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가죽 수첩 (黒革の手帳)

2016/2017년 일본 드라마를 이러다가 거의 다 보게 되는 게 아닐까 하고 엄청나게 보고 있는 중이다. 구할 수 있는 자막도 없고 한국에 있는 상황도 아니라 채널J라든가 채널W에 쉽게 가입해서 볼 수도 없으니 애매한데 어쨌든 열심히 시청하고 있다.

검은 가죽 수첩이라고 검색해보면 예전 요네쿠라 료코가 나왔던 버전의 포스터가 나오는데, 최신작에는 타케이 에미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일본 드라마 역사상 다양한 버전의 검은 가죽 수첩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있었지 싶은데,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타케이 에미가 주인공이 된 것은 역시나 앞으로의 드라마 판을 이끌어갈 최대 유망주라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 입장에서는 이런 드라마가 처음인지라 연기라든가 역사적인 의미라든가 알바 없고 줄거리를 중심으로 보게 되는데, 대충 요약하자면 돈과 권력에 미친 인간 군상들이 나와서 서로 물고 뜯는, 그러다 죄다 파멸하는 (스포일러인가?) 그런 드라마다. TV 드라마이다보니 많은 부분이 순화되어있어서 긴장감이 생각보다 크지 않지만 어쨌든 볼만하다. 또 원작의 주인공은 아마도 내면이 상당히 터프하고 돈에 서린 ‘한’이 엄청난 사람일듯한데 그런 이미지가 타케이 에미의 애띤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아 몰입도가 떨어지는 면도 있긴하다만, 요새 그런 이미지의 여배우를 찾기도 쉽지 않을테니 그러려니 하고 보게 된다.

드라마의 재미는 등장인물들이 갖는 삶의 방법과 목표, 의미를 얻는 방법들을 관찰하고 내가 가진 나의 인생관과 비교해보는 것인데, 그것은 작가의 상상에서 나왔다고는 해도 작가가 알아왔던 사람들의 인생관에 작가의 인생관을 더 한 것이니까, 또 그 드라마가 인기가 있었다는 것은 일본 사회의 많은 부분을 차지 하는 사람들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으니까 여러 배의 재미가 있다고 해야하지 싶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크게 느낀 바는, 기왕에 돈에 한 맺혔다면 저렇게 살아야지 맞지, 욕망을 추구하려면 저 정도의 근성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였다. 주인공이 그러한 자신을 변호하는 말은 늘상 ‘인생은 한 번 뿐이니까요’인데 비교적 평범했던 사람 하나가 일순간 삐딱선을 타서 발전(?)하는 속도가 너무도 빠르고 잘 준비가 되어있어서 인기가 있었지 싶다. 보는 내내 이들의 욕망 추구가 너무나도 진솔해보여서 ‘(극중 인물들 처럼 절실하게 살아오지 못한) 나는 뭔가?’ 이런 생각만 계속하게 된다.

드라마의 가장 마지막, 그러니까 마지막 화의 엔딩 크레딧이 나온 뒤에 주인공도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런 드라마의 특징상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깨닫음을 얻고 끝나는 그런 구성이라기 보단 아쉽게도 1차 시도는 실패했지만 2차, 혹은 3차 시도에서는 대박을 낼 수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란 느낌이었다. 주인공의 나이가 1차 실패 치고는 매우 어리고 1차 시도로 보기에 판돈이 비교적 컸던 것을 보면 말이다.

내가 보아왔던 사기 행각들의 돈 크기를 보면 역시 그 바닥에서 일종의 고단수의 경지에 이른 이들은 진작 나이 어릴때 부터 해쳐먹는 돈의 액수의 크기가 남달랐고, 그들의 일종의 전성기인 40대 후반 50대 초반에는 판돈 자체도 일반인의 기준에서 보면 상상을 초월하고 그들이 그렇게 많은 돈을 수금하고 처벌을 받고 풀려나오고 하는 과정에 대한 거의 모든 수순을 완벽하게 마스터하고 있어서 그들이 잃게 될 것에 대한 계산도 철저하기 때문에 그 모든 고통의 비용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다시말해 드라마의 종국에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되긴 하지만, 그렇게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욕망을 추구하기 시작한 이상, 또 마지막 깨알 같은 몇 %가 모잘라 걸리게 된 것을 잘 알고 있는 이상,개과천선(?)할 이유도 없고 더 화려한 재기를 꿈꾸며 수법은 보다 대담해지고 판돈도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