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을 집에서 재워보기...(3)

이 ㅁㅊㄴ이 내 집에 와서 첫날 밤(?)을 보내게 되었다. 집을 좀 치워놓고 잠을 자려고 보니 아무래도 찜찜해서 이 ㅁㅊㄴ이 새벽에 깨서 무슨 짓을 하게 되더라도 잘 알아놔야겠다는 심산으로 거실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기로 했다.

잠이 좀 들었나 싶었다가 대략 새벽 2시쯤 깼다. 아무래도 이 ㅁㅊㄴ이 자다가 깼는지 주방에 있는 냉장고를 열어 먹을 게 뭐가 있는지 이것 저것 뒤져보더니 이내 팬트리에 가서 불을 켜고 그안에 뭐가 있는지 유심히 살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거실 불은 꺼 둔 채로 팬트리 안에 켜놓은 조명이 그 ㅁㅊㄴ의 얼굴에 반사되고 있었는데, 이 모습은 흡사 집안에 들어온 도둑을 지근거리에서 관찰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원하던 게 없었는지 맥주 몇 개를 꺼내서 도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밤새 잠이 오지 않았는지 내내 방에서 뭔가를 하는 소리가 들리다가 차고에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소음 때문에 잠이 들었다 깼다 하면서 내내 깊은 잠이 들 수 없었다. 역시나 ㅁㅊㄴ이 아닐 수 없다. 6시가 넘어서 밖이 밝아오니 슬슬 이곳에 올 때 가져온 자신의 자전거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이젠 한 숨 돌리고 잘 수 있겠다 싶었다.

어차피 이 인간은 자신의 행적을 나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는지 언제 돌아오겠다는 말도 없이 나갔다. 그렇다고 내가 집에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뭐한 상황이라서 혹여나 밖에 나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자가 돌아오기 전엔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하니까 내가 반드시 돌아올 시간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여러 번 메신저로 언제 돌아올 거냐 물어봐도 역시나 묵묵부답이다. ㅁㅊㄴ인거다 역시나. 대충 오후 12 혹은 1시 경에는 돌아오겠지 이해하고 오전에 인근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갔다.

내가 외출하고 있는 오전 10시반쯤인가 연락이 왔다. 집에 돌아왔단다. 어딨냔다. 집에 들어갈 수 있게 번호 키를 알려달란다. 언제 돌아올지 알려달라고 했는데 왜 답이 없냐고 했더니 집에 다 도착하고나서야 알았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전에 이런 저런 곳을 구경하면서 폰으로 엄청나게 사진을 찍었던 모양인데 내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는데, 그냥 무시했던 것이 맞다. 그렇다 ㅁㅊㄴ인거다. 찐으로.

부랴부랴 집으로 들어갔더니 새벽에 냉장고에서 꺼내간 찐 계란들 때문에 낭패를 봤단다. 왜 그게 반숙인지 얘기를 안했냔다. 깨먹으려고 벽에 계란을 쳤더니 퍽하고 터져버렸단다. 누가 ㅁㅊㄴ 아니랄까봐. 땀이 범벅이 되어있기에 세탁해야 할 게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더니 자긴 특정 세제로 세탁해야 하는 옷들이 있는데 그게 없냔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몇 개 안되는 옷가지를 세탁기를 두 번 돌리고 세제도 다르게 해서 빨아달라는 거다. 좀 기가막힌 일이지만 또 미리 말해주지도 않았으니 황당하기도 하지만 그냥 수용하기로 한다. 씻고 잠시 쉬라고 하고 잠시 분노를 식히기 위해서 근처 커피집에서 쿨다운 하러 나갔다.

점심을 먹어야 되는데 왜 집에 없냔다. 냉장고에 있는 고기를 꺼내서 주방에서 구워먹고 싶단다.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안심이 되질 않아서 부랴부랴 집으로 들어갔다. 돌아와서 보니 내가 소리 없이 들어왔다며 ‘ㅆㅂ’하며 깜짝 놀란다. 이미 맥주를 서너개 마신 상태였고 자기가 육포를 사오지 않았으면 크게 굶었을 거라며 나를 타박한다. 기가막힐 노릇이다. 그렇게 배가 고팠으면 나가서 햄버거라도 하나 사먹으면 될 일 아닌가? 난 속 없이 그에게 말없이 고기를 구워다 줬다. 내가 뭘 어떻게 해서 자신의 식사를 준비하든 신경이 쓰이질 않는지 내내 폰과 테블릿으로 다음에 달려야 할 자전거 코스를 열심히 연구 중이다. 누가 ㅁㅊㄴ 아니랄까봐.

점심을 먹이고 졸려하는 것 같기에 얼른 가서 쉬라고 하고 세탁기를 돌려놓고 회사일을 했다. 대충 두시간쯤 하고 있었나보니 코를 너무 심하게 골고 있는지 집이 무슨 핸드폰 진동 울리듯 흔들렸다. 때마침 세탁이 끝난 결과물을 방으로 가져가보니 예상대로 크게 코를 골면서 자고 있기에 그나마 이게 어디냐 싶어 또 밖에 나갔다. 어차피 시끄러워서 일할 분위기도 안되니까.

근처 친구와 저녁을 먹고 나니 또 연락이 온다. 이디 나갔냔다. 한시간쯤 후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자기가 알아서 햄버거를 사먹겠다 어쩐다 하는 것 같아서 그러나보다 했다. 웬걸 집에오니 또 저녁 안주고 어디갔냐는 투의 반응이 날아온다. 찐으로 ㅁㅊㄴ이다. 진작에 주객이 전도가 된 것도 모잘라 나는 객에서 종의 수준이 된 거다. 밖에 나가서 햄버거를 사먹으려 했으나 밤이 너무 어두워져서 (대충 여름날 저녁 6시면 대낮같이 밝을 수 밖에 없다) 무서워서 못 나갔단다. ㅁㅊㄴ이다. 고기를 또 구워줄까 했더니 라면이 드시고 싶단다. 그냥 얼마전에 해놓은 인도 카레가 있으니 그걸 먹으라고 준비해주겠다니 자긴 그런 걸 먹어본 적이 없는데 먹으면 토하는 그런 맛 아니냔다. 아놔 정말 ㅁㅊㄴ이다.

대충 저녁을 먹이고 나니 술 먹으면서 같이 놀아달란다. 그래도 먼곳까지 여행와서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겠지 하는 쓸데없는 측은지심이 살아나면서 그러자고 했다. 이 ㅁㅊㄴ은 때를 만나기라도 한 듯 맥주를 사정없이 쳐 마신다. 온 세상이 불만투성이인듯 ‘ㅆㅂ’없이는 작문을 할 수 없는 듯 귀에 피가 나도록 짜증나는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다. 정말 이렇게 한시간만 더 앉아있다간 죽을 것만 같다. 두어시간 들어주고 나니 피곤했는지 또 졸기 시작한다. 방에 가서 쉬라고 했다.

거실에서 쪽잠을 자며 집안을 모니터링 했는데, 오늘은 뭔가 급한 게 없었는지 새벽에 분주하게 돌아다니거나 하진 않았다. 밖이 밝아오니 또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데 그 안도감에 이내 잠시 잠이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