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Sykes에 대해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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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Murder의 “Blue Murder” 앨범이 나온지 30년째가 되는 듯 하다. 이 앨범이 나올 때 내가 들어봤다는 것은 아니고 이런 앨범이 있다는 것을 물론 한참 뒤에 알게 되었고 그래서 듣고 좋아하게 되었지만.
Blue Murder라는 밴드를 좋아하게 되면 John Sykes라는 기타리스트+보컬을 좋아하게 되고 메탈/하드락 베이시스트로 특이하게 프렛리스 베이스를 쓰는 Tony Franklin이란 베이시스트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돈만되면 이리 저리 옮겨다니는 Carmine Appice라는 드러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된다.
결론은 우직한 Sykes 형님에 대한 무한존경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고 좋아해 마지 않는 기타리스트 들을 꼽으라면 John Sykes는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그런 존재다. 기타리스트로도 좋아하지만 보컬리스트로서도 그를 좋아한다. 심지어 Whitesnake에서의 그의 기타 플레이는 말할 것도 없고 그의 백보컬도 모두 다 좋아한다.
John Sykes라는 기타리스트에 대해서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고 대개는 그를 “Legendary guitarist”라고 평가할 정도로 독창적이면서도 엄청난 연주력을 가지고 있고 작곡/보컬 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이분은 Redding이라는 동네에서 일종의 막노동을 하셨다는 분으로 알려졌는데, Tygers of Pan Tang 이란 그룹에서 활동한 것이 기록상으로는 가장 드러나는 밴드 활동이라고 알려져있다. 왜 tiger가 아니고 tyger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이 밴드의 앨범엔 호랑이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Pan Tang이란 곳은 아시아의 어느 지역이지 싶은데, 실제로 그렇지 않고 판타지스러은 누군가의 상상의 영역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니까 호랑이고 환상의 섬지역이고 간에 그냥 다 상상의 것이란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출범한지 30년도 훨씬 넘은 (78년도에 시작한) 이 밴드가 지금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Love portion no.9”이 이 밴드의 유명한 리메이크인데 이 비디오에 보면 아주 파릇파릇한 John Sykes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시절의 플레이는 Thin Lizzy 시절의 플레이와 매우 유사하다.
Tygers of Pan Tang 이전에 Street Fighter라는 밴드에서 활동했고 Tygers of Pan Tang 활동을 하면서 Ozzy Osbourne 밴드에 오디션을 봤던 모양이다. 물론 John Sykes가 Ozzy Osbourne band의 기타리스트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발탁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사실 George Lynch라든가 Ozzy Osbourne band에 지원한 기타리스트들이 꽤 많았던 것으로 보아서 나름 페이와 이 바닥에서의 명성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잘 알 수는 없으나 Ozzy Osbourne band가 잘 안되다 보니 갈 수 있었던 밴드가 Thin Lizzy였지 싶다. John Sykes는 Thin Lizzy의 가장 마자막 앨범과 그 직전의 라이브들, 곡 작업을 Phil Lynott과 같이 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마지막 앨범 “Thunder and lightning”에서 아쉽게도 주목할 만한 히트곡은 없다. 단지 매니아들의 세계에서 “Cold Sweat”이라든가 “Baby please don’t go”라는 곡을 좀 알고 있을 뿐. 당시 John Sykes의 플레이는 Whitesnake의 1987 앨범이라든가 Blue Murder의 앨범과는 많이 차이가 있는데, “Tygers of Pan Tang”에서처럼 뭔가 엄청나게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지만 그다지 임팩트는 없는 느낌이 확실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1987 앨범으로 넘어오면서 정말 비약적인 성장을 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인다. 그것을 여러 가지로 설명해볼 수 있지만, Thin Lizzy의 마지막 앨범 작업을 하면서 배운 것이 많았고 1987 앨범의 리허설 기간동안 스스로 연구한 바가 많았기 때문이지 한다.
Whitesnake의 1987 앨범에서 John Sykes의 기여도는 정말 엄청났다고 할 수 있다. 1987 앨범에서는 이전 Whitesnake (with Bernie Marsden)의 리바이벌곡도 수록하고 있는데 John Sykes가 거의 완전히 재해석하다시피 했고 이 앨범의 인트로이자 가장 인상적인 곡 “Still of the night”의 곡작업에 큰 기여를 했단 것이기도 하다. 이 곡 말고도 “Crying in the rain”, 빌보드 히트곡 “Is this love?” 등등 대부분의 앨범 수록곡에서 엄청난 기타 사운드와 백보컬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처음 듣는 이들에게 강력하게 인상을 준 것은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기타 연주와 이상스럽게도 느리면서도 폭이 큰 비브라토가 들어간 솔로 연주였다. Metallica의 “Metallica” 앨범 말고도 당시 상업 메탈 음악의 프로듀싱에서 히트 제조기로 불리웠던 Bob Rock이 담당했기 때문인지 당시 John Sykes의 Mesa Boogie Coliseum (Mark III인데 출력이 150watt이다. 그러니까 6L6GC 출력관이 3쌍이 들어간다.)의 위력이 정말로 압권이다. 단지 Coliseum의 소리라고 보기엔 엔지니어링 기술로 너무도 타이트한 메틀사운드 때문에 사실 이후의 메탈 음악의 교과서적인 앨범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David Coverdale은 1987 레코딩에 참여해던 팀을 모두 해산하고 소위 비디오 스타들인 Adrian Vandenberg, Rudy Sarzo, Tommy Aldridge (솔직히 이 빼빼마른 노안의 드러머는 왜 당시 그렇게 주가가 높았는지 알 수 없다.)로 교체되고 John Sykes는 다시 야인의 길을 가야 했다.
결국 자신이 리더가 되는 밴드를 조직하게 되는데 그것이 헤비메틀 역사에 길이 남을 Blue Murder라는 밴드 되겠다. 아쉽게도 음반사가 열심히 프로모션을 하지 않았기에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Bob Rock이 참여했고 당대 용병으로는 꽤 알아주는 뮤지션 - Tony Franklin과 Carmine Appice가 참여했다. 다음 앨범에도 참여하긴 했지만 모든 곡에 참여한 것은 아니고 이후의 라이브에서도 이들은 참여햐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음반사에서 그다지 큰 기대를 걸지 않은 것임에 분명하다.
Blue Murder의 앨범들을 들어보면 John Sykes가 혼자 만의 힘으로 어떻게든 성공해보려는 노력이 매우 돋보인다 (그러나 큰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아마도 David Coverdale의 상업적 성공을 넘어서려 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혹여 그가 David Coverdale처럼 플레이보이 모델 급의 여배우를 고용해서 프로모션 했다면 그럴 가능성이 있었을지 모르겠다만.
신기하게도 Carmine Appice는 여전히 그의 커리어를 유지하고 있지만, John Sykes는 그 자신의 마지막 앨범 수록곡을 일부 매체를 통해 공개했지만 음반화 되지 못했다. 여전히 좋은 곡 구성과 연주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여전히 뭔가 보여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음반사라든가 프로모션 업체와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지 않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던 Toto 같은 밴드들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매년 열심히 세계 투어를 돌고 있는 것에 비해 소위 헤비메틀, 엄밀히 말해서 NWOHM의 기수였던 John Sykes (올해로 환갑이 되시는 형님이다만)가 앨범을 이미 다 완성을 해놓고도 그것이 음반화 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위 공개적으로 미발표인 연주들을 John Sykes의 youtube 채널에서 찾아들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