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ways online

컴퓨터를 켜든 스마트폰을 wake-up하든 항상 online 상태가 되어있어야 뭐든 할 수 있다.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꺼져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려버린 마냥 뭘 하려고 해도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야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기억엔 93년쯤인가 아는 분의 도움으로 그분 학교의 네트워크와 전화 모뎀을 이용해서 email을 주고 받거나 mosaic이라고 지금은 구경하기 힘든 브라우저를 이용해서 WWW에 접속할 수 있었다. 물론 접속해봐야 HTML을 쓸 수 있는 일부 사람들이 자신의 기관이나 자신에 대해서 소개하는 사이트가 있는 게 전부였다. 좀 앞서간 곳에서는 CGI를 이용해서 지금과 꼭 같진 않아도 데이터 베이스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방명록/게시판 같은 것들을 제공했다.

검색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야후가 있었는데 워낙 인터넷에 존재하는 WWW 사이트가 많지 않았으니까 지금처럼 해박하게 찾지 못하고 디렉토리/카테고리 별로 선택하면 알려진 (자발적으로 신고한) 사이트 여러 개가 list up되는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지금 사람들에게 WWW라는 말도 별로 익숙하지 않을 듯 하다. 야후를 통해서 검색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야후는 포탈 서비스까지 쭈욱 망해버린 것 같다. 검색 엔진으로 너무 단촐하지 않나? 했던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통해서, 크롬을 통해서, 다양한 구글 앱, 지도 등등 일생활 전반에 걸친 서비스를 통해서 전 인터넷을 다 장악해버린 듯 하다. 이젠 웹이라는 말도 잘 안쓰는 것 같다. 그냥 인터넷이면 웹, WWW를 말하는 것이지 싶다. 80번 혹은 443, 또는 8080 포트를 이용해서 통신하는 서비스라고 알 필요도 없다.

일을 하려고 자리에 앉았는데 무슨 이유인지 인터넷이 서비스 되지 않는다. 내부 와이파이도 마찬가지고. 건물이 제법 두터워서 외부의 데이터 서비스 신호가 약해서 통신사 데이터망으로 붙기도 어렵다. 이런 날은 내 폰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폰도 다 같이 외부로 접속하기 위해서 열심히 쏴대고 있는 터라 더더욱 접속하기 좋지 않다.

마치 전기가 나가버린 것 같다. 당장에 해치워야 하는 일 몇 가지도 해결 할 수 없다. 당장 해결 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내일 해도 되고 다음 주에 해도 된다. 그런데 지금 못하면 무슨 일이라도 날 것 같다. 나에게 몰려와서 무능을 지적할 것만 같다. 그렇다 난 무능하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끊어지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무슨 일로 인터넷이 되지 않는지도 알 수 없고 나에게 쏟아지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메일 하나 받을 수 없다. 차라리 다행인 것인데, 인터넷이 안되서 일을 못했다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만 같다.

도무지 인터넷이 되지 않았던 시절엔 어떻게 일을 했단 말인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컴퓨터에 있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고립된 정보만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적어도 이미 입증된 정보를 활용하여 내 자신의 결과물도 마찬가지로 입증된 결과를 바탕으로 정확도가 높은 일을 할 수 없다. 인터넷이 없으면 그 정보를 어디가서 구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것이 이미 어떠한 절차를 통해서 입증된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생각해보면 예전엔 뭔가를 공부한다 배운다고 하면 무조건 도서관부터 갔다. 도서관 검색 시스템은 있었지만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기에 꼭 도서관에 가서 검색해야 했다. 그 내용이 검색 시스템에 있는 것이 아니고 검색 시스템은 오직 서명과 정기간행물의 경우에는 발행 월 정도에 대한 정보만 있었으니까 어떠한 정보를 하나 찾기 위해서는 과월호를 전부 뒤지든 연재된 내용들을 읽어가면서 참고 문헌들을 찾고 또 찾고 하는 식으로, 즉 cross-reference를 이용해서 찾아내야만 했다.

그다지 대단하진 않지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엔 하루 내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도 찾지 못한 경우도 있다. 대신 cross-reference를 이용하려고 이런 저런 article을 읽다가 궁금증만 되려 커진 상태로 집에 돌어와야 할 때도 있었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을 자리에 앉아서 다 해결할 수 있다. 예전처럼 잡지를 구독하거나 잡지를 구독하고 있는 도서관에 가서 과월호를 열람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런 내용들은 강호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서 유튜브를 통해서 올려놓고 있는 지경이다. 그냥 썰을 풀어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실험하는 과정까지 친절하게 올려놓는다. 모든 궁금증은 일거에 해소되고 연관된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퍼져나가면서 삽시간에 나는 관련 정보의 대부분을 흡수한다. 예전 같으면 하루는 고사하고 여러 달 걸쳐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내용까지 모두 알게 된다. 내가 고민하지 않아도 내가 실험하지 않아도 모두 보고 들어 알게 된다. 확인을 위하여 연관된 내용들을 같이 검색할 수도 있다.

극우성향을 띤 국내 일간지, 극우성향의 사이트들을 빼고는 대개 인터넷에서는 엉터리 정보가 올라오거나 하면 어떻게든 feedback이 돌아가게 되어있다. 대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올리는 이들의 채널을 정기 구독하기도 하고.

1시간이 넘었는데 여전히 인터넷은 불통상태다. 예전같으면 다들 자리에서 일하느라 조용할 시간인데 입으로 통신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관계로 제법 시끌시끌하다. 인터넷이 발전하기 전엔 다들 이랬다는 거다. 그들이 알아낼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제한되어있고 궁금증은 자꾸 생겨나니 그들끼리 토론하는 방법으로 앎의 욕구를 채워간 것이 아닐까? 궁금하면 교수님, 선생님, 아빠한테도 물어보고 엄마한테도 물어보고 형에게, 동생에게 물어봤다. 서로 답을 알 수 없으면 토론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상상의 나래도 펼치고 공상도하면서 그렇게 우스개 소리도 나누면서 살았다.

지금은 3-4살짜리 아이도 스마트폰을 잘도 다룬다. 궁금한 것들을 직접 검색해서 찾는다. 예전 3-4살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가나다라 가 아닌 한글을 깨친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것이 어설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교수님, 선생님, 엄마, 아빠보다 낫다. 일부러 이 사람들을 귀찮게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들과 대화하면 번거롭다. 많은 시간이 들고 많은 에너지가 든다. 서로 소통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소통 쯤이야 인터넷에서 알게된 누군가와 하면 된다. 내 주위 그 누구보다 내 말을 더 잘 알아듣고 이해하는 것 같다. 그 존재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그렇게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매달려있는다. 찾을 것이 없고 궁금한 것이 없어도 그게 낫다. 어차피 온종일 아니 여러 날, 여러 달 들여다보지 않았던 서로의 얼굴 갑자기 생뚱 맞고 어색하게 서로 들여다 볼 필요있나? 어차피 너나 나나 당장에 서로 필요없잖아? 배고플때 알아서 찾아먹고 자기 방에 들어가 스마트 폰이나 들여다보고 있으면 서로 필요한 것들은 다 얻을 수 있는데 복잡하게 서로 말 섞고 얼굴 쳐다보고 할 필요 없잖아. 그래도 우리는 같은 집에 같이 살고 있고 그러면 된 거 아냐? 법적으로 우리가 가족으로 묶여져 있는 관계이고 당신이 나를 부양하는 입장이면 우리에게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될 것을 하면 되지 나에게 뭘 하라고 강요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 거야. 당신은 당신의 의무만 하면 그뿐. 난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니까.

인간적인 유대관계라든가 서로에 대한 배려와 감사 같은 걸 할 필요없는 시대가 된 것인가? 어쩌다 인터넷 세계에 대해서 그다지 익숙하지 못한 실제 세상의 사람이 실제 세상의 언어로 실제의 인간을 대하듯 온라인 상에서 어수룩하게 말을 잘 못 쏟아냈다가는, 방안에서 혼자 뒹굴며 잠재된 분노를 터뜨리지 못하던 좀비들의 타겟이 된다. 명목상은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의 인권과 정의를 실현하는 것처럼 하지만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공격성을 마음껏 분출한다. 어리숙한 인간이 좀비 떼의 습격을 받듯.

갑자기 인터넷이 나갔던 전기 들어오듯 연결이 된다. 빨간 불이었던 것들이 파란 불로 바뀌었다. 갑자기 메일 클라이언트로 일이 쏟아져들어온다. 어차피 급료는 통장 계좌에 꽂히고 이메일을 통해서 일을 지시하고 결과를 전달하고 좀 귀찮지만 토론도 가능하니까 피차 얼굴 볼 일 없다. 꼭 봐야겠나? 그냥 컨퍼런스 콜이나 하지. 서로 얼굴 보면 뻘쭘하잖아. 할 말도 생각나지 않고. 말은 떠들기 좋아하는 당신이 해. 나는 그냥 듣고만 있을께. 필요하면 yes/no만 할 테니. 아니 의견이 없을 땐 잠자코 있을 테니. 당신 마음대로 해. 적어도 당신 마음대로 했으니 책임도 지겠지? 그 정도로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않아. 난 이 따위 일 전혀 좋아하지도 않고 입사하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남의 일을 해주면서 그 대가를 받아가는 거라 생각하며 살아왔으니, 책임은 당신이 지고 난 시키는 일만 해줄께. 더 이상 요구하지도 말고 간섭하지도 마. 어차피 주어진 시간 동안에 마치면 피차 거래는 완료되는 것 아닌가? 결과에 불만이 있다면 이메일로 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