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1210을 디벼볼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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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2290은 누군가 친절하게도 거의 모든 기능을 테스트해준 덕택에 쉽사리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가능했다. 어차피 디지털 제품들은 회로도를 보여줘도 S/W를 열어보지 않는 이상은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불가능하다. 특히나 내부의 firmware를 binary로 덤프 받았다고 하더라도 역시 해석하긴 쉽지 않다. 당시 사용하던 processor를 현대적인 언어로 추상화하는 일도 어려운 일일 뿐더러 disassembler를 가까스로 구해서 line-by-line으로 읽어 내려가기엔 솔직히 새로 하날 만들어내는 것이 빠르다.

그래서 복각 작업은 어찌보면 의미없는 일인 듯 싶다. 완벽하게 재현했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동일한 부품을 사용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닌 이상 완벽하지 않다고 할 수 있고, 또 리버스엔지니어링 하지 못한 부분을 짐작해서 더 개선된 알고리즘으로 만들어 냈다고 해도 불만족스러워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UI가 조금만 달라도 아마도 같지 않다고 불평할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매우 인기 좋았던 랙타입 stereo chorus이 바로 TC1210인데 아무리 구글링해봐도 메인 보드 사진 한장 찾기 힘들다.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메뉴얼은 워드로 열심히 만든 4-5장짜리 문서인데 간단한 블록다이어그램 하나 없다. 엔지니어가 그림 그리기 싫어했든가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우려한 것인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TC2290의 블록 다이어그램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걸 생각하면, 잘한 일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찾아본 것이 TC의 SCF라는 물건인데 Stereo Chorus/Flanger라는 물건이다.

대략 TC1210을 보면 그 자체가 디지털 signal processor로 보이지는 않으니 결국 얻을 수 있는 결론은 SCF와 chorus/flanger 회로는 대략적으로 공유를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이 물건은 chorus만 있는게 아니라 일종의 delay도 같이 가지고 있다보니 사실 좀 어려운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이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또 mode가 총 4가지인데 이것들이 어떻게 컨트롤 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일단 시작이 반이라고 SCF를 뒤져보면 찾을 수 있는 회로도로 대략적인 알고리즘을 유추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 바, 회로도를 훑어보기로 한다.

회로도는 누군가가 아래의 포럼에 공개해놓았다. 링크를 알려주는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 행동이니 혹여 관심있는 사람들을 위해 붙여놓는다.

http://www.diystompboxes.com/smfforum/index.php?topic=28580.0

회로도를 보면 NE570이라는 Compender (Compressor + Expender) + MN3007 (Short delay) 부품을 활용해서 만든 ‘코러스/플렌저/숏레인지 딜레이’로 요약할 수 있다. 즉 VCA와 Delay (BBD)가 결합된 것이다.

VCA는 증폭률을 외부의 다른 전압이 결정하게 하는 증폭기, 즉 전압이 증폭률을 컨트롤하는 증폭기: voltage controlled amplifier로 컴프레서라든가 그 반대 기능을 하는 것 혹은 리미터 같은데 쓰이는 부품이다. 즉, 입력의 진폭을 다른 전압값으로 바꿔서 그 값을 증폭률을 결정하는데 넣어주면 입력의 진폭이 작을땐 크게 증폭하고 진폭이 크면 작게 증폭 (혹은 그 반대 혹은 어떤 방법이든)하게 하는 데 사용한다.

BBD(bucket bridge device)라는 것은 아래 그림과 같이 switching용 TR들이 줄줄이 연결되고 그 TR을 외부 clock이 컨트롤해서 clock이 1일때 전류를 흘려주고 0이면 흘리지 않게 (뭐 혹은 그 반대든)하고 그 TR의 종단에는 C가 매달려서 충전이 되게끔 되어있는데, 두 종류의 클럭이 들어가서 이를테면 클럭1이 짝수번 TR을 컨트롤하고 클럭 2가 홀 수번 TR을 컨트롤하게 되면, 두 클럭의 부호가 반대라고 보면, 입력신호가 1 clock마다 1 TR씩 건너와서 다음 C에 충전되고, 그 다음 C는 방전되어 다음 C로 넘어가고 뭐 그런 식인 것이다. 이런 연결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있다고 보면 된다. 결국 이 연결의 길이와 clock의 빠르기가 최대 delay의 길이를 결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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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품도 있나 생소할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딜레이 이펙트에 있고 노래방 기계에 없어서는 안되는 부품이라 친숙한 물건일 수 밖에 없다.

입력단 버퍼와 필터, 그리고 NE570을 구동하기 위한 주변 회로 (LFO를 포함해서), 그리고 MN3007, LFO, 그 주변 회로가 전부 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쉽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하자면 LFO가 delay에 들어가는 clock을 흔들어주어서 입력 신호가 빨리 혹은 느리게 플레이가 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고, 주파수를 서서히 올렸다 내렸다 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이 출력은 다시 입력으로 feedback이 되어 코러스의 성질을 결정한다. 5.7~57ms 정도의 짧은 delay인데

왜 이런 식으로 회로가 구성되었는지는 Chorus/Flanger/Phaser 알고리즘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뤄보기로 하자.

일단 이번 포스팅에서 얻은 결론은 TC1210은 TC2290처럼 디지털로 쉽게 리버스엔지니어링이 될 수 없는 아날로그 회로라는 것이다. 같은 뉘앙스의 사운드를 얻기 위해서는 아날로그 회로를 제대로 분석해야 가능하다. 엄청난 노가다라고 볼 수 있다. 진공관 회로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쉽지만, 진공관 회로에는 없는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2개의 IC가 존재한다. 괜한 노가다는 삼가하고, TC1210의 중요 기능 설계 내용만 참조하고 그 핵심을 디지털로 구현해 낼지만 고민하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