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B 충전기 만들기: 못쓰는 아답터를 활용해서..

맥북을 열심히 쓰게 된 이유로 USB PD 충전기를 한 개 구입했다. 맥북에 들어있는 커다란 충전기 말고 휴대용으로 쓰려고. 그런데 이렇게 저렇게 사용하다 보니 고출력의 충전기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어서 아이패드에 들어있던 걸 그대로 쓰기도 하고 회사에서 받은 선더볼트 독을 사용하고보니 충전기가 필요없어져서 새로 들어온 두 개의 충전기는 그냥 놀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USB-A 혹은 C단자가 달린 충전기들은 워낙 용도가 많아서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라이트닝 케이블 또 USB C 케이블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런 저런 이유로 연결이 그다지 깔끔해지지 못하고 늘상 지저분하기도 하고 집안에 충전용 스테이션처럼 되어있는 곳에는 늘 이런 저런 케이블이 널부러져있고 해서 별로 보기 좋지 못하다.

또 막상 충전기의 성능을 보면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보여지지 않는다. 무슨 말이냐면 각 포트마다 출력으로 나와있는 부분의 정격만큼 충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5V, 2.5A라고 적힌 단자에서 충전을 해보면 5V 출력에 고작해야 7-800mA로 충전이 이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안드로이드폰에서는 이런 포트에 물리면 ‘slowly charging’한다는 말이 뜬다. QC 단자에 물려야 고속 충전이 된다고 나오는데 대개 이런 경우에는 1A가 넘는 출력이 나오는데, 그 말은 어차피 QC 단자가 아니면 (그러니까 QC용 power control chip이 안들어가 있으면) 제 아무리 출력이 크다고해도 그렇게 충전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USB 충전용 스펙은 fragmented 되어있어서 QC, USB PD 등등으로 나뉘어져있고 요샌 특별히 안드로이드폰이 아닌 이상엔 대부분 PD가 먹히는 세상이 되었다. 어차피 나처럼 이런 스펙 따위에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하면 상시 충전해야 하는 기기에 그냥 고정전원을 물려서 연결을 깔끔하게 할 수 있을지, 간단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만 관심이 있다면 그냥 답은 하나로 가는 것 같다.

살면서 여러 가지 기기들을 어쩔 수 없이 구입하고 퇴역시키고 하다보면 원치 않게 DC 아답터를 상당히 많이 갖게 되는데, 출력이 5V로 되어있는 것이라면 (아마도 대개 정류기 + 7805가 박힌 게 일반적이다) 그걸 그대로 USB 충전기로 활용이 가능하다. 여기까진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5V 아답터의 플러그를 mini USB라든가 USB C 플러그로 바꿔놓으면 충전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까지 말이다.

문제는 아답터 출력을 USB 케이블의 핀에 어떻게 연결하냐가 되겠다.

USB케이블은 대개 4가닥의 선으로 되어있다. 5V/GND 그리고 직렬 데이터 통신을 위한 선 2가닥 (D+/D-)으로 되어있다. 색으로 보면 빨간/까망이 5/0V 전원 핀이 되고 녹색/흰색이 데이터 핀이 되기도 하고. 이것은 케이블을 까보면 알게 된다. 케이블 마다 색이 약간씩 다르기도 하지만 그 구분은 확실한 편이다. 전원과 연결되는 케이블이 좀 더 굵게 되어있고 빨간색이 아니라 주황색으로 되어있기도 하고 그렇단 말이다. 정 궁금하면 플러그 단자와 케이블간에 테스터로 확인을 해보기도 하면 되지만. 대부분 그 개념 (빨강/까망(혹은 하얀)의 전원, 나머지 뉴트럴한 색의 데이터핀)에서 벗어나진 않는다.

각각의 핀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는 충전기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선 아무 상관없는데, 단, 이 2가닥의 데이터 핀이 서로 short 되어있어야 하고 5V 혹은 GND와 연결되어있지 않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스펙으로는 이 두 가닥이 short되어있고 5와 0볼트 사이의 2V 정도 전압으로 되어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최소 저항 2개가 들어가야 되니까 그냥 floating으로 놔두는 거다. 다시 말해 둘을 쇼트 시키되 그냥 그렇게 놔두면 되는 거다.

일반적으로 이 둘을 쇼트시키지 않으면 요즘 기기들은 아무런 충전도 되지 않는다. 또 이 둘을 모두 5V 단자에 연결해버리면 완전히 legacy charger로 인식하는 것인지 대략 300mA 정도만을 가져간다. 또 이 둘을 GND로 연결하면 충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데이터 핀 2가닥을 서로 쇼트시키고 나머지 2개의 단자와는 연결하지 않고 그냥 돠둬야 대략 700-800mA의 충전이 일어난다. 물론 5V 아답터의 출력이 이걸 견딜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또 아답터의 겉에 써있는 정격을 모두 믿어서는 안되겠지만 7805가 박혀있는 아답터라면 대략 1-1.5A는 나간다고 믿으면 되니까 무리 없이 안드로이드폰/블투스피커/애플기기들을 충전시킬 수 있다.

나는 집에서 뒹구는 5V 아답터 4개를 모두 충전기로 바꿔서 쓰고 있다. 아주 편해졌다. 이들은 이동식 기기랍시고 충전하게 되어있지만 사실상 고정해놓고 쓰는 기계들에 물려놨다. 말이 충전기지 그냥 전원인 셈이다. 이를테면 안드로이드 폰인데 탁상 시계처럼 쓰고 있는 아이라든가, 라스베리파이 전원 (4는 좀 전력을 제법 쓴다), 거의 붙박이로 쓰고 있는 블투 스피커, 또 고정된 위치에서 쓰고 있는 USB 전원을 쓰는 탁상시계.

일단 4개를 USB 충전기 없이 DC 아답터로 떼우고 나니 다용도 USB charger 한 개와 소형 범용 차져 한 개가 남아서 다른 기기들에게 할당이 가능했고, 덕택에 이들과 물려쓰던 충전기들은 어쩌다 오는 손님들을 위해 내어주기도 하고 집안에 있는 진정한 포터블 기기 (에어펌프, 애플 기기들)를 위해 사용한다. 물론 여행용 차저를 하나 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