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이 듣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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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적엔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음악을 해야 맛이 아니라 듣는 그 자체도 즐거움이니까 지금 생각해봐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절 하던 일이란 게 앨범 표지의 그림과 그안에 들어있는 음악의 내용을 연결시키는 일이었던 것 같다. 더 나아가서 아버지가 구해놓으신 catalogue를 열심히 들여다봤었는데, 덕택에 내가 들어보지 않은 음악이라도 뮤지션과 앨범 사진을 1:1로 매칭해서 나도 모르게 외운 덕택에 이게 살아오는 동안 암암리에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또 하나 특기할 만한 것은, 국내에서 발매된 것인 경우 소위 당시에 유명했다는 음악평론가의 설명을 곁들여 들을 수 있었는데, 실제로 원판을 구해서 들어보면 그런 것은 전혀없었으니까 국내 라이센스 발매판이 (중고로 되팔이를 할 게 아니라면) 더 실속있는 것이었구나 싶다.

가만히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나도 모르게 머릿 속에서 음악이 흐르고 있을 때가 많다. 문득 정신차리고 그게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살아오면서 들어왔던 수 많은 음악들 중 하나이고, 들어온 음악이 워낙 많기에 시대와 장르에 구애됨 없이 넘나들고 있다는 것에 감사할 때가 있다.

아마도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의 내 취미는 그렇게 클래식 음악들을 패턴별로 들어 외우고 그에 곁들여 앨범 표지와 뮤지션들의 이름도 함께 (나도 모르게)스스로 데이터베이스 하는 일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 때문인지 대학시절 음대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면 ‘재수없다’ 라는 소릴 제법 들었던 것도 같고. 음악 전공도 아닌 주제에 쓸데 없이 많이 알고 있단 것으로 이해된다. 글쎄, 재미있고 즐길만한 것을 많이 알고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싶은데 꼭 ‘재수없다’라고 해야했나 싶다.

오늘은 문득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이 머릿속에서 흘렀다. 그것도 사람들이 다 알만한 첫구절이 아닌 1악장 중간 어느 부분이었지 싶다.

내가 처음으로, 그리고 열심히 듣던 곡은 칼 뵘이라는 지휘자가 표지에 나와있는 (글쎄 지금 생각으로는 60을 넘긴 모습이지 싶은데) 베를린 필의 연주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이후로 녹음이 없었던 것인지 같은 것을 구할 수는 없었다. 신기하게도 이 유명한 모차르트의 40번이 도이치 그라모폰이 선정한 101도 아니고 111에도 들어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버지께 선물해드린 카라얀 전집에 똑같이 40번과 41번을 연주한 것을 찾을 수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아..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스레 좀 빠른 듯한 느낌도 들고 전엔 부각되지 않았던 특정 악기 대역이 이상스레 부각되는구나 했는데, 유튜브를 검색해보니 (내 어린 시절의) 칼 뵘의 연주를 찾을 수 있었다.

‘아…이거야..모차르트 40번은…’

이래서 어릴 때 교육이 중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 들었던 것들은 그 모든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수십년이 지나도록 기억되고 있으니 너무도 신기할 따름이다. 생생한 그 앨범의 표지와 음악, 평소에 무심하게 생각하는 템포, 또 정확히 지적해 낼 수는 없지만 연주의 차이점, 명확하게 지적해낼 수 있다는 자체가 그냥 신기할 뿐이다.

신기하게도 표제가 붙은 것은 41번 (Jupiter)이고 그보다 더 잘 알려진 것은 40번 (표제 없음)이니까 재미있는데, 그것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어려서 알게된 것들이 20세 이후에 알게 된 것들 보다 오래 간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 한다. 아마도 그만큼 오랜 기간 알게 모르게 반복학습을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치 디지털 세계에서 오류를 정정해내기 위해서 같은 내용을 알게 모르게 여러 번 전송하는 것처럼 사람의 기억도 그것이 소멸되지 않으려면 여러 번 반복해서 기록해놓는 것이 아닐까 했다.

되돌려 생각하면 행복한 이들을 늘 행복했던 기억을 계속 되살려 내기 때문에 그러하고, 괴로워하는 이들은 평소에도 괴로웠던 기억을 계속 되씹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아울러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