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추위

겨울 추위라는 말 못 들어본지 한참 된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추웠던 때는 2003년 1월 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실제로는 추웠지만 그것을 춥다고 생각했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최근 10년간은 1년 내내 난방을 하는 일도 없이 지냈으니까 사실 추위라는 것은 아예 모르고 살았다가 맞다. 아니 춥다고는 느끼지만 진정으로 추우니까 뭘 해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다.

어떤 해엔 12월 말에도 반팔을 입고 지내기도 했다. 나 스스로도 내 생애 이런 일도 있나 싶을 정도로 날이 따뜻했던 적도 있다.

‘겨울엔 추워야 제 맛이지..’

춥지 않고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나면 ‘지구 온난화’다 ‘이상기온’이다 하고, 겨울이 유달리 추워도 춥다고 그 역시도 이러쿵 저러쿵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도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잘 지내왔다.

가끔씩 뉴스에서 비탈길에 내린 눈이 얼어서 사람들이 여전히 미끄러지고 다치고 있는 모습들이 나오고 그래서 사고라도 나게되면 어떻게 해야 한다 조언을 해준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길이 얼어서 다칠 게 뻔한데 거길 지나지 않으면 다칠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시간을 오래 거슬러 갈 필요도 없이 그게 얼마전의 내 모습이었다. 눈이 내려 얼어버린 길을 한밤에 술에 취한 채로 혹여나 다치지 않을까 조심 조심 걸어오던 때도 있었고, 생각지도 않게 미끄러져 다쳤던 기억도 있고, 차를 몰고 지나가다 아무 생각 없이 얼음길 위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다가 낭패를 봤던 일도 있고.

그런 위험을 떠안지 않으려면 겨울이 없는 곳에서 살면 된다. 눈이 와서 길이 얼었다면 밖에 나가지 않으면 된다. 어차피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증가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그렇게들 산다. 득과 실을 따지면 분명히 실이 더 많은 경우라도 그렇게들 산다.

‘겨울엔 추워야 제 맛이지.’

‘겨울엔 눈이 와야 겨울이지.’

아무 생각 없이 살다보면 그냥 그러나보다 했던 일들이 어느 날 생각해보면 모순된 것들 투성이다. 아니 내가 하는 일 모두가 모순 투성이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위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이다.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며 살려고 하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리스키한 일들을 하고 있고, 아니 삶 자체가 리스크이고, 절약하며 저축하는 삶을 살려고 하고 있지만, 매일 매일 떨어지는 돈 가치에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하고 살고 있고, …

세상이 빨리 변하다보니 살아오면서 지극히 당연했던 일도 지금은 리스크 투성이의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것 밖엔 없구나’했던 것도 알고 보면 지극히 어리석기 짝이 없었던 거구나 하는 것도 많다. 매일 매일 그런 것들을 깨닫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나를 뺀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진작에 잘 알고 살아왔던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있음에 저절로 탄식하게만 될 뿐이다.

‘인생 헛 살았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네.’ ‘나처럼 멍청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러다가, 결국 죽을 때가 다 되서는 ‘너희들은 나같은 삶을 살지 마라’ 헛소리나 하는 것 아닐까 한다. 오래 살았으니 그 경험으로 많이 알고 있겠지 싶은 것들은 따지고 보면 얼마 살지 않았지만 빠른 세상 변화에 익숙한 이들이 오히려 더 익숙하고 더 잘 알고 있을 거란 것도 모른 채.

흐르는 시간에 대한 대책이 없기로는 내 뒤에 태어나는 사람들이나 나나 마찬가지다.

한 때는 세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이든 사람들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하시던 아버지도 이제 세월이 흐르고 보니, 당신 역시 세상의 빠른 변화는 인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버지 시대때나 통하던 개념이나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그때가 좋았지’ 하는 것을 본다.

나 역시 지금 나이 어린 사람들이 하는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나보다 나이 든 사람들의 생각에도 동의하지 못하고 여전히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살아가고 있고. 내내 마음 한 구석에선

‘그 어느 것도 옳거나 그른 것은 없는데..’

줏대 없어보이긴 싫으니 어느 쪽이 옳다고는 해야겠지만,

‘에라 모르겠다 난 줏대 없는 놈이니 그냥 중립.’

그러면서 이렇게 인생의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만 간다.

어디에서 언제 죽게될지는 모르지만, 그냥 ‘건투를 빈다!’ 라는 말 밖엔 할 수 없을 것 같다.

‘건투를 빈다!’ = ‘니들도 니들 생각대로 잘 살아봐, 어디 니들 맘대로 되는지. (세상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