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나게 하는 조미료

누군가 알려준 짬뽕 레시피에 치킨스톡이 들어있었다. 그냥 닭국물이 짬뽕의 맛을 내어준다는 게 좀 신기했는데, 사실 그 닭국물이란 것은 닮고기의 향이 좀 있을 뿐이지 쉽게 말해서 조미료 국물/조미료 수용액?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치킨 스톡이란 것은 닭고기에 포함된 조미료 역할을 하는 성분으로 맛을 내는 요소였을텐데, 실제로 대량생산을 해야 하고 사람들의 입맛도 (각종 조미료에 길들여져) 까다로와졌으니 그렇게 되었으리라 본다.

예전엔 이런 맛을 내는 성분을 ‘핵산’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사실 이것은 핵산염이라고 불리우는 이노신산염, 구아닐산염 성분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한다.

소금이 많이 들어있는 다른 조미료나 양념과 달리 부패하기 쉬운 상태라서 그런지 고풍스러운 통조림에 들어있는 것을 사다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실제로 그냥 맛 본 그 치킨스톡의 맛은 마치 닭껍데기를 같이 넣고 끓였다는 느낌을 주려는 것인지 다소 기름기가 있는 그런 느끼한 느낌에 짜진 않지만 뭔가 두꺼운 느낌이 있는 그런 맛이었다. 실제로 조미료도 그 자체를 먹었을 땐 뭐라 표현하기 애매한 맛이 나는 반면, 다른 것들과 섞였을 때 엄청난 식욕을 불러오는 것과 같다고 봐야할 것 같다.

가격이 좀 싸거나 별로 인기가 없는 양념들의 맛은 원래 양념의 맛 그것에만 가까와서 식욕을 부르는 맛이 되지 못한다. 다만 음식 재료 그 자체에 감칠맛을 내는 성분이 풍부한 것들은 (고기) 아무런 양념을 치지 않아도 먹을 수 있고, 다른 것과 곁들여 먹었을 때 그것들의 맛까지 돋우는 기능을 한다고 봐야하니까, 고기를 먹지 않아도 고기를 먹고 있는 듯한, 고기가 섞여있는 듯한 맛을 내는 것이 조미료의 효과가 아니었을까 한다. 소위 육수 (=고기를 우린 물)라는 게 조미료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육수를 달라고 하면 말 그대로 조미료가 녹아있는 물을 가져다 준다.

매일 먹어서 수천번은 질렸을 법한 쌀밥과 별 것 아닌 야채의 조합을 미친 듯 퍼먹게 만드는 것이 뭔가 약간 찝찔하면서도 표현하기 뭐한 그 맛 아닌가?

정말 뭔지 모르지만 맛이 없을 것 같은데, 맛있고 중독되는 맛을 가진 것들은 다 조미료 덩어리라고 본다.

굴소스, 치킨스톡, 폰쯔, 고추장, 짜장, 케쳡, …

너무 많아서 나열하기도 어렵다. 이들 양념/식재료는 그것들이 그것 본연의 목표만 수행하면 특별히 맛있으면 말 안된다. 어떤 메이커 것이 특별히 더 맛있다 생각되면 그만의 비밀(=조미료)이 있는 것이다.

난 조미료 그 자체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맛 없는 것, 특히 몸에 별 도움도 안되는 것들, 이런 것들은 실제로 별로 맛이 없고 금방 질려서 적정 수준만 먹게 만드는 성질이 있는데, 조미료는 그것들을 다 엉망으로 만든다. 쓸데없이 과식하게 만든다. 그냥 생재료로 사다가 만들면 그 자체의 맛을 즐길 수 있고 적정량만 먹게 되는 것을, 조미료가 들어가는 순간 폭발적인 식욕을 끌어오르게 해서 과식하게 만든다. 그렇게 영양 불균형을 생기게 만든다.

예전처럼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에 조미료는 큰 역할을 했으리라본다. 본래의 맛이 좋은 식재료를 사다먹기에는 경제적인 부담이 큰 사람들이 많았었으니까, 그렇지 못한 식재료라도 어떻게든 식욕을 돋궈서 먹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 결과는 원래 맛없는 것을 맛있게 배부르게 많이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전보다 살기 좋아진 지금은 맛이 좋은 원재료를 큰 부담없이 구할 수 있고, 그 재료들은 사실 별 다른 가공을 하지 않더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입이 알아서 적정 섭취량을 결정해서 통보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별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식재료가 좋아졌음에도 여전히 식욕을 돋구는 양념과 조미료를 더해서 먹는다. 그래서 그 결과로 365일 24시간 내내 배부른 사람들이 생겨났다.

난 닭튀김이 그냥 닭튀김으로서 맛있을 거란 생각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아주 어렸을 때에 동네 닭집 (예전엔 동네에 진짜 닭을 잡던 닭집이 있었다)에서 잡은 닭한마리를 튀긴 것을 식초물에 절인 무와 함께 여러 번 먹어본 적이 있는데, 한번도 맛있게 먹어본 적이 없다. 적당히 몇 점 먹고 절로 떨어져 나갔던 기억이다.

학교 다닐 시절 여자친구가 미리 주문해준 난생 처음 먹어보는 ‘치킨버거’를 봤을 때, ‘으악! 그냥 먹어도 먹기 힘든 닭을 버거로?!’ 했던 기억이 있는데, 곁들여져있던 비밀의 소스 덕택에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 이후에도 자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왜 이곳의 치킨은 내가 먹었던 치킨과 다를까?’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저, 여기서 먹으면 그 뻑뻑한 치킨을 버거로도 먹을 수 있다는 것만 알았을 뿐.

지금 여느 동네 ‘치킨’집 (이것은 예전의 닭집과는 다르다)에서 먹는 그 어떤 것도 맛이 없어서 한 두 점 먹고 떨어질만한 메뉴는 없다. 모든 메뉴가 다 ‘맛’있다. 게다가 먹을 수록 중독되는 맛이라 습관적으로 먹다보면 치킨 (명확히는 치킨 프렌차이즈에서 만들어 파는 닭튀김 + 비밀의 양념)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그렇다는 얘기다. 살을 빼고 싶다면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서 조미료도 빼야 된다. 그러면 양조절이 저절로 된다. 재료 본연의 맛은 어느 정도 들어가면 자동으로 질리게 해서 과하게 먹는 것을 막아준다.

“Eat clean”하는 것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양질의 식재료를 먹어서 몸을 좋게하는 무슨 대단히 과학적인 비법인양 하는데, 사실 식재료가 양질이든 양질이 아니든 조미료만 빼내면 (맛이 없어서) 자동으로 과식하게 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게 해결된다. 덤으로 탄수화물로 치우쳐진 식습관도 막아준다. 조미료에 이미 길들여진 상태에서는 조미료가 없는 반찬만으로는 또 가공식품(=조미료가 많이 포함됨) 없이는 추가적인 식욕이 돋지 않는다. 그러나 밥이 없어도 양념을 치지 않아도 고기는 적당히 먹을 수 있다. 조미료가 없이도 먹을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생재료로 만들어 먹으면서 조미료와 멀어지면 조미료는 물론 나중엔 소금맛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하지만 불가피하게 계속 외식해야만 하거나 가공식품을 끊을 수 없다면 이 악순환 (과한 조미료로 인한 과식 - 영양불균형 (+탄수화물 중독) - 체지방률 증가 - 운동부족 - 근골격계질환 - …)에서 벗어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