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 다스리기..
on
한때 엄청나게 불안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너무 불안해서 일상 생활이 쉽지 않았던 때다.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어떻게 해야할지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없었고 매일 매일 벌어지는 일에 놀라고 실망하고 좌절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어떻게든 불안의 정도를 낮춰보기 위해서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시도해봤다.
과연 나의 불안의 근원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으로 파고 내려가보니 결국엔 ‘(뭔가 엄청난 생활고에 놓여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란 사람의 존재의 안녕이 굉장히 위협받는 상황에 처해져 결국엔 비참하게 죽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 모든 불안이 생겨난 것으로 추정이 되었다.
여기에 아무리 부정적인 가정을 더하고 더해도 내가 우려하는 상황은 벌어질 확률이 굉장히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뭔가 잘못될 것이라는 예감이 불안감을 계속해서 가져왔다. 신기한 것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 중 하나가 나란 사람이 저지른 엄청난 실수/불운/불행에 대해서 (관심이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손가락질/비웃음을 살 것만 같고 그것이 엄청난 치욕스러움을 가져다 줄 것만 같단 것이다. 어찌보면 난 그것이 죽음보다 더 참아내기 어려운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니까 뭔가 낮은 수준의 도덕적/윤리적/경제적 상태로 굴러떨어져서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해야할까?
한편 생각해보면 살아가는 동안 창피하고 괴로운 일이 끊임없이 연거풔 일어나서 너무 힘들다고 느낄 땐 ‘차라리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끊없이 들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나란 사람은 참으로 모순된 존재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치욕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될까봐 (그래서 종국엔 비참한 죽음을 맞을까봐) 불안해하고, 또 지금의 삶이 단지 남들보기에 전혀 자랑스럽지 못하고 치욕스러우니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거다. 도무지 나의 삶의 고통을 결정하는 요소에 왜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타인의 시선/관심’이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없단 것이다.
그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는 그 ‘타인’이란 것은 가상의 존재이지만 아마도 그것은 늘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날 관찰하면서 나를 비웃고 쓸데없이 엄청나게 높은 도덕적 기준으로 늘 날 압박한다. 이 백해무익한 존재만 무너뜨리고 나면 난 예전 보다 훨씬 더 내 삶을 더 진하게 느끼며 아니 즐겨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데 정말로 오랫동안 끊임없이 날 괴롭힌다. 이 유한한 이 세상에서의 내 삶을 끊임없이 제약하려든다.
사람은 매우 짧은 시간 자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고 죽고 나면 살아 있는 동안에 이루려고 했던 것은 모두 의미없는 것으로 돌아간다. 되려 삶의 모든 순간은 비록 그 삶의 주인공이 그것을 고통스럽다고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오직 나만이 가진 고유한 것이고 찰나와 같은 짧은 시간동안만 누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지극히 소중한 것이다. 죽고 나면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고통도 사라지겠지만 더 이상 누릴 수 있는 삶 또한 없어지는 것이니까 더 이상 삶 때문에 괴롭다고 징징거릴 수도 없다.
살아가는 동안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원치않은 불행을 당하는 것 또한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내게 닥칠 수 많은 불행들이 내가 저지른 업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내게 아무런 잘못이 없었음에도 갑자기 불치의 병을 얻어서 사망하게 될 수도 있다. 선의를 가지고 살았지만 그것이 악의를 가진 것인 양 받아들여져서 끝없이 비난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누구도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놓고 비웃을 수도 없고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다. 하물며 나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을 내안의 감시자 또한 멀쩡한 판단력이 있다면 나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적어도 내 안의 감시자만이라도 나에게 호의적인 ‘내 편’으로 돌릴 수 있다면 이 값진 삶을 보다 더 알차게 누릴 수 있을텐데. 원인 모를 불안함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넌 곧 죽게 되고 어차피 죽게 되면 모든 게 다 끝이야. 네가 추구하는 그 지극한 가치라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 누구도 관심 갖지 않고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아. 그 쓸데없는 것에 소중한 내 삶을 온전히 가져다 바치지 말자.’
잘되면 잘되는 대로 못 되면 못 되는 대로 그냥 살면 된다. 살 수 있는 게 어디냐. 아니 그 끊임없는 감시자의 정신적 학대를 받아오면서도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정말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 거야. 원치 않게 죽게 되더라도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면 된다. 그래도 그 소중한 삶을 지금까지 잘 누려왔다는 게 어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