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어렵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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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기도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관상기도라는 말 자체가 뭘 어떻게 하는 기도인지 그대로 이해하기는 좀 어렵다. 한자의 뜻을 보면 상을 관(본다)하는 기도라는 뜻이다. 마음을 비우고 마음의 상태를 관찰한다, 알아차린다 라는 뜻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도 사실 그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마음을 비우고 뭘 관찰한다는 것인가? 마음을 비워도 잡념은 계속 솟아오르는데, 잡념을 관찰한다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 잡념은 머릿속을 계속해서 무지, 즉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두어 억제하면서 그 마음이 비어있는 상태를 관찰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아니 기도를 한다는데 왜 바라는 것을 얘기하거나 마음속으로 떠올리지 않고 그냥 관찰만한다는 것인가? 어떤 이는 이미 내 마음속에 계신 하느님께서 내 마음을 다 이해하고 계시니 더 이야기하거나 떠올릴 이유가 없다고 한다. 그냥 마음을 비워놓은 상태에서 그 자리에 하느님이 임재하시기를, 하느님의 뜻대로 맡긴다라고도 한다. 역시 이렇게 말해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또 다르게 이야기하면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모든 노이즈는 일종의 리셋신호를 보내서 주기적 혹은 비주기적으로 억누른다. ‘모른다’ 할 수도 있고 ‘하느님!’ 혹은 ‘아버지!’ 하면서 마음에 강한 펄스를 보내서 상대적으로 노이즈가 묻히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마음속이 완전히 비어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속에 들어있는 나의 자아 - 모든 탐욕과 잡념을 만들어내는 - 가 사그라들면서 내 맘속의 하느님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역시나 한번도 그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그것을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관상기도를 하신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 이와 같이 얘기한다. 하는 방법이라든가 어떻게 하면 된다고 얘기하지만 그 몰입의 상태가 어떠어떠한 것이다라고 확 와닿게 말을 해주진 못한다.
머릿속에 어떤 인디케이터가 있어서 깊은 몰입 상태까지 가 있다라고 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 맺히는 상이 어떤 모양이된다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나의 마음은 몹시나 평온하고 뭔가 새털처럼 가벼워지며 붕 뜨는 것 같은 느낌, 어떤 이는 이것이 하느님의 품에 내가 맡겨진 듯하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이것이 살아있는 우리에게 준 천당이라고도 하고, 하느님의 선물이라고도 한다. 또 이러한 상태를 경험하고 이것을 기도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최면 요법이다 이단적인 것이다 뉴에이지적인 것이다 하는 이들도 있다.
내용이야 어찌되었든 정신이 내가 느끼기에 비워진 상태에서 몰입의 단계가 깊어질 수록 평온하면서도 뭔가 기쁨이 쏟아질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적어도 나의 경험으로는 그렇다. 그것이 ‘참나’이든 ‘내 안의 하느님’이든 뭐든 상관없다. 이러한 편안하고 아늑하고도 뭔가 다시 소생하는 듯한 느낌은 다른 활동을 통해서는 얻어본 적이 없으니 좋은 것이다. 그만큼 좋으니 선물, 천당, 하느님, 참다운 나라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또 이렇게 정신적인 쾌락을 가져다주니 금욕/경건주의야 말로 성도들이 가야할 길로 알고 살고 있는 개신교 목사님들께서는 최면요법이다 뉴에이지적인 영성활동이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의 경험으로 보면 잡념에서 비롯된 근심 걱정에 의해 세로토닌, 또는 그와 비슷한 무엇, 우리의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어떠한 요소가 원치않게 흡수되거나 소모되는데, 이것을 우리의 의지에 의한 정신작용으로 잡념과 근심, 걱정이 가져오는 정신 에너지 소모 또는 정신적인 활력 레벨이 떨어지는 것을 강제로 방해해서 좋은 기분 상태를 유지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명상법이니 이름도 거창한 일종의 정신 요법이 이 한가지로 뭉뚱그려 얘기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좋은 것임에는 분명하다.
이단이니 악령이니 사탄이니 이런 것들을 이러한 정신 요법에 연관된 요소들로 끼워넣는 사람들이 있다면, 난 그들 마음속의 이단 공포증, 악령 공포증, 사탄 공포증이 있는 것은 아닌지 알아보고 싶다. 자신들이 알아오던 것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경험해보지도 않고 막연한 공포감으로 무조건 사악한 것으로 규정하여 혹세무민하며 겁을 주는 그들의 특이한 사고 방식이야 말로 자신의 공포감을 타인에 대한 가학으로 표출시키는 일종의 새디즘이 아닐까 한다.
양심에 따라 살면서 마음의 평화를 최고의 가치로 알고, 내게 좋은 것은 다른 이들에게도 널리 알려서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이러한 정신 활동을 적극 장려한다. 특별한 자격이 있어야 누리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받을 수 있다며 어떻게든 가르쳐주려한다.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이 ‘복’을 다 같이 누리게 해주려고 노력한다.
우리 브랜드의 종교 상품이야 말로 끝없는 물질적인 복을 가져다주고, 또 헌금과 십일조를 많이 가져다 내면 낼 수록 그에 상응하는 복을 주고, 아예 대놓고 금전적인 이득을 보겠다고 등을 쳐먹겠다고 덤벼대는 이들이 이렇게 순수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