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런 질문만 수도 없이 던지는 때가 있다. ‘안되면 말고’하는 생각을 할 때도 많지만.

난 이걸 머릿속 화학작용 때문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어려서는 이런 생각 해 본 적이 없다. 정말 수중에 땡전 한푼 없이 살 때에도 그런 걱정 안했다. 지금은 그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수준으로 대비가 되어있지만 이런 생각을 할 때가 훨씬 더 많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나에게 생각보다 쓸데없이 많은 옵션이 주어져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주어진 옵션이란 게 오직 딱 하나라면, 진작에 포기하고 이런 질문 따위 던지며 살지 않았을텐데 한다.

그 때문일까? 과거 구 공산주의 국가의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가 더 높았다는 것이?

인간에게 쓸데없이 많은 선택권이 부여되면 피상적으로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끝없는 불만족과 내적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흔히 툭하면 이래저래 이성 상대에게 삐지고 화내고 하는 것에서 난 비슷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만난다면..’

내가 당장에 선택하지 않은 옵션은 두고 두고 좋아보일 수 밖에 없다. 내가 누군가를 선택해서 지금까지 오는 동안 발견했던 생각지도 못 했던 만족감 따윈 다 잊은지 오래니까.

그만큼 사람의 기억력이란 게 허술하고 그 때문에 사람을 더더욱 어리석게 만들 뿐이라고 본다.

너무 너무 럭키해서 파워볼에 당첨될 확률의 뛰어난 선택을 했다 치더라도 곧 있으면 죽는다. 어차피 앞으로 100년도 못 살 인생인데 기죽지 말고 살자. 누가 먼저 죽을지 당장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