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과자로 살아보기...

요새처럼 험한 시절에 실제로 내가 저성과자로 분류되었다거나 그래서 불이익을 당할 처지에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본의 아니게 전문 분야를 떠나 전혀 새로운 영역에 진입했을 때의 막막함을 말하고 싶다. 특히 그 분야가 막 시작된 곳이 아니라 20년 넘은 역사와 전통을 지진 곳이라면, 세상 그 어떤 능력자를 데려다 놓아도 한동안은 저성과자의 머무름을 견뎌야 할 것이다.

나 또한 요새 그런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잘해내고 싶다는 의욕과 달리 마음처럼 되지 않는 현실 사이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크게 앓아누운 것은 아니었으나 컨디션 난조가 이어졌고, 생전 없던 증상들까지 나타나며 ‘쉬지도 못하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긴 정체기를 겪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상황을 배려받으며 6개월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제야 마음이 서서히 편안해진다. 한때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쉴까 고민도 했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고통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사건에서 ‘감정이 섞인 해석’을 걷어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흔히 뉴스나 유튜브 등 각종 매체를 멀리하라고 권하는 이유도 아마 그곳이 감정을 자극하는 언어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안을 야기해 판단을 교란하는 정보들은 인생의 ‘멀웨어(malware)’와 같다.

세상 만물에 본래 좋고 나쁨도, 깨끗하고 더러움도 없다는 말은 결국 삶을 감정의 언어로 해석하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교육과정에서 확률과 통계를 배우지만, 정작 삶의 사건들이 인과관계인지 혹은 독립적인 사건인지 분간하는 데 서툴다. 그저 감정적인 해석을 덧붙여 사실을 왜곡하고, 그것으로 비관적인 자기 서사를 써 내려가기에 삶이 더 고달파지는 것이다.

결국 삶이란 나 자신의 어리석음에 저항해 나가는 과정 아닐까. 특별히 명석하거나 훌륭하지 않아도, 그런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다 보면 현인은 못 될지언정 최소한 ‘나잇값’하며 사는 어른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귀한 깨달음을 준 것이라면, 잠시 ‘저성과자’로 살아보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