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OS, 재택 근무, 그리고 인간가상화

재택근무를 3주 넘게 하고 있으면서 온종일 컴퓨터로 어떻게 하면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씨름하다보니 이젠 정말 머릿속에서 별별 생각들이 다 떠오르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사실 차로 출퇴근하게 되면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머릿속 생각들은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 나무들처럼이나 빠르게 전환되고 그런식으로 나름의 기분전환을 하게 되는(?) 식으로 하루가 지나간다. 일을 하고 뭘 하더라도 주변 배경이 계속해서 바뀌니까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이유로) 일에 집중했다고 하지만 내 머리의 일부 load는 그 변화되는 화상신호를 처리하는데 쓰이고, 생각지도 않은 잡음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니까 실제의 능력의 절반도 일에 쓰이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그렇게 해서 수도 없이 걸리는 인터럽트에 최근의 OS들이 보내오는 외부 세상에 대한 notification (뭐 이를테면 트럼프가 무슨 얘길 했다, (그래서) 주식이 크게 흔들렸다, 그게 무슨 주식이고 …)까지 일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니까 집중도는 더 떨어지고 시간은 많이 쓰지만 막상 하루를 떠올려보면 급한 불 한 두개 끄면 매우 보람된 날이고, 온종일 어떤 것에 집중했는지도 모를 날이 사실 대부분이다.

그렇게 그렇게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날만큼 많은 인터럽트 속에서 시달리는 게 일상이다가 집에서 온전히 컴퓨터나 쳐다보며 뭔가를 하고 있고 엉덩이가 너무 아플 때만 몸을 움직이는 정도의 인터럽트를 받고 있으니까 생각의 집중도는 매우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지경에 이르고 보면 그동안 하던 일을 어떻게 하면 더 빨리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실제로 3주의 기간을 보냈는데, 여러 해 아무런 변화가 없던 나의 일 처리 속도가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2-3시간 걸쳐서 꾸역 꾸역하던 것을 지금은 1-20분을 하더라도 널널하게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거짓말이 아니다. 그 전의 일처리도 엄청나게 빠르다고 했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훨씬 더 빨라졌다. 왜? 더 좋은 방법을 찾아볼 시간이 생겼고 그래서 알아냈기 때문이다.

출퇴근 하던 시절에는 왜 하지 못했냐 하면, 장시간 집중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A라는 일을 하고 있을라치면 누군가가 찾아와서 문제 B를 풀어달라고 하고 그래서 B를 후딱 해치우자 하면 메일로 누군가가 C를 해달라고 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context switching을 하다보면 일 자체의 해결 능력은 키워보지도 못한 채,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다가 하루가 다 간다.

그!런!데! 재택 근무를 하니까 그런 놈들이 찾아오질 않는 거다. 일을 도와달라고 하는 메일 조차 오질 않는 거다!! 그러니까 일 못하던 (그래서 늘상 타인의 도움만 받던) 놈들의 일처리 능력은 거의 바닥권으로 떨어지는 반면 그렇지 않은 이들의 일처리능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내 경우 회사에서는 서버팜 외에는 쓰지도 않는 Linux를 메인 OS로 하여 가상 OS를 대거 도입함으로써 (예전엔 parallels desktop이라든가 docker on macos로 꾸역꾸역하던 걸) platform에 의지하는 정도를 크게 낮춤으로써 일 처리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덕택에 다른 새로운 것들을 익히고 실험하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 이것은 사실 눈사태 효과처럼 더 많은 새로운 것들을 익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무슨 말이냐면 시간이 모자르던 시절엔 A밖에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B라는 것이 있지만 시간이 없으니 그냥 관두자 했다면, 시간이 남게 되면서 A밖에 몰랐지만 B도 알아보자 하다보면 그게 C, D, E..그런식으로 계속해서 확장된다는 뜻이다.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그 사람이 실제로 일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결과물이 클라우드에 쌓이고 있는지 아닌지를 가지고 알 수 밖에 없다. 회의에 얼마나 참여를 했느냐 말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재택을 한다는 자체가 원격에서 결과물을 보내와도 일이 돌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인데, 그 결과물이 바로바로 나오지 않으면 놀았구나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 이것은 사실상 manpower라는 것을 CPU의 가상화개념처럼 쓰게 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예전에 회사에서 사람들을 관리할 때 그 사람의 능력에 대한 것을 숫자로 두고 전체 manpower를 계산해서 그것을 프로젝트에 맞게 쓰도록 계산하는 짓을 했다. MM (man-month: 한달동안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처리 능력) 같은 걸 두고 사람을 관리했단 것이다. 말이 관리지 회사가 원하는 대로 숫자 뽑아주느라 귀한 내 시간 허비하는 게 그게 소위 관리자들이 하는 일인데 그게 체질에 맞는 인간들은 이런 일을 아주 좋아라 한다. 학교 다닐 시절에 교수를 위해서 영수증 관리하고 장부 쓰는 것을 즐겨했던 인간들처럼이나. 그걸 그렇게 잘 했으면 진작에 교수가 되었어야 할 건데, 교수 월급이 작다고 대기업 취직하면 결국에 그런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한심하지만 그런 이들이 제법 많다. 그런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진급도 빠르다. 같은 엔지니어 직종에서 내가 보는 그 인간의 MM은 0.3도 안되는 인간이지만 다른 이들의 MM을 평가하는 위치로 가면 진급이 빨라지는 것이다. 웃기지도 않는 일이지만, 그 위에서 관리하는 놈 입장에선 자기 아래 애들을 관리해주는 놈한테 점수를 더 잘 줄 수 밖에 없으니까.

이게 재택으로 되면 Man-to-Man 관리 능력이란 건 사실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이 놈들은 어떻게든 온라인 미팅 회수를 늘려서 더 많이 일한 척 하려고 할테지만, 사실 주된 내용은 written language로 가게 되어있지 verbal language로 가게 되지 않는다. 정보량이 상대적으로 작고 거기에 불필요한 정보가 많이 끼어듦과 동시에 오해할 소지가 많고 그래서 실질적인 전송률이 매우 느리기 때문이다.

더 웃긴 건 회사에 나와서 일을 하지 않으니까 제 3자인 누군가가 일을 해내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의 인간 가상화와 같다. 그러니까 내가 연봉이 높으면 능력이 좋은 이들을 따로 고용해서 재택으로 또 다른 이를 고용해서 하청을 줄 수 있단 말이다. 세상을 구성하는 것의 어떤 가치라는 것은 절대적인 기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절대적인 척도를 (일부러) 공유하지 않으니까 상대적이 되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의 가치라는 것이 전세계적으로 공통 표준으로 메겨지지 않기 때문에 계약하기 유리한 조건에 있으면 같은 결과라도 매우 싸게 조달할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면 정말 한심한 수준의 결과물을 엄청나게 비싼 값으로 사게 된단 말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엄청나게 높은 연봉을 지급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재택근무를 한다고 보면 싼값에 잘 일해주는 이들을 찾아내서 그들을 고용하고, 그들이 해낸 일의 결과물을 내가 회사 클라우드에 업로드 함으로써 내 개인의 능력을 가상적으로 극대화하는 식의 일종의 인간 가상화 혹은 노동OEM을 해내게 된다는 말이다. 사실 이것은 과도기적인 현상일 수 있는데, 세상의 변화는 생각보다 그렇게 빠르지 않아서 이 과도기도 상당기간 지속되지 않을까 한다. 당연히 일을 공급받는 입장에서는 더 싸게 노동을 공급받으려 하려고 할테니까 지리적인 한계를 넘어서서 능력만 인정받는다면 전세계를 상대로 알바를 뛰는 이들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능력만 있으면 지구 그 어디에 있더라도 양질의 인터넷만 제공되면 남녀노소, 인종을 불문하고 지적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받으면서 일 할 수 있는 세상이 오게 되지 않을까 한다. 지역적으로 노동을 심하게 착취하던 이들은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될 거라고 본다. 적어도 지적 노동에 있어서는 말이다.

세계 모든 이들이 재택으로 지적 노동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을 보내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면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가치가 달러를 기준으로 메겨지듯이, 지적 노동의 결과물들은 영어로 표현되었을 때, 또는 세계 공용어인 컴퓨터 언어 (이것도 변종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로 표현되어다면, 그것의 품질과 납기능력에 따라 어떤 공통된 표준의 평가 방법이 필요해지고, 그것으로 값을 메기게 되는 세상이 되어야 할 수 밖에 없단 것이 된다. 그러니까 능력이 뛰어나면 그 사람이 어디에 살고 있든, 나이가 얼마든, 어떻게 생긴 사람이든, 어떤 인종이든 상관없이 그 사람의 일의 품질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된다. 지적 노동시장 역시 무한경쟁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보면 온라인 지적 노동시장도 무한 경쟁 조건에 놓이게 되면, 단순히 그 사람의 지적 노동 결과물로 평가받게 되니까 업무 능력이 좋을 가능성이 낮은, 지적 노동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조건에 놓이지 못한, 경험을 쌓기 어려운 입장의 나이가 어린 이들은, 상대적으로 안좋은 위치에 놓이게 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이들이 능력을 키울만한 기회도 제공받기 어렵게 된다. 왜냐면 무한 경쟁 조건에 놓이게 되면 모든 것들이 빈익빈 부익부의 상황에 놓이게 되어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양질의 일은 일처리 능력이 우수한 이들에게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애초에 능력이 낮았던 이들은 계속해서 낮은 수준의 일만 받아서 할 수 밖에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당연히 난이도가 낮은 일에 부여되는 가치는 낮을 수 밖에 없고, 낮은 난이도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의 수는 많을 수 밖에 없으니까, 낮은 난이도의 일을 하느라 온종일 일을 해도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의 돈을 벌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악순환은 다른 경쟁 시장처럼 가속화 될 수 밖에 없다.

…이거 내가 말 하려고 생각했던 주제는 넘어가지도 못했는데….쓸데없이 길어지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