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코드와 스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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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오래 쳐오다보니 코드와 스케일에 대해서 갖는 생각이 점점 바뀌어간다. 대충 정리해보면,
1) 이론과 대면하고 나서
코드와 스케일을 잘 알면 많은 음악을 이해할 수 있고 작곡이며 즉흥 연주를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코드와 스케일은 공부 거리로만 인식될 뿐 그것을 기타로 다시 옮겨오는 것은 또 다른 괴로움이 되어 그냥 포기한다. 즉, 이론과 실제가 따로 놀게 된다.
누군가가 이론을 물어보면 자세히 대답할 수 있지만, 그것을 연주해보아라 하면 할 수 없다. 이것을 응용할 코드 배킹을 또 만들어야 되는데 도무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너무 어려운 것이다.
2) 조금 더 노력을 해볼까?
부족한 피아노 실력이지만 코드를 느끼기 위해서 건반을 이용한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 major/minor의 구분이야 쉽게 되지만 major7/minor7의 구분은 좀 애매하다. 어떤 분위기에 들어가면 major7은 major가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들고 minor7도 어떤 분위기에서는 major인 느낌이 든다. dominant7, minor7b5도 도무지 들어가 있는 경우마다 다 느낌이 제 각각이라 결국에 좀 하다가 때려치게 된다.
3) 스케일 외우기
코드가 잘 안되니까 이젠 스케일을 파보자 해서 모드 스케일을 외우게 된다. 스케일이라는 것은 코드를 기반해야 되는데 그냥 음계를 판다고 해서 차이를 느낄 수는 없다. major scale에 있는 8개의 모드도 이게 그거 같고 저게 이거 같아서 뒤죽 박죽이 된다. 그렇다. 내가 응용하거나 특정 모드의 곡들을 열심히 듣고 연주해보지 않으면 그냥 눈으로 악보보고 기계처럼 그 낱개의 음들을 듣고 있다고 해서 저절로 알게 되는 게 아니다.
좀 부지런하게 코드 배킹을 붙여본다거나 베이스를 넣어보면 뭔가 알듯 말듯 하게 된다. 메이저 스케일 모드는 배워야 하는 것을 알겠는데 하모닉 마이너와 멜로딕 마이너는 왜 해야되는지 잘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전부 암울해서 모드 구분이란 게 좀처럼 안된다. 모드의 이름도 매우 복잡해진다.
4) 교습 비디오/동영상의 활용
유명한 연주자의 비디오와 교재를 활용해본다. 그런데 교재도 자꾸 들여다보면 작자 자신도 잘 모르는 걸 떠들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교습 비디오도 들여다보면 누가 진정한 실력자이고 잘 설명해서 가르쳐줄 수 있는지 점점 눈이 뜨여간다. 생각보다 사기 치는 사람들이 많다. 아 이거구나 하는 연주자를 발굴해 내면 그 사람의 교습 방법에 매료되어 한참 동안 빠져지내게 된다.
5) 자기곡 만들기, 배운 것들 응용해보기
생각보다 잘 안된다. 만들어도 배운 만큼 티를 낼 수가 없다. 듣기 괜찮은 것을 만들어 볼까 하면 결국에 또 유명한 곡을 카피하게 된다. 거기에 이것 저것 붙여보면 곡마다 배경만 다를 뿐 똑같은 곡이 된다. 한심스럽다. 여태 들어온 곡이 몇 개인데 이 모양인지.
6) 한참 놀다가 다시 가까이 하기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새로운 음악이 나와도 악보를 볼 필요가 없어지고 좀 눌러보면 어떤 곡인지 자동으로 파악이 된다. 곡조에 나름의 별칭을 붙이게 되다보니 어떤 곡이 나오면 그 별칭부터 떠오르게 된다.
악보 없이도 대부분의 카피가 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꼭 절대음감이 아니라도 음악할 수는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좀 만져보다 보면 코드 진행도 파악되고 구성 악기들도 하나 하나 다 구분되어 들린다. 즉흥연주도 다소 장황하긴 해도 늘어놓을 수가 있고 악보가 없어도 전곡을 다 카피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혹시나 하고 악보로 옮겨보거나 DAW에 옮겨보면서 다시 듣기 하다보면 내가 들어서 판독하는 소리가 그다지 완벽하진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신기하게도 완전 5도 음과 혼동할 때가 많다. 코드도 그런 식으로 많이 착오를 일으킨다. 다시 한번 인터벌 듣기 훈련을 정말 끊임없이 해야되는구나 느끼게 된다.
결국, 잘 들어야 잘 연주할 수 있고 그만큼 듣기에 민감한 이들이 연주도 더 잘하게 됨을 느끼게 된다. 그 사람들은 음 뿐 아니라 음색의 작은 차이까지 다 세밀하게 듣다보니 그들이 연주하게 되면 그러한 차이를 다 놓치지 않고 표현해낸다.
7) 통달한 것 같은 느낌 갖기
어떤 부분의 스케일이 뭐냐 코드가 뭐냐 따지는 게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냥 내가 잘 듣고 그것을 그대로 옮겨낼 수 있느냐 없느냐만 중요하다. 많이 알고 잘 설명할 수 있어도 악기로 그대로 옮겨내지 못하면 무의미하다. 숫자를 계산해서 연주한다거나 손가락이 치판에서 움직이는 시퀀스를 외워서 연주하는 것은 무의미하단 생각을 하게 된다. 잊기도 쉽게 잊고 그렇게 해봐야 내용도 모르는 가삿말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과 다를 게 없다란 것을 느끼게 된다.
그냥 음악은 놀자 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놀고자 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지 복잡한 코드나 스케일을 놀려댄다고 해서 잘한다, 좋은 음악이다 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사춘기때 들었던 음악을 마음 속에 각인 시키고 평생 그런 음악만 주로 듣게 된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내가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사춘기 아이들이 잘 듣지 않는 스타일의 음악을 할 수록 대중으로부터는 유리가 되는구나 하게 된다. 좀 촌시럽고 음악적으로 그다지 세련되지 않고 딱히 배울 게 없다고 느껴지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그 안에 머물러야 뭐든 할 맛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순히 어려운 곡을 잘 쳐내게 되었다고 해서 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