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mpbox pedal effect 만들기...

예전에는 심심할 때면 이펙트 키트를 사서 조립하곤 했다. 어차피 한두 번 써볼까 말까 한 물건인데도, 단순히 손으로 만지고 만들어보는 재미에 끌려서였다.

지금은 같은 심심함을 해결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그걸 플러그인으로 만들고 있다. 회로 조립보다는 시간이 좀 더 걸린다. 만드는 데는 그래픽 포함해 1시간도 안 걸리지만, 실제로 그럴듯하게 작동하도록 튜닝하는 데 시간이 훨씬 더 많이 든다.

예전에 TS808이라는 이펙트를 재미 삼아 만들어본 적이 있다. 최근에 그걸 다시 꺼내서 만들어보다 보니, 예전 버전에서는 부족했던 부분들이 많이 보였다. 그래서 다시 새롭게 손보고 꾸며두었다.

막상 다시 만들어보니, 이번에는 실제 이펙트와 거의 똑같이 동작하는 수준까지 와서 훨씬 더 만족스러웠다.

요즘 부쩍 느끼는 게 있다. 사람은 어떤 새로운 것에 가까이 다가서면, 1–2시간이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이제야 체감한다.

TS808을 처음 본 건 10대 때였던 것 같다. 키트를 구입해서 조립해본 건 15년 전쯤, 그리고 플러그인으로 만들어 본 건 대략 11년 전쯤 된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 이펙트가 왜 명기라고 불리는지 이제서야 알게 된 것 같다.

전기전자 전공을 했고, 플러그인도 제법 만들어봤기 때문에 처음엔 전기회로 모델링 정도는 쉬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고 다시 내가 만들어둔 걸 보니, 한심스러울 정도로 엉성한 부분도 많고, 중요한 포인트들이 애매하게 처리되어 있었음을 알게 됐다.

보나마나 TS808이란 이펙트가 opamp 증폭단 두 개에 불과한 간단한 이펙트라서 (내 실력은 과대평가 한 반면) 과소평가했기 때문일 거다. 별 것 아니니 쉽게 할 수 있겠지. 사실 쉽긴 하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뭔가를 만들면 꼭 검증하고 실험해보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취미로 하는 일일지라도 어설프게 대하면 아무 것도 안한 것이나 차이없는 결과를 내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1시간을 쓰더라도 처음 하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제대로 된 결과를 내는 게 더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한 달 내내 작업했어도 일 자체를 과소평가하면 결과도 그만큼이나 별볼일 없는 수준으로 나올 수 밖에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물론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한 번이라고 경험해 보는 것이 사람의 머릿속에 중요한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당장엔 별 볼일 없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 다시 지나보면 생각보다 나의 관점이나 생각이 많이 숙성되어있음을 알게 된다. 아예 아무런 씨앗도 뿌려지지 않았다면 여전히 같은 수준에 머물고 있었겠지만.

어쨌든 덕택에 요즘 유행하는 다른 오버드라이브 뿐 아니라 diode clipper를 쓰는 앰프들도 잘 모델링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