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스 오븐을 사용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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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지어진 집으로 새로 이사를 하고 보니 예전 전기로 하던 것을 개스로 하는 식으로 생활스타일이 바뀌었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개스보단 전기로 가고 있는데 왜 하필 개스 스토브에 개스 오븐인가 (짜증나게) 했는데, 막상 개스 스토브를 다시 사용해보니 답답함 (개스 버너가 산소를 소모하다보니)은 좀 있더라도 화력이 훨씬 좋고 화력에 비해 비용이 작게 들어서 개스라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세탁기 건조기는 세일 기간에 전기 건조기가 먼저 품절되는 바람에 개스 건조기를 울며 겨자먹기로 주문해서 쓰고 있는데, 전기료의 부담이 없다는 장점은 확실히 있다. (지붕에 솔라 패널을 달아서 전기료는 거의 내고 있지 않지만) 팬대믹 이후에 찾아온 엄청난 인플레 덕택에 그 때 구입하지 않았으면 지금은 추가로 3-400불을 더 지불해야 되는 지경이 되었다.
빌트인으로 들어간 오븐이 전기와 개스 두 가지가 있는데 전기는 켜 볼 생각도 없었고 개스 오븐은 한번 써봐야지 했다.
전기 오븐은 재미삼아 여러 번 써본 기억이 있는데, 그냥 뜨거운 열기에 음식을 익히는 물건이구나 할 뿐, 또 엄청나게 많은 전류가 흘러서 벌겋게 달궈진 열선만 기억에 있을 뿐, 스스로 내부에서 공기를 순환시킨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오늘 개스오븐을 돌려보고 나니 그 시절엔 뒷처리에 대한 아무 대책없이 잘도 썼구나 했다.
개스 오븐도 별 다를 게 없지 싶어 버너를 켜보았는데 새 제품이라 갑자기 하얀 연기가 솟아 올라서 뭔가 사용법을 잘 못 알아서 문제가 난 것 아닌가 작게나마 놀랐다. 정상적인 반응이었다는 것을 누차 확인했다.
오븐을 사용해서 삼겹살 약간을 익혀보면서 내가 발견한 것은
- 개스 오븐이라고 개스에 의한 열로만 익히는 게 아니라 전기 (팬/라이트/제어장치) + 개스(버너)가 같이 동작한다. 전기 오븐
- 컨벡션 (대류를 일으키게 내부에서 팬이 도는 것)을 일부러 하지 않더라도 오븐 온도가 올라가면 내부에서 팬이 돌아서 열풍의 순환이 일어난다.
- 내부 개스 버너는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외부와의 기체 교환이 일어나는데, 그 때문에 개스 오븐으로부터 일+이산화탄소+음식이 조리되면서 발생하는 개스가 밖으로 나온다. 아무리 후드의 팬이 고성능이라도 온 집안에 음식 냄새가 가득하게 된다. 아무리 환기를 잘 해도 이 여운은 상당히 오래 남는다.
- 열풍으로 음식이 조리되기 때문에 일부러 뒤집거나 할 필요가 없다. 위험하게 괜히 오븐을 열어서 작업하거나 할 필요 없다.
- 빵을 굽거나 과자를 만드는 경우는 좋은 냄새가 나니 할만해 보이지만, 고기를 구울 땐 집안에서 피우기엔 좀 괴로운 냄새가 상당해서 실내에서 그릴링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 오븐을 껐다고 하더라도 내부 온도가 충분히 내려갈 때까지 계속해서 내부에서 팬이 돌아간다. 역시 전기적인 도움없이 동작할 수 없는 장치다.
- 기름이 사방팔방으로 튀고 조리가 매우 높은 온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금방 기름 때가 되어 눌러붙는다. 어차피 오븐을 식힌 후에 열심히 닦아 봐야 별 도움이 안되고 이렇게 생긴 누런 기름 자국의 청소는 대충 포기하고 사용하는 게 맞는 것 같다.
- 예열시간도 길지만 불을 끈 후에도 열기가 매우 오래 지속된다.
쉽게 말해서 개스로 덥혀진 열풍으로 밀폐된 (그러나 완벽히 밀폐되진 않은) 공간의 음식을 익히는 조리기구이다.
내가 이것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은 그동안 전기 오븐 사용법도 잘 몰라서 (특별할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벌어진 일이지 싶은데, 개스오븐까지 뒤적이게 된 것은 고기를 좀 깔끔하게 구워내는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알아보게 된 것이다.
생각보다 뒷처리가 간단할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고 (기름이 온 오븐 안에 다 튀게 됨) 외부에서 가져온 용기 (오븐용 스팀팬)를 가져다 쓴다고 뒷처리가 편하지도 않고 편할리도 없다.
그러니까, 이 물건은 열풍으로 음식을 익히면서 물과 기름을 그리들로 떨궈서 쉽게 말해 원재료에서 물과 기름을 빼내는 역할을 하는 장치라 원재료를 태우거나 하면서 음식물을 익히는 것보단 훨씬 세련된 방식이긴 하지만 간접적인 방법으로 화력을 전달하다보니 에너지 효율이 낮고 요리시간이 길어진다.
요리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스들이 외부로 방출되다보니 팬(후드)를 열심히 돌려야 되고 집안 환기를 잘 시켜야한다. 사실상 통풍이 잘 안되는 집에서 오븐 요리를 하겠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불안한 구석이 많은 것이고 좋은 결과도 얻기 힘들다.
장점을 꼽아보자면
- 매우 뜨거운 열풍이 오래도록 음식을 가열해서 익히고, 이 때 열풍이 음식물 표면의 온도를 크게 높이게 되므로 이 때 일어난 수분 증발 덕택에 겉은 타지 않으면서도 바삭하고, 수분 증발이 일어나지 않은 속은 촉촉한 (수분 증발이 내부에서부터 일어날 리가 없으므로) 결과물을 얻기에 좋다. 조리시간이 길고 소금을 발라서 물을 빼주거나 하는 쓸데없는 짓은 안해도 상관없다.
- 음식을 넣고 대략 20-30분 신경 끄면 된다. 그러나 조리시 발생하는 연기/냄새 때문에 신경을 끌 수가 없다.
- 음식은 철망 덕택에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열풍으로 조리되는 것이니까 뒤집어주거나 위치를 바꿔줄 필요가 없다.
- 화력은 매우 좋다.
소량의 음식을 조리할 거라면 에어프라이어가 시간/에너지 효율면에서 여러가지로 맞는 선택 같다. 오븐 자체가 큰 개스 버너이기 때문에 집안이 썰렁하다 싶을 때 쓰면 좋을 것 같지만 음식 냄새로 온집안을 난방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결국 환기 하느라 실내 온도가 떨어지는 일이 벌어진다. 한 여름에 개스 오븐으로 뭘 해먹는 것도 생각할 수가 없고.
여태 시도해 본 방법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집 밖에 그릴을 놓고 해먹는 일인 것 같다. 집안을 환기할 이유도 없고 적당히 팔다리가 (재료를 나르느라) 바쁘면 된다. 사용된 그릴과 그릇들만 닦아주면 되니 뒷처리도 별로 할 게 없고.
누군가 나 대신 다른 곳에서 조리하고 나서 열기가 살아있는 그대로 가져다 준다면 결과물에 있어서 그릴에서 익힌 것보단 분명히 좋은 것 같다. 골고루 잘 익어져있을 뿐 아니라 매우 바삭하니까. 튀김으로 할 것도 오븐으로 익히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조리 속도와 (기름에 의한) 식감 차이지 싶다. 기름에 튀기면 대략 5분이면 끝날 텐데 오븐이면 못 해도 20분은 필요하다.
오븐은 오븐 팬과 음식물이 올라가는 망(net)을 청소하는 것과 함꼐 오븐 내부에 튄 기름도 내부가 식은 후에 한꺼번에 닦아줘야 한다. 보통 일이 아니다. 아마도 이 집의 다음 사용자 (세입자가 되었든 다음 집주인이 되었든)가 이 개스 오븐의 제 2회 사용자가 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