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프레스를 깨먹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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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에서 프렌치 프레스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부분 네스프레소/큐릭 팟을 사다가 먹는다.

난 왜 이걸 쓰냐고? 커피 메이커 (그라인더/드립퍼 일체형)가 갑자기 고장나서 어떻게 커피를 마셔야 하나하는데 때마침 집에 굴러다니던 프렌치 프레스를 발견했고 그래서 며칠 만들어 마시다보니 이게 훨씬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 더 구입해서 회사에서도 열심히 사용했다. 그라인드 커피와 뜨거운 물이 항상 준비되어있고 한꺼번에 많은 양의 커피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면 정말 이 만한 게 없다. 아직도 이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테고, 이걸로 커피를 만들어먹으면 ‘그게 뭐하는 거냐?’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는 듯 하다.

그렇게 프렌치 프레스를 어쩌다보니 정말 열심히 써왔고, 알고보니 내가 사용하던 것들이 모두 모두 Bodum에서 만든 것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사용해 오는 동안 오늘 난 그 4번째 비이커를 깨먹었다. 나도 참 멍청하지. 한번 깨먹었으면 두번째부턴 뭔가 다른 방법을 생각했었을 수도 있는데. 그러니까 스테인레스 용기로 된 것을 샀으면 되는 걸.

그런데, 어떻게 깨먹었냐고? 모두 다 용기를 씻다가 깨먹었다. 커피가 약간 기름지면서 그 분말들이 비이커의 안쪽면에 쉽게 달라붙는데 잘 닦아내려면 힘을 줘야하고 그 과정에서 깨먹기도 하고, 잘못해서 주위 물체와 부딪쳐 깨지기도 하고. 열에는 강할지 모르지만 모양새를 볼 때 입구 부근은 충격에 약해서 쉽게 깨진다.

이 비이커는 얇은 파일렉스로 되어있어서 매우 가볍고 실험실에서도 사용하는 용기이니까 그만큼 내화학성도 좋다. 나름 재고처리 할 때 2 묶음으로 싸게 구한 것이긴 하지만 나름 모양도 이쁜 편이고. 덤으로 하나가 더 생겨서 누군가에게 ‘줄까?’ 했더니 예상대로 자긴 (그런 원시적인 기구는 모르겠고) 네스프레소를 쓴다기에 말았다만.

어쨌든 깨진 비이커만 다시 구입해서 쓰면 되는데, 비이커만 따로 구입하는 비용이 새 스테인레스 제품을 사는 것과 같은 걸 보고 접었다. 아마도 비이커의 원가는 얼마 되지 않지만 그 유통경로가 (수요가 많지 않으니) 비용이 제법 드는 경로이겠지 한다.

뭐 좀 새삼스러운 것이긴 한데, “beaker”라는 게 “beak”가 달린 것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됐다. 그러니까 ‘새의 부리 같은 게 달린 것이란 거’다. 발음상 ‘big’과는 달라야 하니 모음이 약간 길어져야되고 그리서 우리는 ‘비이커’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그런데 beaker가 되면 big과 차별화되어야 할 일이 없으니 짧게도 발음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알아들을 수는 있으니까).

어쨌든 이제 beaker가 있는 프렌치 프레스는 안녕이다. 스테인레스 용기에 커피가 어떻게 착색이 될지는 봐야할 일이지만. 적어도 이 스테인레스 프렌치 프레스가 깨어지지 않은 한 계속 쓰게 되지 싶다.

P.S.: 스테인레스 프렌치 프레스 정말 좋다. 스테인레스 보온병처럼 더블월로 되어있고 무엇보다 깨질 위험이 없어서 세척하기가 아주 편리하고 완성도도 좋고 밀폐성도 좋고 맛으로 따지면 분명히 파일렉스 유리가 좋을 것 같지만 스테인레스도 그런 면에서는 우수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다만 좀 거슬리는 것은 필터용 망과 스테인레스 용기가 맞닿는 부분이 있다는 것? 소량이겠지만 금속가루가 갈려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걸핏하면 비이커가 깨지는 문제라든가 세척하기 불편한 것, 또 쉽게 식어버리는 문제를 생각하면 훨씬 좋다. 가격 또한 만족스럽다는 것은 여기에 비하면 덤으로 좋은 점이지 싶다.

전에 쓰던 프렌치 프레스에 비하면 필터성능도 더 좋아서 확실히 프레스를 할 때 뻑뻑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