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올해 첫날 받은 새해 인사..
on
뭔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해서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으면 온종일 멍때리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때가 온다. 지금은 딱 그런 시절 아닐까 싶다.
사실 내가 무슨 질문을 나에게 던졌는지 기억을 못하는 게 더 신기한 노릇이지만, 뭐 이런 게 한 두 가지일까 싶지만, 그 수 많은 질문 중 하나가 충격을 준 것은 맞는 것 같다. 근 2주가 넘게 계속 해서 멍 때리고 뭔가 정리를 해야하는데 하는 생각만 하고 (앉아)있으니까 말이다.
연초가 되어 여기 저기서 내가 받은 연락들은 대개 한결 같다.
- 나에게 관심/돈을 줘
- 내가 한심한 처지가 되었으니 나에게 도움을 줘
- 내가 나에 관한 근황을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알려주었으니 네 것을 줘
- 내 문제를 네가 풀어줘야겠어
이것만 봐도 내가 얼마나 호구로 살아가고 있는지 딱 알 수가 있다. 여태까지 호구였으니까 호구에게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새해인사에 붙여서 보내는 거다. 어차피 이런 이들의 인간관계라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없으면 곧바로 끊어질 거라 내가 답을 하지 않으면 곧 끊어질 것이 분명하다.
내가 유지해온 인간관계라는 것은 그렇게 보험 들어주는 것과 같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고나 해야할까?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가입해서는 꼬박 꼬박 보험금을 열심히 부어놓아봤자 결국 그 돈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돌아가게 되거나 또는 내가 죽고 나야 돌아가는, 다시 말해 인간관계 유지를 위해서 어딘가에 끊임없이 donation을 하고 있는 것이랄까?
매년 나와 관련된 보험의 수혜자를 갱신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내가 죽게 되서 돌아가는 돈이란 게 막상 그 수혜자에게 돌아간다고 한들 무슨 도움이 될까, 은행계좌에 적혀질 숫자가 좀 늘어나는 것 말고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보험 사기를 치는 이들이 사망이벤트 직전에 보험을 그렇게 많이 들어놓나보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뜻이 아니라 내가 죽어서 얼마의 보상을 받게 될 사람 역시 그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나에 비해 그리 오래 살 사람이 아니고 돈으로 재미를 얻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얼마간의 돈을 희생해서 약간의 정신적인 안정을 위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마치 은행 계좌에 쓰여있는 숫자처럼 이나. 실제로 나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만 다들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보이니까 나 역시 가지고 있어야 될 것 같은 그런 것일 뿐. 일년 내내 연락하지 않을 사람들로 빼곡한 연락처 앱처럼. 연락 한 번 주고 받지 않는 의미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페친의 숫자처럼. 만일 그게 없으면 마치 속옷을 입지 않고 밖에 나간 것 같은 결핍감을 느끼게 될 것 같은.
여기에 추가로 회사 사람들에게 날아오는 것들은 새해에도 변함없이
- (사실 내가 해결해야 되는 거지만 귀찮으니까) 니가 해 (줬으면 해)
대개 ‘귀찮으니까’를 ‘니가 권한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니면 ‘니가 더 잘하니까’라는 말로 바꿔서 쓰는 방법도 여전하다. 지겹지도 않냐?
그래서 어쩌라고? (그럼 늬들 올해 월급도 나한테 넘기든가).
나야 말로 정말 요양이 필요한 상태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멍때리고 놀아봤자 새해를 위한 재충전이긴 커녕 머릿 속에 생각+분노만 늘어났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