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을 집에서 재워보기...(2)

한국에서 막 날아온 지인이 자기 짐을 들고 집에 쳐들어오고 있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받은 뒤로 졸지에 난 이 집의 주인이 아닌 머슴이 되어버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놀라운 것은 자신의 짐을 들여놓고 하는 그 짧은 와중에도 짐을 넣어두는 창고로 있는 공간들의 문도 죄다 열어보았다는 것이다. 닫혀있던 창고 문들이 모두 열려져있는 것을 보고 너무 황당해서 차마 입을 닫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자. 내가 아는 지인이 내 집에 방문했는데 방문하자마자 문이 달린 곳이란 곳은 주인의 허락도 없이 다 열어보았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ㅁㅊㄴ이 아니고선 감히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일이다.

도착하고 나니 급하게 저녁에 고기와 술을 먹어야겠다며 근처 코스트코에 가자고 재촉한다. 좀 늦게 가도 되니까 잠시 휴식을 취하라고 집에 있는 먹을 거리 몇 가지 놓아주며 발코니에 나가 있는데, 발코니 앞에 바라보이는 광경을 바라보며 전망이 거지같다는 소릴 거침없이 내뱉는다. 정말로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ㅁㅊㄴ의 단계는 진작에 뛰어넘은 듯하다. 이 지역에서 이렇게 넓게 앞이 트여있는 집도 그리 흔하지 않다. 소위 부자동네의 산비탈에 있는 집들이 아니면.

차를 몰고 근처 코스트코에서 고기와 술을 사려고 갔다. 미국과 한국의 코스트코는 어떻다며 캐셔들이 어떻게 다른지 또 고기는 뭐가 맛있는지 자신이 어떤 술을 좋아하는지 큰 소리로 썰을 풀어댄다. 랍스터는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거냐며 도대체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냐며 큰 소리로 이야기한다. 일일히 대꾸해주기 슬슬 짜증이 날 것만 같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팔고 있는 게 아니냐고 했다. 여행 중에 몹시 피곤했던 것은 알겠는데 왜 이렇게 계속해서 떠들고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그냥 내가 참아야지.

근처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로 떠들며 이야기 하니 개중 한국인으로 보이는 듯한 사람들이 말을 알아들은 듯한 눈치를 준다. ㅁㅊㄴ이다. 어딜가나 풀볼륨으로 떠들어댄다. 작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도 뭐가 그리 흥이 난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아마도 오랫동안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기 보단 자신의 생각을 누군가에게 엄청나게 배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또 그 깨닫음으로 누굴 가르치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모양이다. 연신 설교 훈계조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저 사고 싶은 물건이나 고르라고 했는데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느라 정신이 없다.

몹시 피곤했던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꾸벅 꾸벅 졸고 있다. 돌아가는 길의 도로가 최근에 공사를 했던 모양인지 차선 모양이 바뀌어져 있었다. 그새 새로 포장하면서 차선도 새로 그엇는지 하얀색의 페인트가 몹시나 도드라졌다. 차선이 바뀌어있는 것을 보고 잠시 혼잣말을 하던 나에게 ㅁㅊㄴ은 ‘자주 오는 곳이라며 왜 차선 바뀐 것도 몰랐나’며 한 소리 한다. 뒤 이어 자신이 경험했던 미국의 교통상황이라든가 자신의 경험담을 또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래 너 ㅁㅊㄴ 맞아. 내가 잘 못 했어.’

‘난 이렇게 ㅂㅅ 같이 늙지 말아야 할텐데.’

도로에 보이는 차들을 바라보며 미국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차량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누가 현지인이고 누가 방문자인지 알 수가 없다. 대로를 달리고 있는 차들의 차종 따위에 관심없는 나는 무슨 소릴 하는지 신경도 쓰이질 않아서 ‘피곤해 보이니 들어가면 얼른 씻고 잠이나 자라’고 했다. 오늘 첫날인데 뭔가를 즐겨야겠다며 뜨거운 밤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치는 것도 잠시 또 다시 꾸벅 꾸벅 졸고 있디. 글쎄, 시작부터 강한 쇼크로 시작한 내 입장에선 없는 수면제라도 만들어주고 얼른 이 ㅁㅊㄴ을 재우고 혼자 쿨다운했음 하는 바램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줄린 얼굴로 얼른 고기를 굽고 술을 대령하란다. 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내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어떻게 해야 미국에서 재밌게 지낼 수 있을지 이것 저것 서칭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거의 이 사람과 눈을 마주쳐 본 적이 없다. 내가 저녁을 준비하거나 차를 운전하거나 자신에게 줄 것들을 고르는 동안에도 핸드폰을 거의 얼굴에 대고 있다시피 할 정도로 과하게 빠져 있다. 누가 ㅁㅊㄴ 아니랄까봐. 이 집엔 자신과 나 둘 뿐인데 나 혼자 저녁을 준비하고, 또 먹은 그릇들을 치우고 설거지하는 동안 내내 그렇게 폰만 쳐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끝도 없이 늘어놓고 있는 거다.

저녁을 준비해 앞에 놓아두니 준비했던 설교를 늘어놓는 인간 마냥 입이 쉬지를 않는다. 나는 보다 못해 ‘너무 빡세게 살지 말고 릴렉스 하면서 사는 게 좋지 않겠어요?’ 했다. ㅁㅊㄴ이 아니라면 이게 무슨 뜻인지 쉽게 알아들었을텐데. 그런 말엔 아랑곳 없이 수도 없이 많은 사회/주변사람들에 대한 불평, 그리고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며 어줍잖은 인생 조언을 계속해서 늘어놓는다. ‘귀에 피가 난다’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란 생각이 번뜩 들었다. 정말로 너무 듣기 싫은 소리를 끝없이 듣고 있으려니 정말로 귀에 피가 날 지경이다.

내게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인지 이 ㅁㅊㄴ은 이내 자리에 앉아서 꾸벅 꾸벅 졸고 있다. 다시 한번 씻고 자라는 권유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서 날아온 인생 멘토(?)로서 아직 하지 못한 말들이 아주 많이 남아있다는 여운을 남기며 사라진다.

욕실에서 샤워를 하면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분노 가득한 ‘ㅆ’ 자음으로 시작하는 감탄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그래도 곧 잠들고 나면 나에게 평온함이 찾아오겠지 하는 바램으로 저녁 밥으로 차려놨던 것들을 모두 치우고 낮에 미쳐 하지 못했던 일들을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첫날, 그것도 시간으로 따지면 고작해야 4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나름 나도 한 인내력한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는데 겨우 이 정도에서 무너지면 나로서도 참으로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맘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들이 무엇이었든간에 모두 싹 잊고 힘을 내야 한다.

(이후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