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하면 안되는 쓸데 없는 생각

난 과거를 생각하는 일이라고 본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좋지 못한 기억으로 되살려 곱씹는 일 말이다.

사람이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것 모두 주관적일 수 밖에 없겠지만, 특히나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반응은 좋지 않은 기억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바람직 하다 볼 수 없다.

더 안좋은 것은 그런 안좋은 기억에 의해 회상된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제맘대로 분석해서 판단하는 것이다.

내가 소싯적에 전교 1등을 하던 사람이니까, 소싯젓에 탑 레벨 스쿨에서 반에서 1등하던 사람이었으니까, 소싯적에 탑 티어만 갈 수 있었던 그룹에 속했던 사람이었으니까.

대한민국에, 전세계에 학교가 도대체 몇 개인데, 각국의 탑레벨 스쿨을 전부 다 합치면 그게 몇 개인데, 탑 티어 그룹이란 게 이 세상 모든 분야에 몇 개나 있는 건데, 그게 전세계로 치면 몇 개나 되는 건데 이런 한심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요즘 느끼는 것은 내가 단지 몇 주전에 했던 일도 지금 다시 들여다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들 투성이고, 문제 삼으려면 정말 한도 끝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식으로 해왔는데 여태 뭔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을까 하는 정도로 나의 능력이란 것은 조잡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고,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을 정말 칼을 가는 마음으로 꾸준히 하지 않으면 정말 금방 무뎌지게 된다는 것이다.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입장에서 무뎌지게 된다는 것은 더 이상 프로가 아니고 취미로 일을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해 낸 것에 대해서 대가를 주지 않는다고 해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상황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흔히하는 착각이 내가 열심히 해왔으니까 (잠시 쉬었더라도) 지금도 여전히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내가 한 분야에서 뭔가 뛰어난 능력을 보여왔으니까 다른 분야도 잘 알 수 있고 잘 판단할 거란 착각이다.

바디빌딩으로 유명한 누군가 평소 하던 말이 기억이 난다.

‘당신이 매일 하고 있는 일은 하루에 8시간씩 꼬박 꼬박 하면서 어쩌다 1시간 정도 하면서 (매일 매일 갈고 닦는 바디 빌딩) 선수처럼 많은 근육이 붙을 것으로 기대를 하는가?’

매일 매일 하고 있는 일이라도 그것이 다루는 분야가 조금이라도 넓어지면 단숨에 그 바닥이 드러난다. 어떤 분야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분야에 현업으로 오래있었던 것은 다 무의미하다. 지금 당장 열심히 하고 있지 않으면 그만큼 날카로와질 수 없고 인간의 빠른 망각 능력 덕택에 희미한 줄기를 뺀 나머지들은 다 잊게 된다. 사실 그 줄기를 뺀 나머지를 내가 잘 알고 있느냐 아니냐가 ‘잘’ 하느냐 ‘못’ 하느냐와 결부된다. ‘전문가’냐 ‘비전문가’냐를 구분하게 된다.

비전문가이고 초심자라 하더라도 그 분야에 오랫동안 전념해서 집중했다면 분명히 그 분야의 전문가를 능가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그렇지만 세상은 아직 그렇게 인정하고 있지는 않는 듯하다.

세상에서 어떤 사람에게 소위 ‘전문가’라는 권위를 내려주지 않았더라도 ‘자칭’ 전문가들이 득시글하고 허무맹랑한 ‘썰’이 무성한 시대다. 어디가서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더라도 다수가 그것을 ‘사실’인양 받아들이고 있다면 ‘전문가’행세를 할 수 있는 시대다. 아직은.

그렇지만,

기억력이란 것, 소위 전문가력을 뒷받침하는 능력도 마치 근력운동과 같다. 내가 지금도 쉬지 않고 운동하고 있다면 전문가력이란 것은 저절로 뿜어져 나올 수 밖에 없으니까 인정받을 수 밖에 없고, 한 때 전문가, 천재 소리를 듣었던 사람이라도 당장 몇달 몇주만 쉬어도 비전문가 수준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몇년을 놓고 있었다면 그냥 비전문가, 외부인이라고 봐도 될 정도의 세상이다.

이것이 내가 요즘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 바닥에 20년 넘게 버티고 있고, 소위 유명한 학교를 모두 졸업하고 박사학위까지 당당히 들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해놓은 일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주니어를 잘 가르쳐놨다면 더 잘해냈을텐데 하는 것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수도 없이 많은 오류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부당하다고 불평하고 자신의 오류에 대해서 당당할 수 있는 인간 따위를 우리는 ‘전문가’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인간들이 세상에 아주 많다. 그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록 그들은 더욱 더 나댄다. 그래서 ‘억울하면 너도 출세해라’라고 하는 것이다. 높이 올라갈 수록 그들을 평가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드니까.

이와 반대로 그다지 좋은 학벌이나 학위를 들고 있지 않지만, 쉬지 않고 모든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꾸준히/열심히 일했던 이들의 결과들을 보고 있노라면 프로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날카로움’을 놓치면 그 날로 끝이로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한 때 얼마나 잘나갔는지, 얼마나 많은 책을 팔았고, 등등 다 무의미한 짓이란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빨리/깔끔하게/멋지게 해내지 못하면 그저 ㅂㅅ 소리 듣을 수 밖에 없는 늙은이로 전락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때 입학시험 잘 봐서 좋은 학교 졸업한 것 하나로, 부모 잘만나 좋은 학교 유학하고 온 것만으로, 부모 잘만나 좋은 자리 차지하고 일평생을 보장받는 사회야 말로 이런 이들에겐 정말 ‘살기 좋은’ 사회 아닐까?

“니들이 아직 한국에서 한 자리 차지하며 거들먹거리며 살 수 있단 것에 (아직 순진한) 한국 사람들에게 고마워 해야 할 줄 알아 이것들아. 교회가서 엄한 목사/하나님께 감사하며 헌금 낼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