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 일하다가..

설날인데 (여기 날짜로 설날은 내일인데 한국 시간으로는 설날이다) 낮에 일하다가 짜증나서 적어본다.

회사에서 외부에 배포하는 메뉴얼을 작성하는 부서에서 이번에 나가는 제품에 대한 것을 작성하는 중이었던 모양인데, 수식을 제대로 적을 수가 없다며, 또 이 수식이 맞느냐 이게 아니냐 저게 아니냐, 또 자신은 수학 쟁이가 아니라는 메일을 받았다.

내 딴엔 내 오지랖으로 일을 편하게 도와주겠다며 별 방법을 다 알려줬지만, 못한다 소리만 내내 날아왔다. 새로 입사한 어린 친구인 것인가 해서 찾아봤더니 전혀 의외의 인물이 나타났다.

반도체 회사에서 메뉴얼을 작성하는데 수식 작성은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부터가 심상찮았는데. 더 많은 것을 생각해봐야 뭘 하겠는가 나만 답답할 뿐인데.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먼 길을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도 솔직히 전공분야의 논문을 열심히 읽게 되기 전까진 복잡한 수식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공학계통의 학생들이 하는 수학 1년 넘게 했고 전공과목이 온통 수학기호들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4년 내내 수식을 들여다보며 살았지만 그것이 복잡하단 생각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고등학생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가 이과를 지원하는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복잡하다/뭐하는 수식인지 모르겠다 했을 수식을 4년 내내 들여다보고 그것도 모잘라서 그것보다도 더 복잡한 수식을 거의 매일 보고 쓰고 했었으니까.

더구나 석사과정 때에는 한심한 워드 프로세서의 수식 편집기로는 제대로 된 논문을 쓸 수 없다고 LaTeX도 배웠다. 그렇게 하나 하나씩 마련한 도구들이 너무 많아졌다. 그렇다보니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에서 메뉴얼을 편집하는 사람이 공학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지고 있어야 할 이유도 없고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이 와서 일하려고 하지도 않을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또 그 사람이 수식을 어떻게 적는지, 또 LaTeX이란 게 뭔지 알 턱도 알 이유도 없지 않았을까?

대중적으로 히트를 친 상품이라든가 기술을 보면 ‘와 이런 걸로도 돈을 버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일반 사람들과 동떨어진 곳에서 너무 오래 머물고 있었단 사실은 모르고, 또 일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의 도움이란 게 별 것 아니란 것, 그들의 욕구/불편함을 개선해주는 기술이 뭔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나와 다른 사람들이 너무 ‘별 것 아닌’ 것들에 환호하는 구나 했을 뿐인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나와 같다면 얼마나 재미없을까? 인공위성이 지상에 레이저를 쏘아 산불을 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버젓이 ‘의원’나리 행세하 게 세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