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지 않다..숫자 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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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이 시절이면 날씨가 좋다 못해 뜨거워서 대낮에 에어컨을 켜야 되나 (일반 사무실이나 관공서는 다 에어컨이 가동된다만) 하는 시즌인데, 오전에 기온이 떨어져서 겨울을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비까지 오고 온종일 날이 흐려 있는 걸 보고 있다.
그래서 도대체 오늘이 몇 일인데 이런가 싶어 달력을 쳐다보니 이런 저런 숫자들이 보였다. 그안에 뭔가 빽빽하게 이런 저런 업무일정 (남들이 채워놓은 약속들이다)이 있어서 ‘사람의 피를 말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지만. 내가 무슨 의사나 법조인이라면 이 정도 스케줄이면 널널하구나 하겠지만, 미팅만 하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니라 문제인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멍청해져서 점점 숫자도 외우지 못하게 되나 싶은데, 전화 번호도 스마트폰이 또 클라우드가 기억해주니, 또 번호이동/변경 때문에 사실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라고는 아주 예전에 만들어놓은 유선 전화기의 번호, 그리고 내 번호 뿐이다. 누군가에게 걸려오는 전화의 번호는 숫자가 아닌 이미지로 기억이 되어서 스마트폰에 등록이 안된 번호라도 대략적인 숫자 구성으로 아 누가 전화를 했구나 알 뿐이지 그 번호를 기억해내진 못한다.
그래도 신기하게도 내가 누군가의 생일을 외우고 있다는 것은 신기한 노릇이다. 내 생년월일을 외우고 있는 것은 한해에도 수도 없이 생년월일을 요구하는 경우를 마주하다 보니 외우기 싫어도 계속 반복학습이 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반복학습이 없이도 누군가의 생일을 외우고 있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스스로 리프레쉬를 하고 있기 때문인 것인가 싶기도 하고. 그러니까 내가 그 사람의 생일을 외우고 있다면 적어도 내가 그 사람들과 얼굴 볼 일이 없어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르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유독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 것이다. 특별히 어떤 날이라고 선물을 해주고 같이 식사를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머릿속에 기억되고 있다면 좋은 것 아닐까? 타인이 나의 생일을 기억해서 비싼 선물을 해주고 차려입고 비싼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런 시대니까. 기억만 하고 있다고 얘기해도 쳐맞을 시절이 된 것이니까.
아니 이미 연초에 이 날은 스페셜 이벤트 시즌이라 미리 여행지를 골라서 항공권과 럭저리한 숙소를 예약해놓고 휴가를 내서 먼 곳으로 여행을 가고 2-3일 이국적인 문화의 경험을 (식사는 이와 관련없이 웨스턴 + 에이시안 뷔페/퓨전 음식이어야 한다) 하면서 뭔가 스스로 럭져리한 생활을 잠시나마 하고 오면 뭐랄까 인정을 받는 그런 시대다 ㅆㅂ. 재미없는 일을 억지로 하니까 즐거울 일도 휴식이 될 일도 없다. 왜? 휴식을 위한 휴식이니까? 내가 계획한 대로 일정이 진행되고 있는지 아닌지 예외의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상대방이 별 것 아닌 것으로 기분이 상할 일은 없는 것인가 수시로 살펴야 하는 입장에서 휴식은 개뿔.
그러니까 자신은 가만히 있어도 자신의 생일엔 특별한 이벤트를 만들어줘야 한다(?)하는 생각. 여태까지 살아있고 멀쩡히 지내게 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기보단.
그렇지만 내 생일 날엔 ‘생일 축하해’란 말 한마디만 들어도 다행인 그런 관계. ㅆㅂ. 쓸데 없는 물건을 선물로 받거나 좋아하지도 않은 식당에 끌려가는 (돈을 내야 하는) 괴로움을 당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
어차피 내 생일 따위 대접 받으려고 타인의 생일을 챙기는 게 아니다. ‘내 인생이 망가진 게 다 너 때문이다’ 란 소릴 듣기 싫어 그랬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