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해킹의 연속?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컴퓨터를 몹시 좋아했다. 게임을 하기 보단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는데, 주변 환경이 그래도 제법 잘 받쳐주었던 덕택에 책도 많이 볼 수 있었고 컴퓨터도 빨리 가까이 할 수 있었다.

요즘 태어난 아이들은 컴퓨터보다 스마트폰을 더 가까이 하겠지만, 내가 어렸을 시절엔 그런 것은 없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스마트폰은 그 자신이 컴퓨터이지만, 애초에 창의적인 시도가 ‘보안’이란 명분으로 원천 봉쇄된 것이라 오직 주어진 선택만 할 수 있고 주로 엔터테이닝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뭔가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없으니까.

그렇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는 과정에서 컴퓨터로 주로 하던 일은 소위 해킹이라 불리우는 것들이었다. 네트워크가 일상화 된 이후로는 주로 네트워크를 가지고 노는 일에 몰두 했지만 그 전엔 주로 프로그램을 작성하거나 남의 프로그램을 변경해서 가지고 놀거나 하는 일들을 재미삼아 했다. 사실 다니던 학교들은 컴퓨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던 터라 집에 와서는 컴퓨터를 가지고 놀았지만 학교에선 전혀 다른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지냈던 것 같다. 사실 같이 이야기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컴퓨터를 한다는 친구들은 따지고 보면 그냥 게임에 열중하는 아이들이었지 프로그램을 작성한다는 이들도 찾기 힘들었다. 과학고 같은 쪽으로 진학하려는 아이들은 일찌감치 컴퓨터 경진 대회 같은 것들을 학원에서 준비하고 했던 것 같은데, 내 부모님들은 그런 것엔 전혀 관심이 없으셨고, 나 또한 어려서부터 부모의 프로그램에 따라 이력을 쌓는 일 따위 전혀 거리가 멀어서,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경진대회에 나가긴 했지만 미리 수도 없이 예상 문제들을 풀고 나온 아이들보다 더 빨리 심사관이 원하는 답을 작성할 수는 없었기에 운좋게 본선까진 갔지만 그대로 떨어지는 정도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컴퓨터로 주로 일을 해왔지만, 사실 하는 일들은 따지고 보면 해킹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하던 일도 해킹의 연속이었고, 논문을 작성하는 일도 해킹의 연속일 수 밖에 없다. 남과 같은 시도를 하면 그냥 one of them이 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취업을 하고 나서도 나에겐 주로 해킹에 관련된 요구들이 들어왔다. 남들은 그냥 주어진 일을 주어진 시간에 맞춰서 해결하고 퇴근하면 되는데, 밤늦게 남아서 남들이 안하는 뭔가를 해야 했다. 진작에 나가 떨어졌다면 나도 편하게 직장 생활을 했겠지만, 그런 것들을 어려움없이 하고 있었으니까 계속 그런 요구들만 들어오고 그렇게 살아가다보니 사실 경력이란 게 남들과 같이 어떤 직분에 어울리는 일들만 쭉 해온 그런 형태가 아닌, ‘얘는 도대체 뭘 한거야?’ 하는 식의 이력들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나도 남들과 같은 정규 교육과정을 철저히 밟았지만, 면접을 보거나 하면 면접관들이 흔히 보는 사람들과 다른 대답을 했으니까 싸우는 경우가 주로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취업이 힘든 시절에 면접관과 싸운다는 것이 말이 안되는 일이긴 하지만, 여하간 그랬다. 엉뚱하고 바보같은 답을 머리속에 그려놓고 있는 이에게 그 답이 말도 안된다 하면 당연히 화를 낼 수 밖에 없다. 좋게 포장할 능력도 없고 그냥 모자르고 빈틈이 많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안좋은 이미지로 입사하게 되지만, 늘상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부서로 배치되기 위해 잔머리를 굴려보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늘상 가장 기피하던 곳으로 계속 흘러 흘러 오게 되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운명이란 게 정말 있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하게 된다.

난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내가 받는 급료만큼만 일하고 급료만큼만 똑똑하고 급료만큼만 열심히 해서 일찍 퇴근하고 쓸데없는 일들을 받지 않기를 바랬을 뿐, 남들보다 빠르게 진급한다거나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정해진 시간만 일을 하고 그냥 나머지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살고 싶었지만, 태어난 성정이 그렇지 못했는지 늘상 뭔가 남과 다르게 하고 더 좋은 결과를 내려고 하며 살았다. 그렇다고 급료와 내가 받고 있는 처우가 그에 걸맞게 달라지진 않는다. 왜? 어차피 나는 그런 경로로 회사 생활을 하도록 뽑힌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냥 쓸데없이 과한 아웃풋만 내고 있었을 뿐인 것이다.

회사라는 조직은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의 사람들만을 원하고 그래야 그들을 그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처우하고 쓸데없이 과한 지출을 하지 않을 수 있으니 그렇게 굴러간다. 만일 기대 이상의 아웃풋을 내는 사람이 들어오는 경우, 어쩌다 아쉬운 일이 생길 때마다 이용하긴 하지만, 어차피 회사에선 입사시점에 그 사람의 ‘급(레벨)’을 애초에 정해버렸기 때문에 기대 이상의 업적이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관리하기 불편한 경우가 된다.

즉, 하루에 난이도 1의 문제를 1개 정도 풀어내는 사람을 뽑으려고 했는데, 난이도 10의 문제를 2-3개씩 풀어내는 사람이 들어오게 되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진급시키려고 하는 이들은 이미 정해져있는데, 그 사람보다 높은 수준의 업적을 내는 사람이 나타나면 여러 가지로 사람 관리가 불편해질 수 밖에 없다. 일단 그런 위치에 놓이게 되면 여러 회사를 전전할 수 밖에 없다. 회사도 그 사람을 때때로 이용하긴 하지만, 조직이란 게 문제없이 굴러가야 되니 제거하는 것이 편하고, 또 그 사람 역시 스스로 회사를 차려 자가 발전을 하면 좋겠지만, 이것은 그 사람의 전문성과 별로 관계가 없다. 실무를 기존의 방법과 다르게 해결해나가는 게 주 관심사인 사람인데, 갑자기 어디서 투자를 끌어오고 사람들을 데려와서 경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계속 살아가다보면 엘리트 코스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에 비해 삶의 루트가 피곤하면서도 복잡해지게 된다. 무슨 말이냐면 주어진 루트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의 경우는 그냥 매일의 일상을 하나의 과정으로 여기고 살아가면 되니까 일을 잘하든 못하든 상관이 없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매일 매일의 일상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엘리트 코스에 속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관리하기 불편한, 그 사람이 받는 대우에 비해 쓸데없이 과한 업적을 내고 있는 존재가 되어갈 뿐이다.

살아가다 보면 그런 사람들을 제법 보게 된다. 엘리트 코스로 정주행 할 이들은 시킨대로 그냥 하면 되니까 눈에 뜨이지 않는 반면, 이들은 어딜가나 반짝 반짝 하지만 어차피 엘리트 코스로 정주행하라고 뽑힌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냥 반짝반짝 하다가 이번엔 A회사에서 다음엔 B회사에서 보게 될 뿐이다. 물론 빠르고 창의적인 일처리가 어느 회사에 가 있든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늘 믿음이 갈 뿐이다.

흔히 티비나 잘 알려진 매체에서 보는 소위 엘리트에 속하는 이들은 그냥 조직에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이들에 불과하다. 이 세상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엄청난 것들은 전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타고난 적성이 그쪽에 딱 들어맞다보니 다른 길로 빠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의 능력에 걸맞는 대우도 평생 받지 못하면서 그냥 아웃사이더로, 사실상 실무의 해커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주어진 루트만을 타고 주어진 과업만을 수행하는 이들은 관리하기 쉽기 때문에 회사들은 원하지만, 막상 세상 일이란 게 그렇지 않아서 예상 밖의 요구가 들어오고 창의적으로 일해야 하는 경우가 계속해서 생긴다. 회사에서 원하는 판에 박힌, 회사가 딱 원하는 만큼만 일해주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수행할 수 없다. 그렇지만 회사의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의 사람이 어려운 일을 쉽게 해결해주었다고 해서 돌아갈 여분의 몫은 없다. 이미 다 정해져 있다. 억울해 하거나 분통 터져야 할 일이 아니다. 원인은 내가 뭔가 길을 잘못 선택했기 때문인 것이다.

이 세상의 인재는 잘도 찾아내서 대우해준다는 곳이라고 다를 것 같은가? 전혀 그렇지 않다. 해커의 삶은 그런 것이다. 언제나 가장 창의적이면서도 가장 실용적인 답을 내지만, 이것은 머리나쁜 이들의 입장에선 일종의 파격이기 때문에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회사라는 조직, 평범한 수준의 지능 수준을 갖는 관리자 밑에서 일하는 입장에선 그냥 관리하기 힘는 존재일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남과 다른 답을 내는 것은 학교에서나 ‘재미있는 놈’ 취급 받을 뿐, 사회라는 곳에서는 그냥 관리하기 불편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억울하면 회사 차리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