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사람들과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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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더러 우울하냐고 물어보면 ‘우울하진 않은 것 같다’ 할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우울증에 빠진 것 같은 사람에게 ‘우울하냐?’ 라고 불어봐도 ‘우울하진 않다’라고 할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나더러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하면 그 사람이 우울한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인지부조화랄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서 그 원인이 있다고 난 생각한다.
현실이 이러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내적인 거부감이 서로 강하게 대립하는 상황이 오래 가고 있다고나 할까?
흔한 예로 오래 사귄 이성에게 차였을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한동안 괴로워하고 있는 상황처럼 말이다.
차였다는 사실은 인정해야겠는데, 그동안 누려왔던 즐거움/행복감/사랑받음(?)과 멀어질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된 상태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그래서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거니 스스로 잘못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인지,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 아닐지, 또 그런 미래에 대한 막연히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들이 함께 하는 그런 생각과다의 상황 말이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면 말이 안되는 이야기 같지만 이게 머릿속에서는 실제로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냥 현실을 있는 그대로 쿨하게 인정해버리고 별 것 아니야 하면 간단히 해결될텐데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강력한 의지력이 계속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랄까.
‘우울증이 그렇게 네 따위가 쉽게 정의내릴 만큼 생각만큼 간단한 문제냐?’ 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워낙 다양한 책과 썰이 돌기에.
그러나 내가 수도없이 보아온 사례는 대부분 그랬다. 어떤 이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스스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인정하지 못해서 겪는 갈등이 오래되어 정신적인 추진력이 모두 고갈난 상태 말이다.
어차피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왜 저 사람은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와 ‘저 사람에게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는 방법을 어떻게든 알려주면 도와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일반적이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한창 우울함과 씨름할 때의 나도 나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누가 물어보든 아니 내가 내 스스로에게 물어보든 난 현실을 아주 잘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하고 있지만, 마음속 어딘가의 강력한 그 무엇이 그것을 꾸준히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축구 경기를 하다가 주심의 판정을 인정할 수 없는 나머지 경기를 포기하고 경기장을 뛰쳐나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경기를 계속해서 뛰어야 하고, 그렇지만 주심의 판정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그래서 경기를 포기하지도 진행하지도 못하는 그런 대립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그게 점점 경기를 포기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기도 하고 어떻게든 경기를 뛰어야 겠다 하는 쪽으로 기울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보다 더 권위가 높은 주심이 나타나서 구원(?)해주길 기대하기도 하고 (그러나 그런 것 따위가 있을리가 없고), 전지전능한 새로운 플레이어를 내 삶에 투입해서 편파 판정으로 대세가 기울어진 판을 극적인 역전승으로 끌고 가고 싶은 맘 뿐이다.
글쎄 이 상황은 스스로를 위한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데 그 스스로 bug를 냈는데 그가 스스로 bug를 인정하지 않아서 그게 올바로 인지되어 수정하기 전까지는 기능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는 상태라고나 할까? 그 자신이 자존심(?)이 쓸데없이 세고 경험이 별로 없어서 상황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경우일 수록 이 대치기간이 길어지고 답답함은 길어져만 갈 뿐이다. 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세상의 흐름에 나를 맡길 수 밖에. 사람이란 존재는 너무나도 고맙게도 쉽게 망각하는 멍청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불킥할 순간은 금방 잊고 다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