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음악 키보드..

MIDI connector/cable을 쓰는 기기가 사실상 이 세상에서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 이젠 MIDI라는 단어를 쓰기 좀 어정쩡해졌다. 물론 MIDI 기기가 완전히 멸종된 것도 아니고 일부의 사람들은 이것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그 전송속도라든가 효율이 USB 1.0에 비해도 턱없이 모자르고 이미 USB 3.0 gen2가 흔해진 시절이니까 그렇다.

그래서 이 물건을 구입하려고 검색을 할 때도 music USB keyboard 이런 식으로 검색해야 된다. 나타나는 물건들은 제법되는데, 평을 빌자면 Akai 혹은 Arturia의 제품을 구입하라고 한다. 그게 그래도 최소한의 키감은 준단다. 사실 velocity sensitive한 key가 무의미한 것이 건반이 너무 작아서 이걸로 제대로 된 어떤 연주를 하기가 어렵고, 어차피 real time으로 연주를 잘 해내더라도 결국 velocity를 후처리로 만줘주는 것은 국룰이니까 무의미한데도 그런 기능이 있는 것들을 구입하려고 보니 또 예상보다 지출이 늘어나게 된다.

컴퓨터 키보드의 경우 스위치의 수가 훨씬 많고 복잡하지만 10불을 하지 않는 세상에서 고작 24 키 + 몇 가지 rotary encoder로 되어있는 물건을 100불 가까이 지불하며 사야된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차라리 USB 키보드를 하나 더 달테니 그걸 music keyboard로 인식해서 돌아가는 DAW가 있었음 한달까?

물건을 all black으로 주문해서 받고보니 작고 예쁘장한 것이 역시 기능/가격을 떠난 뭔가 심리적인 즐거움을 준다. ‘이걸로 뭔가 좋은 음악을 만들어봐야지. (아무도 들을 사람 없고 나 혼자만 듣고 기록으로 남길 거지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거다.

난 이 세상의 모든 취미는 그것을 즐기는 사람의 개인적인 어떤 자기 계발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프로라든가 유망주와의 실력차는 태어나면서부터 엄청나게 벌어져있기 때문에. 아니 아예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정해져서 태어나는 것이라 괜한 꿈을 꾸면서 스스로를 육체적/정신적으로 괴롭힐 이유가 없다. 그냥 내가 좋으면 아무리 한심한 실력이라도 좋은 거다.

유명한 스님한분이 이런 말씀을 했다고 한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그냥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태어난 건데 괜히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서 인생이 힘들어지는 거라고.

뭐랄까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한 번 더 힘들어지겠지만, 그냥 그렇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래서 어쩌라고?’ 한번 날려주면 그만인 거다. 별 것 아닌 존재로 태어났으니까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 최대한 재밌게 살다가면 그뿐. 미래를 위해서 혹은 사후를 생각해서 뭘 남기겠다는 허황된 생각을 버리는 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포함해서) 몸과 마음에 참 좋다.

작은 키보드를 하나 샀으니 그에 걸맞는 멋진 음악 못 만들어도 만들겠단 생각으로 폼만 잡아도 충분하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