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한 5년쯤 전인가 게임 콘솔을 사봤다.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 내가 하려고. 엄밀히 말해서 PUBG를 하려고 샀다고 보는 게 맞겠다. 당시 사용하던 PC는 내장 그래픽 코어를 쓰고 있어서 도저히 실행할 수가 없었고 미니 베어본이지만 필요한 기능은 전부 가지고 있어서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급 그래픽 카드를 사는 돈이면 콘솔을 마련할 수 있었다가 맞을 듯 하다. 지금은 비교도 안되게 비싸졌지만.

아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실망했달까. 어려서도 콘솔로 게임을 거의 한적이 없고 콘솔용 게임 컨트롤러에 별로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PUBG를 이런 컨트롤러로 하기 너무 불편했고 무엇보다 게임의 로딩시간이 너무 길어서 사실 게임을 하는 시간의 많은 부분이 로딩시간으로 버려졌다. PUBG에서 잘 해봐야 5-6분 생존했다 치면 대략 10분 정도는 장면 전환을 위한 로딩시간으로 다 날아갔다. 사실 좀 제대로 하려고 했다면 시간을 들여서 내부에 HDD를 SSD로 교체했어야 되는 거다. 그래도 대기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본다만.

어쩔 수 없이 PC도 업그레이드했다. 2010년 이후로는 그래픽카드가 어느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한참 유행하는 게임들을 할 수 있었는데 미니 베어본이나 CPU쪽에만 힘을 준 랩탑만 사용했다보니 아예 시작조차 할 수 없었기에 손을 놔 버렸던 터라 GPU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확인도 해볼 겸.

마찬가지로 고가의 그래픽카드를 올렸지만 이번엔 PC가 엄청난 열을 뿜었다. 제법 고가의 GPU이니까 4k 60fps도 무난하겠지 시도해봤는데 GPU가 full load로 올라가면서 열과 소음이 심해서 FHD로 내려봤지만 역시나 한 두시간 게임을 하면 소음과 발열이 엄청났다. 솔직히 미니베어본이나 랩탑을 중간 이하의 load로 굴리고 있던 입장에서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으니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게임 자체에 적용된 기술이나 현실감은 매우 뛰어났는데 로딩하는 데 마찬가지로 많은 시간이 들었고 게임 자체를 즐기는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그러니까 전체적인 게임의 완성도라든가 타격감 같은 것들은 매우 훌륭했지만 로딩속도가 너무 느렸다는 게 짜증의 원인이었다. 대충 5-6분 플레이하자고 들락 날락하면서 10분을 날리고 있는 지경이니.

M1 Mac을 쓰면 사실상 VM으로 윈도우즈를 올리지 않는 이상엔 대부분 x86용으로 발매되는 인기 게임들을 할 수 없다. M1 pro나 max쯤 되야 VM에서 그나마 쓸만한 화면을 볼 수 있는데 요새 게임들이 차지하는 용량이나 로딩속도를 고려하면 여전히 쉽게 올리게 되지 않는다. 아니 사실 몇 주전에도 연말을 맞이하여 놀고있던 x86 데탑에 게임을 몇 개 올려봤는데 그 어마어마한 용량과 로딩속도에 길겁하고 좀 하다가 모두 삭제했다.

이렇게 나도 시대의 흐름에 밀려버리는구나 하고 있다. 그 기나긴 대기시간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기다리면서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여전히 많지 않은가? PUBG에서 제법 나이가 드신 분들을 많이 봤던 걸 기억하면, 결국 내가 나이와 상관없이 나만 늙어버렸다란 말이 되지 싶다. 난 로딩시간이 긴 게임은 속터져서 못한다. 인터넷 속도 느린 것도 못 참는데 한국을 떠나온 뒤로는 이 부분은 완전히 포기한 상태라 어떻게든 견뎌내고 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