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첫 포스트: 갑자기 서울 가게 됐다.

4월이라 April이라고 적고보니 나도 모르게 “April come she will”이란 노래의 제목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방송에서 들었던 노래인데 그 당시에도 오래된 노래였으니까 참 오래된 노래겠다 했는데, 찾아보니 2023년 기준으로 보면 대충 60년이 된 음악이다. 뭐 어쨌든 이 노랜 차분한 느낌의 어여쁜 노래임은 확실하다.

봄이 되면 뭔가 맘속으로 바래왔던 일이 나도 모르게 이루어질 것 같고 절대로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인연도 생겨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봄도 그렇고 4월도 그렇고 그때 들던 기분도 그렇고 참 좋은 계절이었구나 싶다.

어쩌다 개인적인 용무로 4월 한복판에 서울에 다녀오게 되었다. 그것도 작년 서울에 다녀온지 6개월도 되지 않아서. 그것도 급히 결정해서 3일만에 떠나야하는 여행이 되었다.

이곳은 어쩌다 급격한 저온 현상 때문에 2월에 피던 벛꽃이 4월 중순에야 만개하는 지경이지만, 이미 서울은 만개한지 한참이라 그다지 별로 즐길 일은 많지 않겠지 싶지만 온종일 서울 시내를 걸어서 돌아다니고 싶다. 작년 다녀올 때도 열심히 걸어서 돌아다녔지만 이번에도 역시 남는 것은 열심히 걸어다니며 구경하는 것 아닐까 한다.

어쩌다 내게 서울이 ‘여행지’가 되고 여행에서 뭔가를 남겨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지만 막상 서울에서 street photo를 찍겠다고 카메라를 꺼내드는 일이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다.

DSLR이 보급되던 시절에도 꺼내들기 쉽지 않았지만 그보다 제법 작아진 미러리스 카메라가 보편화된 지금에서는 개인의 ‘초상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늘다보니 더 어려워졌다. street photo를 찍는데 피사체가 되는 사람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지만 그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이 동의를 해줄까? 그것은 거의 0%에 가깝다고 본다.

결국 여행을 하고 나서 남는 사진들은 뭐랄까 당시의 감성을 담은 풍경사진이 고작이다. 운이 좋으면 노을을 담기도 하고, 또 운이 좋으면 기대 이상의 실루엣 사진을 건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뭔가 사람들이 숨쉬는 그런 사진은 얻기 어렵다. 카메라는 그 옛날 아무 생각없이 셔터를 누르던 때에 비하면 엄청나게 좋아졌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피사체의 범위는 극도로 좁아졌다.

디지털 카메라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매우 소수일 때, 매우 작은 CCD 센서를 달고 있던 Nikon의 CP990 같은 것들을 가지고 다니던 시절의 자유로움이 그립다. 물론 그때 찍은 결과물들이 지금의 카메라들이 가져다주는 결과물에 비하면 한참 보잘 것 없다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요샌 늘 주위가 분산된다고 해야 되나 뭔가를 하다가 또 다른 뭔가가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곧바로 점프했다가 한참 뒤에야 복귀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렇게 여러 번 분기를 하다보면 본래 뭘 하려고 했던 것인지 재복귀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는 일도 흔하고.

나도 모르게 그 옛날 사진들을 분류했다. 신기하게도 EXIF info를 뒤져서 시간별로 배열하는 일을 하나도 해놓지 않았다. 최근 몇년간 찍어댄 사진들만 빼고.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Ai가 사진을 자동으로 인식해서 이런 저런 장르로 분류하는 것도 perl script 돌리듯 간단해지지 싶다만.

이게 늙는 것인가보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