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어렵다..(5)

적어도 그분의 임재를 느끼며 더 나아가서 그분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의 경험으로는 여기까지는 상당히 막연하다. 심지어는 종교생활을 오래하신 목사님도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신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이 내 안에 임재하신다는 사실을 모르고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효가 아닐까? 적어도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하느님이 내 안에 임재하심을 믿고 느끼고 생활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흔히들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하느님이 다르다고 한다. 구약의 하느님은 사람의 성질이 있으셔서 하느님의 신성, 무류하심이 있는 것인가 생각되는 부분이 많다. 반대로 신약의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는 끝없이 사랑하시는 사랑과 진리의 하느님이시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느님은 그러한 하느님이시다. 혹자는 이것이 구약의 저자들이 자신의 감정을 집어넣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구약에 등장하는 이들이 하느님과 잘 못 소통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구약에 등장하는 이들이나 예수님은 항상 하느님과 함께 하셨다. 항상 기도하시고 항상 그분의 음성을 들었다. 이 분들이 성경에 등장하는 뛰어난 선지자이고 하느님의 아들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듯 너희는 예수님보다 더 큰일도 해낼 거라 하신 것을 보면 하느님 보시기에 별 것 없는 우리들도 하느님과 늘 같이 먹고 마시며 그 분의 뜻 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하느님의 임재하심을 느낄 수 있는 기도를 ‘향심기도’ 혹은 ‘관상기도’라고 한다. 묵상기도의 몰입이 깊어지다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하느님과 합일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이 기도는 내가 소리 내어 나의 바램을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고 묵상하면서 나의 바램을 속삭이는 것도 아니고 내 안으로 몰입하여 내 마음속의 하느님과 만나는 일이다. 하느님과 합일하면서 천당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타 종교의 명상법이 들어와서 이단적인 특징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참선을 한다든가 고도의 명상수련을 하면서 희열을 맛본다거나 하는 것이 모두 일맥상통하는 느낌을 준다. 그런 이유로 관상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는 목사들이 많다. 개신교는 그렇게 유일하기에 하느님을 만나고자 하는 하느님 자녀들의 의지마저도 꺾으려 한다.

그저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을 입으로 내뱉어야 그것이 진정한 기도인가? 하느님과 대화하던 구약의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하느님과 소통하였을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단지 이 사람들은 하느님을 온힘을 다해 사랑하는 영성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었기에 긴 시간 기도를 드리며 하느님과 만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