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독서..
on
책을 가장 많이 읽었던 시절은 초등학교 저학년-고학년에 걸쳐 위인전기와 문학전집 같은 것들을 읽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 이후로는 학교에서 시키는 것도 귀찮아했으니까 뭐 말 다했지. 단행본이나 전집으로 된 책들보단 문제집(이것도 책이라고 할 수 있나)같은 것들, 기껏해야 입시 문제가 나올만한 소설들은 어쩔 수 없이 구해다 읽었던 것 같다만서도, 결국, 이런 저런 사고의 틀을 넓혀갈 시절에는 일생의 도움이 안되는 전공책들만 내 곁에 있었을 뿐. 그러니까 제대로 된 사회/교양 서적들과는 아예 담싸놓고 살았단 얘기 되겠다. 특히나 그런 교양서적들의 제목들을 열거하면 나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감히 읽을 생각도 안했고. 그러니까 결국에 대학을 졸업하고 해도 스스로에게 지식인이라는 딱지를 붙이기가 미안하지게 되는 것이지.
무슨 필요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샌 미친 듯이 그런 책들이 끌린다. 이 나이가 되도록 머리속에 차 있는 것들이라고는 같지 않은 단편적인 전공 지식이나 용어가 전부이고, 매주 얼굴 보는 영어 선생님이 시키는 에세이 나부랭이 써오라면 솔직히 무슨 통계자료 정리해가듯 상황 정리에 급급할 뿐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라는 것은 나올 이유도 없고,그렇다고 아는 것들을 조합해서 지어낼 구라도 없고, 결국 스스로에게든 타인에게든 구라로부터 비롯된 어떤 미래의 희망이나 비전같은 것들 심어줄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제 나이는 어느 덧 내 예상 수명의 절반을 지나가고 있것만..
요새 같아서는 내 손가락이 제 구실을 하는 동안만 살고 싶다.더 사는 것은 끝없는 스스로에 대한 최면걸기로 이어질 것같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음에도 보게될 일들은 비참함 뿐이다. 물론 그 이후의 인생에 뭔가 희망을 걸어본다는 것은 더더욱 미친 짓이지. 젊어서는 마누라 눈치보느라 이도저도 아닌 채로 비굴하게 살았다치면, 늙어서는 자식 눈치까지 보면서 있어도 없는 듯 비참하게 살아야 될까? 그것도 청춘을 다 바쳐서 아끼고 아껴 코딱지 만큼이라도 쌓아놓은 것들 다 물려주고 가는 것도 지극히 억울한 마당에..
그나마 나의 무관심한 성격 덕택에 내가 아버지나 어머니의 인생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하면서 눈치보며 사시게 하지 않았던 것들은 어쨋거나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나이가 이제 고작해봐야 10살도 되지 않은 딸내미가 어쩌다 주제 넘게 나의 인생에 대해서 평가하는 듯한 말을 내뱉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고작 이따위 삶을 살자고 그 부지런을 떨고 그 미련을 떨고 살았나하는 후회가 들 때가 있다. 생각같아서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뿌리까지 찾아서 죄다 뽑아내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래봐야 이제 시작인 걸.
어찌보면 쥐뿔도 모르는 초등학생이 보는 어른 들의 인생 모양새가 더 정답일지 모르겠다. 미련하고 바보 같아도 결국 나 역시 내 앞세대 사람들과 좋은 모습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그래도 그 땐 희망이라도 있고 이뤄야 할 목표도 있지 않았는가?
다들 무슨 목표로 인생을 살고 있나? 나 죽은 뒤에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에 신경쓰며 살진 않지만, 적어도 살아가면서 속 뒤집어지는 소리 듣으며 살고 싶은 사람 있을까? 나도 이제 산에 다닐 때가 된건가.. 무지하게 초라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몸이 달라는 대로 부지런히 책을 읽어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희망을 찾고, 혹여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설픈 구라라도 지어낼 용기라도 생기게 되면 다행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