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란 무엇일까..

좀 살아보니 경험이란 게 생기고 그 경험들을 종합해봤을 때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분할 수 있었고, 그 공통점들을 종합해보면서 뭔가를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정리한 생각을 바탕으로 나와 타인의 삶을 다시 분석해보려고 하고 말이다.

운명이란 게 있느냐 없느냐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이 어떻게 영향받는지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든다. 난 이것을 그가 처한 환경에 대한 그 사람의 기질이 반응한 결과라고 본다. 그 결과는 새로운 환경에 처하게 만들고 그것에 대한 그의 반응이 그의 인생 경로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지금의 인생은 그가 태어났을 때의 환경에 대한 그의 기질이 반응하려 만들어낸 결과이다. 운명이란 게 정해져있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기질이 가져온 결과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은 환경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환경에는 우연히 개입될 수 밖에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이란 게 장기간 계획을 통해서 얻어진 경로로 진행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어떤 계기로 인해 일어나는 변화의 정도와 심각도가 더 크다.

사람이 환경의 변화에 따른 적응력은 워낙에 뛰어난 것이라 정말로 우연히 일어난 변화라고 하더라도 그게 하루 이틀 지나고 나면 지극히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 직전까진 상상도 못했던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특별히 이러한 우연을 더더욱 운명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결과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해석해야 하는데, 그것이 어떤 방법으로도 해석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운명’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어느 날 거리를 걷다가 과속차량이 인도로 뛰어들어 사망하게 되는 경우를 보면, 그것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낮은 경우였기에 그가 그때 그곳에 위치하게 될 모든 과정을 ‘운명’이라고 말한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하필 그 순간에 그곳에 있었던 것은 우연일 뿐이다. 그 사람의 운일 뿐인 것이다. 그곳에 위치하게 된 원인을 따져보자면 그 사람에게 일어났던 수많은 우연과 필연의 누적결과였기 때문에 그 역시도 우연에 가까운 지경이다. 반대로 뜻하지 않은 사망이 아닌 이것을 뜻하지 않은 횡재로 해석해 보자면 그 역시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운7기3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삶에서 그만큼 운이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운’이란 것을 주체로 보면 개입을 하는 것처럼 해석이 될 뿐이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보는 것이다. 70%의 확률로 운의 의존해서 사람의 인생이 흘러가게 된다고 보면 운이 아닌 요소 - 즉 사람의 의지 - 의 비율은 점점 작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나는 나의 의지에 따라 살고는 있지만 그 대부분의 윤곽은 이미 운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의지는 micro-scopic하게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정도란 것이다.

별 일 없다면 A라는 지역의 누군가의 마당에서 살다가 죽었을 개미를 비행기를 태워 바다 건너의 어떤 사막에 위치시켰다고 하면, 그것은 그 개미의 입장에선 절대로 예측 못했을 일이다. 다만 실험자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긴 하다. 새로운 땅으로 옮겨온 개미가 어떻게 살아나가느냐 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그 개미의 의지와 새로운 땅에서 일어날 타자들의 의지의 총합인 우연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서 종합하자면, 운명이란 것은 타자들의 우연과 의지의 총합이 나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그것이 내 인생의 대세를 결정하고 고작 나란 사람의 의지는 그것의 매우 작은 부분밖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에 있어 나의 환경이 가져다 줄 행/불행은 그동안 나의 행실의 선함과 악함과도 무관하고 타자들의 의지와 우연의 총합 - 운 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떠한 환경에서 태어날 지 결정할 수 없었던 것처럼. 살아오는 동안 일어났던 커다란 변화를 내가 컨트롤 할 수 없었던 것처럼.

뜻하지 않게 우연히 일어난 행복이 있었듯, 그렇게 불행도 일어나고, 그러나 대부분은 별탈없이 지내게 될 뿐이다. 가끔씩 나의 의지에 의해 큰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고, 타자의 의지에 의해 내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지금의 인생의 결과를 가지고 속상해 하지 말자. 어차피 내가 태어나게 된 것도 내 의지가 아니었고 그 누구도 비참한 인생의 결과를 맞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없다. 그래도 누군가는 비참한 말로를 걷고 그래도 누군가는 행복한 말로를 걷는다. 그 사람의 인생의 경로와 행실과 상관없이.

인과 응보가 반드시 내가 보는 현세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 얘긴, 우연히 수도 없이 거듭되다보면 결국 평균값으로 수렴하게 된다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거 왜 가르치고 그런 정의라는 게 있다고 왜 가르치는 것인가? 당장에도 인과응보라든가 정의/권선징악의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그냥 살자. 운명? 기왕이면 그 중에서 좋은 것들만 나에게 일어나길 바라기만 하면 내가 할 일은 다한 것이다. 더 이상 뭘 어쩔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