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진 들여다보기..
on
뜻하지 않게 예전 사진을 들여다보는 경우가 1년에 한 두번은 생기는 것 같다.
- 카메라나 폰으로 찍었던 사진이 구글 클라우드로 흘러들어가서 1년 전엔…, 2년 전엔… 하며 메일을 보내 올 때
- 예전에 쳐박아 둔 박스에서 뭔가 찾다가 USB 메모리 같은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이 무슨 오래전에 바다에 침수된 보물선에서 문화재급 보물을 찾아낸 듯 신기할 때가 있다.
나에게 이러한 과거가 있었던가? ..할 정도의 것들.
동영상 클립의 경우엔 그 안에 내가 등장하고 있으니까 이것은 조작된 것이라거나 다른 사람의 기록이구나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기록을 의심할 정도로 살아가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잊고 지내는구나 하게 된다.
사람의 기억이란게 무엇에 의해서 오염되고 지워지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나의 과거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기록된 것들을 조작해놓은 것인지.
그안의 과거의 나, 그리고 그런 과거의 나와 함께하고 있던 사람들은 지금도 이 세계 어딘가에 살아있지만 더 이상 만나고 연락하지 않는다.
마치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는 사람들을 컴퓨터 화면으로 들여다본 것만 같다. 나는 그들과 소통할 수 없어도 그저 그들의 모습만 볼 수 있는.
‘인터스텔라’라는 영화에서 등장했던 그런 장면처럼 말이다.
아직도 다른 차원에서는 그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고, 현재의 내가 위치한 차원에선 극지방보다도 더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일부러 잊으려 하며 살아가고 있고 말이다.
더더욱 신기한 것은 그 당시의 나는 지금의 나의 시각으로 바라볼 땐 딱 이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쟤는 왜 저래??’
지극히 멍청해보이기 짝이 없고 그냥 차라리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로만 보인다. 물론 지금도 나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놓으면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다만. 그러나, 신기하게도 행복해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과거에 연연하면서 살지 말라는 말, 지금을 소중히 생각하고 지금에 집중하란 말.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나의 기록을 남겨두려하지 않는다. 혹여나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차원의 내가 들여다봤을 때 지금처럼이나 허튼 생각을 하지 않기 바라기 때문이다.
지금 타인의 시각으로 촬영한 나의 과거 기록들을 보면 당시엔 알 수 없었지만 그 사람이 뭘 원했고 뭘 원하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왜 서로가 힘들게 되었는지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실제로 그 사람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행복하고 싶었던 욕구가 너무나도 강했구나. 나와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구나.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난 그런 것에 벗어나있었다.
타인이 기록한 나의 모습은 늘상 그 현실에서 주변인처럼 존재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다른 차원/다른 세계의 사람이 되길 갈망한 것도 아니고 그냥 뭔지 모르게 그 전체 분위기의 맥락에서 보면 소외되어있다. 아니 소외되려고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게 나겠거니..할 때도 되었지만.
이제 1년 가까이 코로나 때문에 아무도 사무실에 나가지 않지만, 원치 않게 몇 번 사무실에 물건을 가지러 갔던 경우가 있었다.
누군가의 책상 위엔 회사 동료들끼리 찍은 사진이 올라가 있었는데, 그 안엔 내가 없었다. 사실 그 사진을 찍을 시점에 개인적으로 일이 생겨서 가지 못했다. 누군가가 이직을 하려던 참에 점심을 하던 때였던 것 같은데. 그 사람과 회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이 바로 나임에도.
예전엔 운명이라든가 삶의 흐름, 어떤 대세 이런 것이 강한 누군가의 힘에 의해서 결정지워지고 그에 속한 힘없는 사람의 힘으로는 그것을 거스르기가 힘든 것이구나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그냥 일어났을 뿐이고 그것에 어떤 의미나 흐름/맥락들을 맞춰보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나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이유는 나에게 그럴 (진정한) 의지가 없기 때문이지 내가 아닌 무엇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말해 지금의 나의 삶은 내가 진정으로 바라고 있던 나의 삶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그냥 흘러온 과거를 좋지도 못한 기억력으로 대충 꿰어보자면, 뭐 어차피 사람과의 관계, 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든, 또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든, 기대하면 기대할 수록, 반대로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던 대로 전부 나의 그런 생각과는 별개의 결과가 나왔던 것을 보면, 사람 그 자체가 하나의 random variable인 것처럼,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아무리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indepedent한 random variable 같구나 할 뿐이다. 수학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사람이 아무리 자신의 생각이 이렇다고 얘기를 한 들, 내가 100% 이해할 수 없고, 내가 상대방에게 아무리 알아듣기 쉬운 말로 이야기한 들, 그쪽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다 헛 것이란 말이다. 같은 차원의 세상을 살지만 머릿 속 생각은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해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과거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이 없는 것 보단 낫지 않을까? 이젠 좀 다시 제대로 기록을 해볼까? 그러면 새 카메라를 사야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