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용서해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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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게 뭐랄까 멍청하게도 별 것 아닌 것에 인생을 바칠듯이 살기도 하고 별 것 아닌 명분에 당장의 모든 것을 건 듯 살아가는 것 아닐까 싶다. 나만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생각해보면 난 첫 직장에서 바닥에서 시작해서 뭔가 열심히 하다보면 (아니 그냥 내가 뭔가 대충하는 것을 그냥 봐 넘기질 못한다) 100% 인정을 받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욕 먹을 일은 없겠지, 일단 이렇게라도 잘 살아보자 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어이없는 일로 엄청나게 욕을 먹은 적이 있고 내가 잘하고 못하고와 상관없이 그런 일이 계속 됨에 따라 모든 희망을 잃고, 그러니까 나란 사람은 뭘 해도 도움이 안되는 구나/내가 열심히 일을 제대로 하건 말건 욕을 먹을 놈은 늘상 욕을 먹게 되어있구나, 지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나에게 감히 그런 짓을 했던 이들을 늘 머리 속에 담아놓고 틈만 나면 그 인간들에 대한 생각을 했고 누군가 물어보면 쉴새없이 불만을 늘어놓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중에 어느 날 갑자기 그 사람들을 떠올리다가 한참 동안 웃음을 참지못해 실성한 사람처럼 웃어댔던 적이 있다. 바보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이런 저런 것들을 따져보니 적어도 내가 크게 잘못하지 않는 이상엔 그 사람들보단 적어도 10년 이상은 더 오래 살 수 있구나 했던 것이다. 원래 나보다 다들 적어도 15살 이상은 많은 사람들이었고 운이 좋은 덕택에 어차피 업계 꼭대기까지 올라간 사람이지만 최소한 내가 그가 죽어버린 세상에서 하루 이상은 더 살 수 있겠다 생각하니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 나를 붙잡고 피곤하게 만들었던 그들이 몹시도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살면서 한 때 별 것 아닌 군대/회사놀이 상 서열이 높다는 이유로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았다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수도 있을테고 살다보니 그 관계가 역전되는 경험을 한 사람도 많을 거라고 본다.
난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내놓고 비난한 적이 없는데 어찌보면 그런 적이 없으니 다른 누군가도 나에게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든 비난 받을 수 있고 내가 하지 않은 잘못으로 욕을 먹기도 하고 그런 거다. 아무리 최선을 다 했어도 미친 듯이 까일 수 있는 것이고. 다만 문제는 그것을 참아넘기지 못하겠는 것이고 그 비난에 동의할 수 없고 나의 선의를 그런 식으로 밖에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자체에 분노하는 것이다.
요 며칠 누군가 자신의 실수로 뭔가가 잘 되지 않은 것을 (그래서 받은 스트레스를) 나한테 풀어넘기는 경우를 봤다. 지금은 얼굴도 보이지 않는 인간들과 글자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에 뭐랄까 삶이란게 다 허상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 글자는 어떤 실체에 의해서 쓰여졌지만 내가 받아들이는 것은 고작 글자에 불과함에도 마치 실체가 있는 무엇인가가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대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는 말이다. 나 역시 그 반응이 좋을 리 없다. 자신의 실수로 귀한 내 시간을 바닥내고 있음에도 미안하거나 고마움을 표하긴 커녕 스스로의 잘못을 내내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차피 많이 산다고 해도 100살을 넘기기 힘든 시절에 스스로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대단한 일을 해왔다고 한 들, 죽고나면 그 누구도 기억해줄 리 없고 (기억해 줄 사람들마저도 다 죽게될테니까), 죽은 후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그러니까 인간이란 자체가 그 정도로 무능력하고 그들의 삶자체가 허무한 것인데 아주 짧은 시간동안 살아있다는 행세를 하려고 그렇게 살 이유가 있는 것인가 할 뿐이다.
지금 이해하기로는 자신이 무엇인가 대단한 일을 한다는 생각에 잠도 자지 못하고 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을 두 어깨위에 짊어지고 애를 쓰고 있는데 어디 저 따위 능력도 안되는 인간이 나타나서 내 일을 모두 망쳐버리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지 싶다.
피곤하면 쉬어야 되고 스스로의 정신적/육체적 능력에 벅차는 일을 한다 싶으면, 그래서 스스로를 더 이상 제대로 컨트롤 못 하겠다 싶으면 그 일을 내려놓으면 된다. 이게 어디 말처럼 쉬운 것인가 할 수 있지만, 시작이 어렵지 내려놓으면 금방이다. 마치 자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이 세상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쓸데없이 일에 과몰입하면 발생한다.
어차피 내가 없어도 이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 괜히 과로 + 과몰입으로 타인에게 상처주는 일 하지 말자. 용서? 용서 따위가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나에게 상처를 준 이가 덧없는 세상 먼저 하직하면 고소한 생각이 들긴 하겠지만, 나 역시 얼마 안있다가 사라질 존재니 피차 더 낫거나 덜할 게 없는 거다. 어차피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돌아가긴 나름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영화를 누렸거나 반대로 내내 흙탕물 뒤집어쓰기만 했거나 매한가지다.
현실에 너무 과몰입하지 말자는 게 내 평소 지론이지만, 또 그렇게 몰입하지 않으면 인생은 너무 지루하다. 도무지 ‘도’라는 것을 진작에 깨닫은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인생이 지루해서 어떻게 견뎠을까 싶기도 하고. 그냥 살아있는 순간은 아름답고 위대하고 멋진 것인데 별 것 아닌 것들이 여태 망쳐놓도록 내버려 둔 것에 분노해야 맞지 않을까? 스스로의 인생이 망쳐졌다고 남의 인생까지 망치는 분별없는 것들과 어쩔 수 없이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스스로의 ‘운 없음’을 탓해야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