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때 적어놓은 메모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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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우울했던 시기가 있었다. 매일 매일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작게 나마 언제 어디서든 메모를 할 수 있었던 것과 나 혼자 사용할 수 있는 짐이 있었다는 정도랄까.
지금도 가끔씩 그 시절을 떠올릴 때가 있는데, 역시 몹쓸 기억력이라고 그 힘들었던 시절을 기억하면서도 ‘그때가 좋았지…‘란 생각이 스물스물 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시절엔 어떻게든 시간이 빨리가면 좋을 것 같아서 해만 지면 잠들고 싶어 자리에 눕고 그래서 일찍 일어나게 되면 일어나는 즉시 집밖을 나섰다.
아쉽게도 그 시절에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메모를 적었던 것 같은데 막상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짧은 메모에서도 당시 심정을 알 수 있는 것들이 제법 있었단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다. 사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을 땐 메모를 적을 수도 없었으니까, 그냥 가만히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했거나 틈만 나면 사람 눈에 안 띠는 구석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으니까.
당시엔 담배를 정말 많이 피웠던 것 같은데, 지금도 그 때 메모를 읽으면 나도 모를 답답함에 그 이후로 끊었던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날 정도다. 가끔씩 그 시절 머물던 곳을 지나면 그 시절 괴로워했던 나와 만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뭔가 내 힘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오래도록 내 주위를 떠나지 않고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을 때엔 가슴한 가운데에 묵직한 돌이 들어있는 기분으로 살아가게 된다. 어차피 술을 마시든 뭘 하든 그 답답함이 가실 일도 없고 현실이 달라지진 않지만 뭐라도 하면 도움이 될까 싶어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웠다. 어떻게 해도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담배의 독성으로 스스로의 화를 삭이는 짓이라고나 할까?
당시엔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열심히 봤다. 드라마도 열심히 보고. 억울하고 답답하고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로 주인공이 힘들어하는 이야기의 영화/드라마는 정말 열심히 봤던 것 같다. 별 것 아닌 종교적인 이야기들도 뭐 대단한 것이라도 있는 양 매일 같이 듣고 또 듣고 했다.
지금 당장 그때 즐겨보던 책과 드라마/영화를 보라고 하면 지겨워서 볼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그 때는 내가 그전까지 평소 좋아하던 것들은 들여다볼 수도 집중할 수도 없었다. 역시나 그 우울함의 정도라는 것이 사람의 인격을 바꿀 정도의 것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모든 의욕/호기심/취미 따위의 것들은 머리에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리 날씨가 좋은 날이라도 그냥 온 세상이 회색일 뿐이다. 아니 차라리 그렇게 회색으로 스모그에 휩싸여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멍하게 앉아서 마치 흙탕물에 몸을 담구고 있는 기분으로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한다. 모든 게 힘들고 괴롭고 떨쳐버렸으면 하는 기분이다.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벗어났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모든 게 전부 다 서서히 변해갔기 때문에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 어떤 방법으로 좋아지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이래서 다들 ‘시간이 약’이란 말을 하는 모양이긴 한데, 내가 지금 내 주변에서 그런 상태에 머물고 있는 사람을 본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시간은 흐리게 되어있고 나 자신과 세상도 어떻게든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니까 결국엔 좋아질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