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싱을 잘하는 능력..?

취미삼아 기타도 녹음해보고 외부에서 녹음한 것들을 가져다가 믹싱도 해보고 한지 꽤 오래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지나도 믹싱을 할 때마다 다르고 오전에 했느냐 아니면 한 밤에 했느냐에 따라 다르고, 어떤 헤드폰을 쓰고 작업했는지에 따라서도 다르다. 그래서 감동어린 작업의 결과물이 나왔다 싶다가도 다음 날 들으면 그대로 지워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이러한 믹싱 결과물의 품질을 주욱 늘어놓아보면 평균은 시간이 가도 나아지지 않고 업으로 삼고 하는 일이 아니니 할 때마다 그 편차도 심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번엔 매번 이런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할게 아니라 뭔가 나혼자만의 경험을 기록해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세상의 수많은 이들이 자신을 위해서든 타인을 위해서든 믹싱 작업을 하고 그 결과물의 특징도 천차만별이듯이 내 이론이 잘 들어맞든 그렇지 않든 내가 들어 좋고 내가 잘 이해할 수 있으면 장땡이다.

이 바닥에 오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 사람들의 이론이나 이해도가 얼마나 정확하고 깊은지를 알아봐야 아무 쓸모 없다. 이 사람들은 결과물로 보여주고 얘기한다. 이론이나 사실에 대한 이해는 잘못 알고 있는 것도 많고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반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도 많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의 능력이 형편없다 말할 수 없다. 이해를 제대로 하고 있든 아니든 이 사람들의 능력은 소릴 의뢰자의 요구에 따라 얼마나 빨리(=비용) 그리고 잘 뽑아내느냐 하는 것이지 이들이 다루고 있는 장비에 대한 이해도나 오디오 신호에 대한 수학적인 이해는 알면 도움이 되긴 하지만 모른다고 문제가 된다고 보진 않는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가 그동안 늘상 혼동하던 문제 몇 가지를 지적해보려 한다.

  1. 믹싱은 또 다른 창작이라고 봐야한다.

기타쟁이가 톤을 소중히 생각하고 본인이 원하는 소리를 찾느라 장비도 바꿔보고 골머리를 썩는 것처럼이나 믹싱도 마찬가지다. 이 뻔한 얘길 왜 하냐면, 사운드의 품질을 너무 따진 나머지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망각하는 때가 많다. 이를테면 마이크로 받아온 연주자의 트랙을 어떻게든 변형하지 않고 다른 소리들과 잘 믹스하려 하는 실수를 말한다. 믹싱 작업은 hifi의 개념과는 전혀 상반된 일이다. 만일 hifi를 생각한다면 모든 트랙을 아무런 변화를 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보내는 것이다.

내가 만드려는 결과물은 내 귀로 듣기에 이쁘고 세련되고 귀티가 질질 흐르는, 소위 잘 팔리는 그런 사운드인데 내가 가져다가 조합해야 하는 음원들의 소리는 사실 그러하지 못하다. 아마추어인 사람들이 연주해놓은 소리, 또 제작비를 많이 들일 수 없으니 샘플을 가져다 써야 한다. 사진 작업으로 치면 원판이 그리 좋지 못한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다가 미친듯 포샵질을 해서 매력 철철 넘치는 이들로 만들어내야 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포샵 노가다가 본래 사진의 주인공의 얼굴을 그대로 전달하려한다면 포샵을 할 이유가 없다. 믹싱을 하겠다면서 원래 소리를 최대한 덜 건드릴 수는 없다. 아예 찌그리고 뭉개고 이리 자르고 저리 잡아당겨서 전혀 다른 소리로 만들어주어야 할 필요도 있다. 그게 듣기 좋고 매력이 넘친다면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믹싱하면서 본래 소리를 최대한 그대로 남겨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은 버리자. EQ와 다이내믹 이펙트 하나 없이 귀에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꽉차고 윤기흐르는 그런 소릴 만들 수 없다. 이걸 하면 뭐가 안좋네 저걸 하면 뭐가 안좋네하는 이야기들은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자. 내귀로 듣기 좋으면 그만이다. 그게 의심스럽다면 오늘 만든 걸 내일 들어보고 그 다음날도 들어보자. 주위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말이다.

  1. 과감한 게 좋다.

1번의 연장일 수 있는데, 원음의 특색을 변조시키지 않으면서도 좋은 소리를 만들겠다는 모순된 생각으로 작업을 하면 잘라내거나 잡아당기거나 하는 것에 있어서도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물론 미묘한 차이가 큰 변화(?)를 가져온다고 볼 수 있겠지만, 대세를 바꾸진 못한다. 과감하게 잘라내고 잡아당겨보자. 이미 만들어놓은 판에서 이것 저것 살짝 살짝 여러 시간에 걸쳐서 고민하고 스스로의 이론/지식들과 충돌하면서 시간 버려봐야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고생하며 이리 만지고 저리 만졌지만 어제까지 만들었던 결과물이 더 나은 경우도 많다.

포샵을 너무 많이 해놓으면 artifacts가 너무 많아져서 흠을 찾아내긴 어려워도 살아있는 생물로 보여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1. 많은 음악을 듣자.

여기서 간과하고 있는 것은 내 귀와 내 소리에 대한 기억력이 완벽하다고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귀에 들어오는 소리는 물리적으로 같은 소리라고 하더라도 늘상 다르게 들려온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원하는 소리는 이거다 싶은 소리를 기준으로 잡고 다른 음악들을 들어보는 게 맞다. 수도물을 틀어 하수도로 의미없이 흘려보내듯 음악을 듣고 그냥 흘려보내지 말자. 작은 차이라도 가려듣는 법을 키워야 얻어 건지는 것이 생기는 법이다. 어떤 화장법을 택했는지 어떤 화장품을 쓰고 있는지 구분은 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전반적인 분위기 정도는 확실히 잡을 수 있다. 대세가 중요하다. 노브를 몇 시로 돌려놨느니 하는 것은 전반적인 소리가 훌륭하면 무의미해질 수 밖에 없다.

  1. 내가 좋아하는 믹스.

믹스 작업을 하면 그저 누군가의 귀로 들었을 때 불쾌한 느낌이 들지 않고 내가 들어왔던 어떤 음악들의 색깔이 그대로 묻어나게 하자는 생각으로 하게 된다 라기 보단, 특정 트랙의 소리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아니면 내가 들었던 어떤 음반의 그 스타일 그대로 만들고자 이리 저리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그 결과는 1년 전에 작업한 것이나 2년 전에 아무 생각없이 작업한 것들만 못한 경우가 많고, 내가 만들었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되게 해놓은 것도 많다. 업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럴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도 대개들 잘 한다.

내가 좋아하는 믹스는 악기의 위치니 주파수 특성이니 이런 것과 무관하다. 듣기에 시원하고 깔끔하게 빠지는 소리, 좌우가 잘 벌어져서 답답하지 않은 소리다. 그런데 내 결과물은 그와 관련이 없는 것들로 나온다. 경험 부족에다 늘상 어느 수준에서의 만족이란 게 없고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믹스를 해보면 알겠지만, 어떤 소리를 도드라지게 하겠다고 볼륨을 끌어올리거나 인헨스가 되는 이펙트를 쓰거나 하는 짓이 쉽게 생각하는 짓인데, 그러면 그럴 수록 소리는 더 탁해지고 다른 소리들과 잘 섞이지 못해 음량만 높아질 뿐 그래서 섞여있는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분간 안되고 떡이 되어버리는 일만 많다.

도로에서 차를 몰면서 제때 양보해주는 것이 결과적으로 나한테 이득이 되듯, 믹스도 중요도가 높은 트랙이라고 해당 트랙에는 필요도 없는 스펙트럼 자원 (그것도 20kHz도 제대로 안되는)을 떡하니 먹어치우고 있으면 그렇게 그렇게 믹스는 떡이 되어가는 것이다. 더러는 어떻게 결정지워주어야 할지 몰라서 어물쩡 어물쩡하다가 내내 떡인 상태로 가게 되기도 한다. 이럴 때일 수록 음량과 주파수폭의 양보심을 갖자. 그래야 더 많은 소리들이 또렷하게 들리게 되고 그렇게 섞여야 시원하면서도 정갈한 믹스가 된다. 그렇게 섞여야 이펙트를 묻혔을 때의 효과도 극대화 된다.

1번과 중복될 수 있는데, Volume knob와 EQ로 잘라내고 밀어내는 것에 소극적이지 말자. 필요한 곳에서 적절히 잘라내지 못하면 마지막에 떡이 되어 끝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내 귀에 가장 듣기 좋은 소리면 타인이 이렇다 저렇다 해도 신경 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