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에서의 찐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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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의 세계에서는 그냥 누가 언제 빨리 제대로 된 결과물을 가져오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말도 안되는 theory를 알아듣기 쉽게 ㅆㅂ이든지 현학적인 용어로 떡칠하면서 ‘이게 뭔소리야?’ 하든 말든 그것은 별로 상관이 없다. 이 바닥의 룰이라는 게, 결과물 가져올 때 혀가 길면 그 일의 품질 (QoR?)은 역비례하게 되어있다. ‘패자는 말이 없다’이어야 하는데 곱게 자란 놈들이라 이런 치욕의 상황을 어떻게든 입으로 혀로 극복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난 (변명하면 다 들어주는) 니 엄마가 아니야?!’
실전에서 가장 찐따는 결과가 아닌 다른 것으로 뭔가를 커버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살면서 이런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 잘나신 분들이 질질 끌다가 허접한 결과물을 가져오든가 아예 결과물을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들. 그것도 국내 최고의 학부의 교수라는 분들이 막판에 빤쓰런을 하는 경우도 봤고. 국내 최고 학부를 졸업한, 그것도 모자라서 해외 유수의 학교를 졸업한 엔지니어란 놈들도, 그것도 월급까지 받으면서 일하는 놈들이, 결과물을 내지 못한 것을 본인 가정사를 핑계로 질질 짜는 것으로 떼우는 것도 봤다. 그래도 한국 사회는 그런 것이 아주 신기하게도 용인 되었다는 것이다.
제때에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내는 사람이라도 혹여나 미운털 박히면 그것을 이유로 남들 다들 진급할 때도 바닥을 굴러야 되고, 그렇게 그렇게 회사에서 내쫓을 때까지도 바닥을 구르는 것은 기본이다만.
정치라든가 인문 사회학 계열이라면 논문을 쓰는 것 외에 대민 활동이란 것도 하고 인기를 고려해야 되니까 말이라도 잘해서 패닉의 순간을 극복했다면, 그 자체로 스스로의 업적을 쌓는 것에 있어 매우 큰 작용을 하지만, 엔지니어링 세계에서는 이러나 저러나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으로 ㅂㅅㅇㅈ을 한 것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 것이다.
미친놈 처럼 이 바닥 용어란 용어는 다 들이대면서 한 시간이 넘도록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해봤자 뭐할 것인가?
‘그래서…?? so what???’
‘그래서 결과물은…??’
‘……’
제대로 working하는 결과물을 제때 만들어내지 못하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받아먹은 연구비 전부 토해내고 그냥 집에 가야 맞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의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그냥 인정상 봐주는 경향이 많다.
‘그래 넌 일은 못하지만 그래도 뭔가 있어보이게 말은 하지 않냐?’
하고 말이다.
그러다보니 여전히 말로 먹고 사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오늘도 쓸데 없이 짜증 유발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더 ㅂㅅ ㅉㄸ 들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왕년에…’ 하는 놈들이다.
‘그래서…?? so what???’
왕년에 그렇게 잘나셨으니까 빨리 결과물을 가져오라고! 그런데 왜 내내 입으로만 일을 하는 건가??
이 바닥에서 더 웃긴 건
‘내가 책 쫌 썼던 사람이야..’
무슨 비슷한 껀쑤만 터지면 책무새 짓을 하는 것이다.
네가 이 바닥에 대해서 전혀 지식이 없어서 그런 것 같은데 내가 수년 전에 쓴 책을 봐. 거기에 다 있는 내용이야.
엔지니어링의 세계는 이렇다. 학교 다닐 때 논문 쓰던 시절을 되살려보면 대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와서 급하게 conference 준비해서 발표하면 사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논문으로 뭔가를 준비해야 하긴 늦은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래도 꾸역꾸역 저널에다 논문을 내야겠으니 같은 내용을 쓸 데 없이 분량을 늘려서 제출한다. 졸업 논문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이미 이것은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닌데 분량을 채워야 하니까 또 꾸역 꾸역 늘려서 넣어놓게 된다.
사실 가장 주된 내용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능력이 출중한 아이들은 conference에 던지는 아이디어, 저널에 던지는 아이디어, 이것들을 총 집대성한 졸업논문으로 던지는 상위 개념의 아이디어까지 대개 준비가 되어있어서, 이런 아이들을 운수 대통해서 얻어 건진 교수들은 빠른 시간 내에 조교수에서 테뉴어까지 받아내기도 한다만 (우리 바닥에 이런 년놈들 제법 된다). 써놓은 내용으로 볼 때는 supervisor라는 작자가 한 게 아무것도 없이 잘도 묻어가는구나 싶은데, 세상은 지도교수와 학생의 상하 관계로만 알 뿐인 것이니까.
책을 출판하게 되는 경우는 이보다도 더 텀이 길어서 본인이 경험한 1-2년전 (혹은 그 이상) 것들을 주섬 주섬 모아서 1-2년에 걸쳐서 준비하고, 또 교정보고 출판사와 주거니 받거니 1년 가까이 허송 세월하고 출판이 된다. 아쉽지만 이 바닥 기술은 몇 달이 멀다하고 계속 디버깅/리비전이 일어난다. 1년만 지나도 이것 저것 새로 업데이트 된 것들이 많아져서 짜증이 나는 게 기본이다. 그러니까 어디가서 ‘인류의 기원은…’ 하면서 읊듯하면 ㅂㅅ 소리를 들어 마땅한 것이다.
다시말해서 이 바닥의 새로운 지식이란 것은 책으로 출판되어 나올 겨를도 없는 것이다. 이미 그것이 지식을 창출하는 주체가 아닌 소비자 입장에서 ‘새로운 내용이구나!’하며 노트할 단계에 이르렀다면 출판해야될 가치를 다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그런 세상이 되어버린지 한참인데, 출판된지 4-5년 된 자신이 쓴, 이미 곰팡이 잔뜩 뒤집어 썼을 내용의 책을, 직접 구입하여 읽어보라고 링크까지 쳐 붙여 보내는 것은, 그 스스로 지능 상태가 퇴보에 이르렀다고 인증하는 것과 (그러니까 타인들을 개호구로 알고 있는 것), 이 바닥에서 연봉 제대로 못 챙기고 있으니 ‘처자식이 있습니다. 제발 적선해줍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차라리 정직하게 그렇게 얘기한다면 좋으련만, 주제를 한참 넘어서 지식의 공급자 역할을 하려드는 것이다.
정상적인 마인드를 지닌 인간이라면 식상한 내용으로 졸업 논문을 쓰고 졸업한 것을 창피하게 생각해야 되고, 몇 푼 벌어보자는 욕심에 다 지난 이야기를 (레퍼런스 메뉴얼도 아니고 유저 가이드도 아닌) 개똥철학으로 책을 내놓아서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서너달 간격으로 업데이트 되는 뜨끈 뜨끈한 이 바닥 소프트웨어/하드웨어의 reference manual/user guide를 적당히 부분 발췌해서 보는 것이, 저자 스스로 ㅂㅅ 인증한 책을 읽느라 돈과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수백배 나은 선택인 것이다.
왜? 그것이 실전에서 고분 분투하고 있는 엔지니어들의 가장 뜨끈 뜨끈한 ‘새소식’이니까.
예전에도 학교에서 좀 구른다/제대로 공부한다 하는 선배들은 남들 다 한몫 챙겨서, 또 어린 나이에 좀 무리해서라도 부동산 적당히 잡아놓고 불려서 퇴역할 무렵에도 필드에서 열심히 일한다. 세상 돌아가는 것엔 둔감했을테니까 또 고지식해서 퇴역하기 어려울 만큼의 돈 밖에 없을테니까.
ㅂㅅ 인증한 것들은 진즉에 교수된다고 학교로 들어갔고, 조금 낫다 싶으면 회사에서 좀 구르다가 항복하고 교수갔고, 이도 저도 아닌 어리버리한 놈들 필드에서 잘릴랑 말랑하면서 책 쓰고 책무새로 살다가 전역한다. 정말 ‘얘들은 답도 없네’ 하던 놈들이 전혀 예상밖으로 회사에서 오래 버텨서 거의 끝을 본다. 마지막으로 엔지니어링 밖에 모르는 놈들이 남들 다 퇴역하고 난 이후에도 말단 레벨에서 필드 뛰고 있는 거다. 나름 공부도 잘 했고 똑똑한 것을 세상에서 다 인정 받았지만, 진짜 세상에서 사는 재주는 손톱만큼도 없어서 남들 관둘 때가 되어도 관두지도 못하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어떻게든 이 세상에 항복하긴 싫으니 나름 살아남겠다고 끝까지 버틴 결과가 그것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