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벤튼 (Harley Benton) 싱글컷 1주 사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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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벤튼의 제품명을 따라서 썼기에 싱글컷이지 레스폴 카피모델을 샀다는 말이다. 미국으로 배송비포함 $150에 구입했다.

1-2년전인가 Jackson의 데칼을 달고 있는 고정 브릿지의 수퍼스트랫을 배송료포함 $120에 구입해서 사용했던 것 같은데, 이 물건 역시 가성비가 몹시 뛰어난 것을 떠나서 나에게 더 이상 다른 레스폴이 생각나지 않게 해줬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악기 세계에서도 어떤 가격의 개념이란 게 다 무너져 내리고 있구나 해야할 것 같다. 예전처럼 기타 한 대 갖기 위해서 여러 달 아르바이트 뛰고 해서 장만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고 일렉기타가 대부분의 소비층 (10-30대)에게 그렇게 갖고 싶은 물건이 되지 않은지도 오래지 싶다.

내 레스폴 경험

어쨌든 여태 레스폴을 5-6대는 써본 것 같다. 처음 써 본 것이 깁슨의 오리지널(?) 레스폴이었고 그 후 에피폰만 4대 써 본 것 같다. 만족도로 봤을 땐 처음 써본 것이 가장 안좋았고 그 다음에 들인 생산지를 알 수 없던 에피폰 (아마 중국산이었지 싶다)이 가장 좋았다.

오리지널 레스폴의 사용감이 가장 안 좋았던 것은 당시에 난 수퍼스트랫밖에 몰랐고 수퍼스트랫만 써왔어서 레스폴의 연주감이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지 싶다. 기타도 몹시 무거웠던 데다가 하이프렛 연주가 불편했고 특히나 그 에보니 핑거보드가 싫었다. 지금 에보니 핑거보드라고 하면 고급 기타에나 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말이다. 1-2년 쳐서는 사실 눈으로 보기에 멋져보이는 기타만 찾게 되다보니까 어떤 역사적인 의미를 띠고 있는 이런 기타는 너무 골동품스러워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간이 오래 흐르고 나서 지금은 DSP로 5-60년대 앰프의 음색도 흉내내는 시절이니까 그 시절 음악을 그 때 음색 그대로 연주하자고 하면 레스폴도 필요한 기타가 된다. 지금 오리지널 레스폴의 가격은 대략 2천불이 넘어간다. 옛날 그대로의 모양으로 별 다른 개선없이 만들고 있다. 제조 방식은 세상이 여러 번 바뀌었으니까 더 간결해지고 유통시스템도 좋아졌으니 재료 수급도 더 좋아졌을텐데 가격은 여전하다.

지금 이 기타를 구입한 이유는 딱 하나다. 가끔 레스폴이 생각 날 때 쳐보고 싶은데 깁슨은 스탠드에 올려두고 썩히자니 아깝고, 그런데 가격이 이 정도라면 별 부담이 안되구나 싶어서. 공연들고 나가서 부숴버리는 것까진 아니라도 원치 않게 어딘가에 찍히거나 떨어져서 망가지더라도 큰 부담없는 그런 기타라서 더 쉽게 친해질 것 같아서 말이다.

음색

레스폴의 전형적인 음색이다. 기타의 음색은 원래의 레스폴이 약간 레조네이팅하듯 그런 음색이 여기도 그대로 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내 연주가 그 시절 그 사람들과 전혀 같지 않고 연주 조건도 같지 않은데 기타는 이 정도로 잘 해주고 있으니까 된 것 아닌가? 꼭 마호가니 바디/마호가니 넥에 요샌 수출도 못하는 로즈 우드 혹은 에보니로 된 핑거보드에 깁슨 로고를 달고 있어야 되는 건가?

하드웨어

레스폴의 오리지널과는 차이가 많다. 넥이 가늘게 되어있고 핑거보드도 에보니도 로즈우드도 아닌 어떤 우드이고 (난 메이플 핑거보드를 가장 좋아한다), 그렇지만 연주감은 더 좋고 레스폴 오리지널이 뒷쪽 넥과 바디의 연결부가 불룩 튀어나와서 불편하게 되어있는데, 이 기타는 그 쪽이 잘 다듬어져 있어서 편리하게 되어있다. 바디는 마호가니가 아니라 배스우스라서 가볍지만, 또 픽업은 깁슨의 잘 알려진 픽업도 아닌, 유튜브의 누군가의 해부기에 보면 제대로 왁스에 포팅도 안되어있는 픽업이지만 (그러니까 오픈 픽업에 금속커버만 간신히 씌여지 있는 상태) 재미삼아 레스폴로 연주하는 다른 곡들 연주해봐도 비슷한 음색이 난다. 아니 내 귀로는 딱 그 소리가 난다.

튜너 6개 중에 하나가 문제가 있어서 thomann music에 메일을 보냈더니 교체용으로 하나를 더 보내주었다. 내 기타 사용 역사를 따라가보면 튜너치고는 좀 비싼 sperzel도 써봤지만 튜너는 그냥 튜너에 불과할 뿐 튠만 잘 유지해주면 되는 것인데, 이 기타는 전체적으로 튠이 잘 유지되고 있고 레스폴 기타의 고질병 (3-4번 줄의 튜닝 불안, 너트에서 줄 씹힘 문제)도 그대로 가지고 있겠지만, 예전의 그 레스폴들 보다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 않다. 마감도 훌륭한 편이고 광도 잘 나고 정말 그 옛날 오리지널/에피폰들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좋다. 물론 에피폰도 예전에 비해서 많이 좋아졌다. 이게 다 중국 하청 업체들의 제작 기술의 향상 때문이려니 한다.

Chibson vs. Harley Benton?

왜 깁슨 로고를 달고 비교적 오리지널 레스폴의 모양과 가까운 칩슨 대신 듣보잡 메이커를 사느냐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Harley Benton도 나름 유명한 메이커가 되었다. Chibson은 Chibson이 아닌 Chender를 3대 경험해본 바 제작자의 제작 숙련도와 부품의 질이 Harley Benton에 한참 못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써보지 않은 사람들은 가격 때문에 튠도 제대로 안되는 중국짝퉁과 뭐가 다르냐 하겠는데, Thomann이란 곳에서 검수를 잘 하고 있다는 것을 물건을 배송받자 마자 알 수 있다. 적어도 악기의 구실은 제대로 한다. 다만 제작단가 때문에 부품의 품질에 의심을 받을 뿐. 마찬가지로 이 레스폴 커스텀 스타일의 기타 역시 악기의 구실은 제대로 한다. 튜닝도 오래 유지되고 기본적으로 세팅도 잘 되어있을 뿐 아니라 마감도 흠잡을 데가 없다. 아니 그냥 바라보고 있으면 뭔가 이렇게 싸게 사도 되는 건가 하면서 도둑질 한 그런 기분도 든다.

대개 저가 악기들은 그 나름의 특징이 있다. 구입해서 처음 뜯어볼 때부터 저가라는 느낌이 온 몸을 통해느껴진다. 마감이 균일하지 못하다든가 부품의 어느 일부가 제 기능을 못한다든가 튜닝이 잘 안된다든가 튜닝고 조정을 아무리 해도 계속해서 어설픈 느낌이 남아있는 그런 것 말이다. 그래도 어느 한 곳 정붙일 곳이 있다면 그래도 좀 기대를 걸게 되는데, 기본적인 기능 (특히 튜닝)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어떤 부분이 특별히 맘에 든다고 해도 오래 가지고 있을 수가 없다.

그 옛날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저가 메이커 기타들 대부분 딱 보는 순간 디자인의 어떤 부분이 좀 어설프고 튜닝이 어설프고 그래서 넥/브릿지 조정해봐도 답이 없고 그런 식으로 방출까지 가게 되었고, 반대로 고가 악기들은 디자인과 기능들은 아주 맘에 들었지만 이상하게 치면 칠 수록 정이 안가고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데리고 있어보려고 연주해보고 또 연주해봐도 이상하게 정이 가지 않고 그래서 또 방출하고 했던 기억도 있다.

어차피 계속 연주하다보면 완벽했던 마감도 이곳 저곳 상처가 나게 되어있고 아무리 잘 관리해준다고 해도 때가 타고 먼지가 앉는 것은 피할 방법이 없는데 그래도 악기가 내가 원하는 소리를 내준다면 사실 기쁜 마음으로 데리고 있고 싶어지게 된다. 반대로 많은 대가를 지불했음에도 영 기대에 부합하지 못 할 땐 사실 방법이 없다 (이미 이런 상황을 난 아주 여러 번 겪었다). 톤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이곳 저곳 파트를 갈아엎는다고 해서 더 개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옛날 수도 없이 했던 일이라 더 말 할 필요도 없고.

그런 의미에서 Harley Benton은 제작 단가를 낮추고 반면에 악기 품질은 최대한 끌어올린 그런 물건이라고 본다. 여태 구입한 것만 5대가 넘어가는데 실망스러운 것은 한 대도 없었다. 모두 기대 이상이었고 지금도 제 구실을 잘 하고 있다.

결론

레스폴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취미 기타 쟁이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안다. 그 사람들 기준으로 이 물건은 레스폴의 ‘ㄹ’도 붙이기 어려운 물건이라고 본다. 그 사람들의 기준에 부합하는 부분은 재료부터 만듬새까지 사실 1도 없으니까. 그런데 여태 수많은 기타들을 만지고 연주해 본 입장으로는 이 가격에 이 정도의 품질에 이 정도의 세팅으로 친근하게 다가온 기타가 없었다.

내 귀로 내 손으로 느낀 바로는 그냥 그 가격이 많이 미안해질 만큼 훌륭한 물건이라고 본다. 나는 John Sykes의 블랙뷰티가 생각나서 이 물건을 지르긴 했지만, 레스폴 클래식 타입의 모델도 이쁘고 Satin finish의 Gold top 모델도 매우 이쁘다. 사실 난 기타 더러 이쁘다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지만 그러하다. 그냥 재미삼아 이쁘다고 레스폴을 3대나 들고 있을 이유가 없으니 구매하지 않았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