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ffee를 미친 듯 마시고 있다..

커피 마시는 게 나름 modern한 사람이라면 늘상 해야 하는 일처럼 받아들여진지 오래 된 것 같다. 사실 pourover coffee를 직접 whole beans를 사다가 갈아서 해먹는 것이 나름 ‘애쓴다’ 하던 게 대충 20년 전이었는데 지금은 집집마다 espresso machine이라든가 특별한 grinder를 가지고 있는 게 흔한 광경이 되었으니까.

어쨌든 나도 기껏해야 커피 메이커 (그러니까 pourover coffee를 만들어주는) 가지고 있었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Nespresso를 구입해서 마실 땐 그러나 보다 하던 시절을 거쳐 너도 나도 에스프레소 머신을 구입하던 시절을 한참 지나 하나 갖게 되었다. 그것도 모잘라서 그라인더도 하나 구입하게 되고. 남들 다 한다는 라떼아트도 해보고 있고 말이다.

그러다보니 하루에 마시는 커피의 잔수가 못해도 5-6잔을 넘어서고 있는데, 그럴 수록에 더 decaf를 마시게 되고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신기하게도 뭔가 색과 냄새를 느낄 때 마다 엄청난 ‘발암물질’의 느낌이 풍겨오지만 그렇게 그렇게 되는 거다.

사실 whole beans를 보거나 coffee ground를 보면 나름 습한 구석이 있고 아무리 잘 보관된다 하더라도 곰팡이가 생기거나 미생물이 번식할 것 같은데 그래도 오래 두고 잘도 먹는 것을 보면 신기할 때가 있다. 그 몹쓸 것들이 다 커피 향에 가려져서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더구나 이걸 가지고 곱게 갈아서 에스프레소를 해먹을 때를 보면 잘게 부서진 가루들이 진한 맛을 내는데, 사실 그것은 쓴 맛이 맞고 그 쓴 맛은 커피를 볶을 때 커피콩이 탄 맛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오래된 커피를 마시면 사실 커피의 고소한 맛과 향은 온데간데 없고 신 맛과 쓴 맛만 남아버리는 느낌인데, 더 오래되면 뭔가 기름에 쩐 것 같은 느낌과 맛이 있고 오직 쓴 맛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이게 괜히 기분 나쁘게 쓴 맛을 주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스스로 몸에 해로운 물질을 알아채고 거부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일텐데, 커피를 마시는 것에 길들여지다보면 커피의 고소한 향에는 덜 민감해지고 쓴 맛에 길들여지다보니 더 자극적인 향과 쓴 맛을 찾게 되어 오히려 해로운 것에 가까와 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더구나 그라인더를 바꾸고 커피를 마셔본 뒤로는 어디 가서 엉터리로 만들어 파는 커피는 맛과 향이 엉망이라 도저히 마실 수가 없게 된다. 그 정도로 맛이 별로인 거다. 사실 아무 가게에서나 파는 coffee ground를 사다가 pourover coffee나 간신히 마시던 시절엔 느낄 수 없던 것인데 뭐랄까 입맛도 까다로워지는 것인가, 아니면 더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지는 것인가 하게 된단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고작해야 맛본 커피가 인스턴트 커피 혹은 그것의 믹스에 불과하던 시절엔 실재의 커피향이라는 것도 전혀 모르다가,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해서 출처를 모르는 어딘가에서 만든 커피 그라운드를 가져다 잘 우려내서 좀 마셔보고 ‘아 커피는 이 맛이야’ 하던 시절을 넘어, 마침내는 원두를 사다가 이름모를 그라인더에 갈아보며 ‘아 이게 커피의 세계인 거지’ 하다가, 더 나아가 출처를 모르는 곳에서 갈아낸 어떤 커피 그라운드를 가져다가 에스프레소를 내려보며 ‘커피는 역시 에스프레소지’ 하다가 결국엔 그라인더까지 구입해서 정량을 지켜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며 ‘역시 커피의 세계는 멀고도 험하구나’ 하게 된 거다.

이제 남은 것은 동네 코스트코에서 파는 모든 에스프레소용 커피빈들을 사들여와서 갈아보고 내려보며 ‘이 맛이 진짜일까?’ 하는 것일텐데, 그렇게 따지고 보면 ‘진짜’라는 것이 무엇이고 ‘가짜’라는 것 무엇인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이걸 또 인생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몹시나 할배스러운 짓을 하겠구나 하는 예감이 든다.

뭐든 내 삶의 순간 순간을 즐겁게 해 주었던 것이라면 그것은 ‘진짜’인 것이고, 그 모든 것들이 내게서 멀어지게 되고 나서는 한 때의 좋은 ‘추억’으로 남을 귀한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누군가 ‘가짜’ 혹은 ‘쓰레기’라고 하더라도 정말로 소중한 것들이었음을 깨닫게 되겠지 싶다. 뭐랄까 앙증맞은 ‘이탈리아 에스프레소의 깊은 맛’이란 광고 문구를 달고 있을 ‘커피 믹스’까지 내겐 소중한 기억이고 내 인생의 짧은 순간을 호기심과 작지 않은 감동으로 기쁘게 해줬던 고마운 것들인 거다.

그러니까 추억으로 남아봐야 기억의 저편을 더듬게 될 뿐인 것이지만, 지금 당장 느껴볼 수 있는 것이라면 더욱 소중하고 값진, 그리고 훌륭한 것이니까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단 생각에 도달하게 되는 거다. ‘이게 부족하고 저게 모자르고…’ 떠들어봐야 그 자신을 더욱 ‘전문가’처럼 보이게 하긴 커녕 그 사람의 인생이 아직도 편식하는 ‘불만투성이’의 어린 아이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에 나름의 아쉬움으로 느껴지듯이 말이다.

즐겁게 이 모든 인생의 ‘진짜’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다는 것에 정말 무한히 감사하고 행복해야 할 것임을 또 깨닫는다. 그것이 하찮은 나의 지식과 경험에 비추어 형편없든 아니면 기대를 뛰어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