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 party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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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d party라는 말의 명목적인 의미는 어떤 사회적 관계(돈과 이익이 오고가는 거래라고 봐야지 싶은데)에서 거래의 쌍방이 아닌 행위주체를 3자, third party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third party는 제조사도 아니고 소비자도 아닌 제3자(?)라기 보단, major vendor가 되지 못한 vendor를 일컫는 말이라고 해석된다. 쉽게 말해 그 스스로가 제 1의 공급자가 되지 못하는 중소기업. 유사한 제품들을 내고 있는 다른 중소기업들과 경쟁하는 소규모 업체. 비하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소위 ‘듣보잡’.
사회생활을 얼마하지 않았던 시절엔 자신이 소위 네임드 회사에 다니고 있으면 스스로도 ‘네임드’가 된 착각을 하게 마련이라고 본다. 아쉽지만 그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집 자식이든, 학창 시절에 얼마나 대단했던 간에 그냥 듣보잡, 또 지금의 위치(?)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 간에 듣보잡이란 사실을 깨닫기 까진. 문제는 네임드 회사 안에서는 이런 착각을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또 그런 사람들이 소위 ‘고인물’이 되어있는 곳이라 그 조직에 속해있는 동안은 그렇게 단체로 최면이 걸려있는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율이 매우 높다.
어찌되었든 경제적으로나 생활하는 것으로나 그게 득이 되고 있다면 좋은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슬픈일일 수 있지만.
글쎄 이런 비유가 적당한 것일지 모르지만, 여기에는 일류 메이커를 추구하는 병(?) 아닌 병도 연관이 되어있다고 본다.
쉽게 말해서, 이름난 좋은 학교들을 졸업하고 그 안에서 선생님들한테 잘한다 인정 받으면서 늘상 1등만 해왔다면, 그렇게해서 사회에 진출했다면 그 스스로가 1등 메이커 제품(?)이란 인식이 강해서 오직 1류(?) 메이커의 제품만 찾고 먹고 입고 누리며 그렇게 살아간다. 이들한텐 지금 이 순간 어떤 것이 1등 메이커인가, 어떤 것이 1류 다운 것인가를 늘 인지하고 있어야 되는 것도 스스로가 부여한 큰 임무(?)이지 싶다.
그런 생활을 죽는 순간까지 지속할 수 있다면 엄청난 행운이지 싶은데, 그들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대부분 그들이 노력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당연한 결과라고만 생각할 뿐.
어찌보면 이런 인생은 매우 일관성이 있어서 잡초처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매우 부러운 생각이 든다. 살아가면서 이래도 된다, 저래도 된다, 뭐가 되든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이런 맘가짐으로 인생의 변화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렇지 않아도 별 달리 방법이 없는) 입장에선 말이다. 이들은 명백한 삶의 목표라든가 뚜렷한 지향점 (=1류, 네임드)이 있고 그 과정이란 것도 네임드 다운 것이어야 해서, 잡초같은 third party 인생에서는 허용되는 인생의 변화라든가 굴곡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들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든가, 뜻밖의 (그러나 누구에게나 닥치게 되는) 시련이 오면 일찌감치 생을 접어버리거나 하는 것이다.
hackintosh를 하거나 폰이라든가 라우터에 third party rom을 설치한다거나 하면 가끔 비슷한 생각을 한다.
“컴퓨터나 폰 따위 사람 좋으라고 있는 건데 난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건가? 그냥 네임드 제품을 네임드 한만큼 비용을 지불하고 사면 되는 건데.”
하는 생각들을 하면 이렇게 third party 스럽게 살아가는 게 좀 짜증이난다. third party 스러우려고 더 많은 정신력과 시간을 쓰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도 모르게 삶의 어느 시점부턴 그냥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나란 사람 자체가 듣보잡인데 내가 네임드 물건을 걸치고 하면 나도 네임드가 되는건가? 네임드한 삶이 살아지는 것인가? 어차피 네임드도 그들이 사업을 시작해서 한 동안은 듣보잡이었는데. 이렇게 하다보면 오히려 안티 네임드가 되어 어떻게 해서든 third party 제품만 고집하고 ‘안되면 고쳐쓰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난 이것을 third party 인생이라고 하고 싶은 것이다. 싸구려/비메이커/가성비 위주의/근본을 알 수 없는/그러나 (나에게만) 매우 쓸모있는 그런 것만 추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