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과잉..이 문제인 것일까?

뇌에서 분비된다는 도파민은 사람에게 성취감/행복감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도파민은 사람이 어떤 일을 해냈을 때 그 보상작용으로 분비된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이 어떤 성취감/안정감/행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내고 그 보상으로 도파민을 받아야 되니까 결과적으로 도파민은 사람에게 동기부여/삶의 의욕을 갖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의 양이 과하면 우리의 도파민 감수성, 즉 도파민의 양에 따른 행복감/안정감을 얻는 감도가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양의 도파민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겐 이런 성향이 아주 강해서 맘에드는 이성을 만났을 때, 처음엔 만났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엄청난 양의 도파민으로 행복감에 겨워하지만, 그것이 점차로 중독이 되면 그 상대방을 내 소유물로 생각해서 내맘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것에 분노하고 좌절하고 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아왔다.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기뻐하라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 말은 달리 해석하면 ‘범사에도 감사할 정도로 너의 도파민 감수성을 잘 관리해라, 그러면 항상 기뻐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읽힌다.

관리라는 건 별 것 없다. 과한 것 같으면 빈도를 줄이는 것이 관리다. 어떤 일을 했을 때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했다면 그것을 매일 매일 미친 듯이 하는 게 아니라 빈도를 일부러 낮추는 것이다. 왜? 오래도록 지속하면서도 그 즐거움의 정도는 낮추지 않기 위해서다.

아무리 맘에 드는 이성이라도 매일 매일 만나고 진짜 어디까지 가나 보자 하는 식으로 매시간 붙어 지내다보면 싸우는 일도 생기고 쉽게 끝나게 된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렇게 지내봐야 사람을 알 수 있다고. 그렇게 지냈는데 싸우지 않고 잘 지내야 결혼해서도 오래도록 잘 살 수 있으니까.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성인 군자가 아닌 이상엔 사람의 이 중독성향을 어떻게 끊어낼 방법은 없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로부터 즐거움과 행복감을 얻었고, 그것에 점점 중독되었다고 하면 그 중독성은 한도 끝도 없어서 다른 상대방이 완전히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되어 나가 떨어질 때까지 괴롭히게 된다.

서로 죽고 못사는 커플이 있었는데 결혼하고 나서 헤어졌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그 사람들의 인성에 문제가 있었다기 보단, 도파민 중독, 일종의 사람으로 인한 행복감(도파민) 중독에서 발현된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천재성, 혹은 그 외모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부러워하는 이들도 삶의 괴로움이 있고 과도한 우울감에 자살하고 늘상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은 다 도파민이 관여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라는 것도 ‘락’이 과해서 벌어지는 것이라 그 수행 과정이란 것은 일종의 도파민 디톡스 과정이라고 해석될 때가 있다.

도파민 디톡스라는 것은 과한 도파민에 익숙해진 나 자신의 도파민 감수성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마치 술이나 담배를 끊어내듯 나에게 과한 도파민 분비를 유도하는 것들을 모두 끊어내는 것이다. 이것은 ‘출가’ 하는 것에 비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세속의 것들과 멀어지는 것이다. 세속의 것 = 도파민 분비를 유발하는 것들. 그래서 출가후의 수행 (아침 일찍 일어나서 청소하고 밥 짓고 절하고 등등)을 오래할 수록 도파민 감수성은 떨어져서 마침내는 범사에도 감사하고 항상 기뻐할 태세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 열반의 지경이란 것은 도파민 감수성이 극도로 올라가 버린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상을 하게 된다.

이게 무엇을 통해서 얻어진 것일까? 그냥 이 세상의 것들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특별히 좋을 것도 특별히 나쁠 것도 없고, 도파민을 바라고 뭔가를 하는 것들을 포기해버리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그냥 모든 것에 대해 내 뜻대로 되는 기대 같은 것, 희망 같은 것 아예 갖지 않는 습관을 갖는 것을 다 버려버리는 것이다. 다 버리고 더 큰 것을 취한다는 생각이겠지. 쉽게 말해 ‘적당히’가 안되는 인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