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차 만들어 먹기

1-2주전쯤 부터 생강차 생각이 나기에 만들어서 먹어봤다. 사다놓고 거의 먹지 않았던 꿀도 이번에 소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공정이 많은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공정으로 만들었다. 보관하는 병을 소독한다든가 이것 저것 첨가하는 재료를 늘린다거나 세밀하게 다듬는다든가 하는 그런 것 말이다.

생강 껍데기를 적당히 벗기고 마치 super chunky peanut butter를 먹는 느낌으로 굵게 갈아서 꿀에 재어놓고 먹겠다는 게 내 계획이었다. 생강 맛을 강하게 내려다보니 많은 양을 만들었구나 했지만 다 마셔버리는데 2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생강을 먹으려고 했다기 보다 생강향이 있는 단맛이 그리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역시 만들어먹는 것이 생강의 함량과 단맛을 내 맘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만든 것을 사다 먹는 경우에는 내가 원하는 맛이 아니라도 (내가 그런 노력을 들이지 않았으니) 그냥 수긍하고 마셔야 하니까 말이다. 정말 영 아니다 싶으면 식품의 경우는 반품도 못 하고 울며겨자먹기로 소비하든가 그냥 들고 있다 버리든가 하는 수 밖엔 없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냉장고 속에 머물다가 결국 사라져갔던 차가 꽤 되었구나 싶다.

나는 생강의 강한 맛을 좋아해서 Ginger beer를 먹을 때도 생강맛이 약한 Canary Dry 같은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뜨거운 Ginger beer가 그리웠던 것 같다. 날씨가 좋을 때 대낮의 Ginger beer는 아무리 마셔도 계속 마시고 싶을 정도로 끝없이 들어가는데, 문제는 원하지 않는 열량(설탕) 섭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만 두어야 하지만 말이다.

이틀만에 작은 병 하나에 가득히 만들어놓은 것을 다 마셔버렸고, 이미 두번째 batch를 만들었지만 이것도 1-2일내로 모두 다 마셔버릴 듯 하다.

생강차의 효능같은 걸 따지자면, 사실 그런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그게 중요한지 모를 일이지만, 정말 오랜만에 마셔본 생강차의 느낌은 몸이 급격히 따뜻해졌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첫번째 잔 이후로 더 이상 그런 느낌은 없었다.

이렇게 가끔씩 생각나는 (기호)식품들이 있다 (물론 한 때 즐겨 피웠던 담배도 가끔 생각이 난다).

예전엔 어머니가 해주셨고 지금은 내가 만들어 먹는다. 생각해보면 어머니께 해달라고 한 적도 없고 그 이후로 내 배우자에게 해달라고 한 적도 없다. 내가 만들어먹을 생각을 못하니 누군가 대신 해준다면 운 좋은 일이라 생각할 뿐, 예전엔 그런 게 생각났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요새 분위기로 보면 (인생 맛집? 인생 xx?), 그런 것은 어떤 맛집에서 소문난 누군가가 만들어줘야 제맛이고 누군가와 반드시 같이가서 먹어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한 것 같다. 바보같이 이걸 어떻게 만들어 먹어야 좋을까 생각해서 실험에 임하는 자세로 더듬더듬 거리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면 내 삶 전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단 생각이다.

뭔들 어떠하랴. 생강차가 마시고 싶은 생각이 났고, 예전 자판기에서 뽑아 먹던 ‘분말’식의 생강차보단 좀 더 알싸하면서 그럴 듯한 맛이 나는 ‘진짜’ 생강차를 장봐올 때 생강 한 묶음 더 가져오면 2-30분 시간만 투자하면 마실 수 있는 건데.

‘야 생강차는 그렇게 만드는 거 아냐!’

갑자기 누군가 내 인생에 끼어들어 절레절레 하던 이들이 떠오른다. 이걸 트라우마라고 하는 건가? 글쎄 이 간단한 걸 만드는 데도 꼭 따라야하는 무슨 고전의 비법이라도 있는 건가? 내 입맛에 ‘아 이거다!’ 싶으면 그만이다.

살아오면서 만나오던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원하는 걸 누군가가 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무엇이든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으면 애초부터 다 틀려버린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꼭 누군가가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위 권위자나 브랜드있는 것으로부터 나온 정보가 아니면 전부 틀렸다고 한다. 또 그렇게 누군가에게 요구한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처음엔 ‘왜 자신의 문제를 주위 사람에게 해결하게 하나?’ ‘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꼭 확인을 받고 해야 하나?’ 싶다가도 그 관계가 오래 가면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내가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이 아니니까 그 해법은 틀려먹었다는 비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

그 사람은 자신이 아무 능력이 없어서 그런다기 보단 그 사람이 살아오던 과정에서 그런 생활에 익숙해진 듯 하다. 부모와 주위 사람들(주로 교회 사람들)이 사소한 문제들도 전부 해결해주었고 학창 시절엔 대부분 대학교수나 이름난 사람들로부터 과외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소위 이름있는 메이커 있는 옷/물건만 사용하고 그런 이름있는 집안 사람들만 만나왔다. 그러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사람 취급하기도 뭐하고 그런 사람들 말을 믿으려고도 잘 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뭐 이런 인간들이 있나 스스로는 무능하면서 오직 메이커만 찾는구나 싶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그 사람들이 부럽다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이런 사람들은 꽤 많다. 같은 이야기도 공인되지 않은 내가 하는 것은 신뢰도가 0에 수렴하지만, 소위 티비를 탄 전문가가 하면 100을 넘어간다. 100을 넘어간다는 말은 신뢰를 넘어 이 사람의 비전문 분야에 대한 이야기까지 모두 신뢰한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쉽게 실망하고 자신을 속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 곁에 있다가 선의로 그들을 도와주다가는 본전도 못 건지는 일이 대부분이다. 더 이상 언급을 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난 이런 사람들을 회사에서도 많이 봐왔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잘 하려면 자기 PR과 포장(사실은 과장이라고 봐야한다)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대개 이런 이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들 역시 그들 부모의 힘으로 자기 브랜드를 확립해서, 즉, 과대 포장되어 그 회사에 스카웃되어 왔을 확률이 높다. 결국 그들과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주게 되어있다. 어리석게도 바닥부터 자기 브랜드를 만들어가겠다는 입장으로 청춘을 바쳐봐야 돌아오는 것은 이런 이들이 하나 둘 씩 높은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을 그냥 바라볼 일만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접근방법부터 틀렸다는 게 된다.

생강차를 마셨다는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전개됐다. 생각지도 않은 간식을 하고 있는 덕택에 얼굴에 윤기가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