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감정과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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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감정과 참으로 오래도 싸워왔던 것 같다. 한 때는 약의 도움도 받아보기도 했고.
약은 뭐랄까 내가 그 약에 맞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원래 별로 도움이 안되는 것인지 기적적으로 나의 삶을 크게 바꿔놓지는 못했고 뭐랄까 최악의 상황은 막아주는 역할을 한 것 같다(?)고 생각되어질 뿐이다.
그러니까 ‘약을 먹었으니 뭐라도 차이가 있겠지’ 이런 거 말이다. 내 주위 사람에게 나의 변화를 물어봤을 때는 ‘훨씬 나아졌다.’라고 말을 하긴 하지만 정작 본인인 내 자신은 뭐가 달라졌는지 잘 인식을 못했다. 그만큼 내가 우울하던 순간의 내가 나를 관찰하지 못하고, 그것이 나아지는 것 또한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서서히 변화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만.
내게 있어서 내 모든 우울함의 근원은 오래 관찰해 본 결과 ‘불안함’에서 기인했다. ‘잘 안될 것 같다’라거나 ‘이것 때문에 더 안좋은 결과가 발생할 것 같다’, ‘그토록 노력하고 애썼지만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아니 될리가 없다’라든가 하는 생각들이 계속해서 몰아친다.
그게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무너뜨려서 둑이 터지듯 하게 되면 삶이 무너진다. 자포자기의 상태라기보단 그냥 아무런 의욕이 없어지는 것이다. 차라리 자포자기하면 아무렇게나 살아버리면 되니까 그편이 낫지 싶다. 제대로 아주 화끈하게 일탈해서 살아보고 정신차린 다음에 돌아오면 되니까. 이것은 그것도 아니고 고도의 불안상태? 처럼 된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상황보다 더 심한 불안의 상태다. 뭘 하든 위험은 어디에든 도사리고 있고 그 위험이란 것의 정도가 삶을 위협하는 수준의 것이 아니지만 또 삶을 위협하는 따위의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막연한 엄청난 불안감을 갖는 것이다. 그 우려해마지 않는 그 상황이 오게 되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나갈 방법이 있고 그것 하나로 지금의 내가 무너질 일은 없지만, 그런 생각들에 매몰되고 납득되어 무너져버린다는 것이다.
뭐랄까 이것의 좋은 점은 내가 나를 알게 되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어떻게든 우울감과 싸워내고 있는 단계에서나 오는 생각이긴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을 압박하기 위해서 고안해낸 생각들을 보면서 내가 어떤 것에 그토록 신경써왔는지, 매달려왔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내 심리의 취약점을 우울한 생각이 쏟아져들어올 때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하나씩 허물면서 삶이 변화함을 느끼게 된다.
결론은 별 게 없다. 그냥 허무한 생각의 나열일 뿐이다. 예전까진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들은 사실 다 의미가 없는 것인데 쓸데 없이 몰입해서 살았구나 하는 것 뿐이다. 그 어떤 우려할 만한 일이 일어나도 나와 내 삶엔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다는 것. 또 그 누구도 결국엔 늙고 기운없어지고 죽게 된다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한 생각들을 연결해보면 살아가는 순간 그 하나하나가 모두 나에게 베풀어진 소중한 기회라 눈치를 본다거나 된다 안된다 따지고 고민하고 갈등할 새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늘 이런 생각이 날 잘 붙들어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울한 것에 대해서 정의하는 것들이 워낙 많고 그 증상에 대한 이야기도 워낙 많아서 도무지 뭐가 뭔지 뭐가 옳은지 혼란스러운데, 내 경우만을 따지고 보면 이렇다.
-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장 혐오하는 결과가 발생할 것 같다는 생각들, 어차피 이렇게 더 가다가는 상상도 못할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니 더 살만한 이유가 없다는 결론으로 맺어지는 생각들의 연속이 튀어나옴
- 그런 생각들이 자꾸 튀어나오다보면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을 비관하고 스스로가 싫어지고 그래서 스스로를 구제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학대하고 싶은 감정이 솟아오름.
- 살아있을 가치 따위 없는 존재니까 빨리 없어져, 아니면 더 이상 추해져서 민폐나 끼치는 존재가 되기 보기싫으면 여기서 생을 마감해라는 결론을 맺게끔 스스로를 몰고감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들이지만 실제로는 수도 없이 휘말려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약을 먹으면 뭐랄까 머리가 좀 멍해져서 허튼 생각들이 좀 덜 올라온다고나 할까? 그래서 조금 나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가 약을 끊거나 하면 예전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런 상태를 지금의 기준으로 놓고 과연 내가 10년 전엔 혹은 5년 전엔 어떻게 살아왔던가 생각하면 정말 기가막힐 노릇인 거다.
과거 10년 전, 5년 전의 나를 정상으로 본다면 지금의 나는 생각 과다/비정상적으로 많은 위험의 경우를 따지고 있는 미친놈인 것이고 반대로 지금의 나를 정상으로 보면 10년전 5년전의 나는 마치 핼멧도 안쓰고 붐비는 도로를 오토바이를 타고 미친 듯 질주했던 철없는 놈과 다름 없다.
쉽게 말해 지금의 나는, ‘아니 도무지 살면서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면 힘들어서 어떻게 살아갑니까?’ 하는 것이고 과거의 나는 ‘아니 그렇게 생각이 없이 어떻게 살아왔을까? 간이 배밖으로 나왔었구나 완전히..’ 이런 거다.
확실히 생각과다증(=우울증)인 것은 맞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예전엔 한가지 위험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적어도 4-50가지 위험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맞다. 일부러 생각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수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솟아오르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또 일을 같이 하다보면 그런 게 다 보인다.
나이 먹어도 철없는 인간 (=삶을 힘들지 않게 살아왔다는 증거지 싶다)과 지독히 우울한 (=생각이 많은, 우울증과 끊임없이 싸워온) 인간.
아쉽지만 살 날이 그다지 많지 않아보이는 사람도 10년 20년 후를 걱정하며 살고 있고, 사실 언제 죽을지 알지 못하지만 그들보다 3-40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3-40년 앞을 생각하면서 앞이 깜깜하다 하는 나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그냥 생은…말 그대로 ‘생’으로 즐겨야 되는데 말이다. 살아있는 지금을 즐겨야 되는 것이다. 음식도 갓 만들어져서 그 재료들의 숨이 살아있을 때 먹어야 제 맛이고 인생도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즐겨야 제맛이다. 어디서 어떻게 또 뭘 위해 태어났건 (그런 게 의미 있을리 없는데) 말이다.
따지거나 가리거나 쓸데없이 복잡한 것은 한마디로 우울(=생각과다)하단 거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구실이나 핑계를 늘어놓는다는 자체가 그 사람이 그렇게나 우울하단 것이다. 이 세상에서 우울한 사람을 신경 써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재밌고 활기차고 남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주어도 관심을 가져줄까 말까한 세상에서.
뭐든 다 된다. 뭘 하면 그에 따른 위험이 따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뭘 하지 않아도 그에 따른 위험이 따른다는 생각은 잘 모르는 모양이다. 그냥 살아있는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어차피 이러든 저러든 위험할 거라면 조금이라도 재밌고 즐거우면 되는 거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니 아무것도 안하고 웅크리고 있는 것 보단.
물론 그 재밌고 즐겁고 유익하다는 것도 다 내 기준을 따라야 한다. 남들이 아무리 좋아서 펄펄 뛸 정도라고 해도 내가 안 즐거우면 그뿐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