보면 좋을텐데 생각해서 바꿔보면 분위기가 좋은 방향보단 안좋은 방향으로 간다. 물론 여기에 편곡자의 능력이 나오는 것이지만, 내 능력의 한계로 딱 거기까지 해봤다.

코드 진행이 이렇게 단조롭나 싶어서 베이스를 짚어보면 베이스의 변화도 사실 별 개 없다. 그저 가끔 5도음을 넣거나 잘 해야 경과음을 넣는 정도다.

그래서 곡의 포인트는 편곡자가 전주와 간주를 어떻게 만들어넣느냐가 아닐까 하는데, 이것은 자본이 관여하는 일이라 돈을 많이 들인 곡들은 제대로 된 사람의 스트링 연주가 받쳐주고 화려한 전주와 간주가 있고 아닌 것은 없고 그 차이다.

훌륭한 연주자가 기타 한 개 들고 나와도 감동스러움을 주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반드시 많은 악기들이 풍성한 소릴 낸다고 해서 좋은 소릴 낸다고 할 수 없어서 역시나 코드 활용을 잘하는 편곡자의 능력이 악기의 수에 못지 않은 효과를 낸다고 봐야 하지 싶다.

그냥 매일 매일 아니면 자주 새롭게 듣는 음악들을 들어보면서 그 음악에 나오는 악기들의 음을 전부 연주해보는 것도 음악을 이해하고 연주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아주 뒤늦게나마 알았다. 어디 가서 악보 구해다가 연습하고 빨리 연주할 수 있게 되는 게 중요하단 식으로 오래도록 살아왔구나 했다. 사실 유명한 음악일 수록 악보 구하기도 쉽고 하니까 나 스스로의 능력 키우기 보단 악보 (손으로) 빨리 외우기, 또 어려운 프레이즈 금방 잘 연주하게 되기에만 몰두한 것이다.

아마도 내가 이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빠르거나 복잡한 프레이즈를 연주하는 정밀도가 예전같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게 아닐까도 하는데, virtuoso 급의 연주자 DNA를 타고 나지 않은 한에서 아무리 갈고 닦아도 능력 발달엔 한계가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난 왜 이것밖에 못할까?’ 보단 ‘난 여기까지’가 맞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