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new day..
on
Sting의 노래 중에 난 이 노래도 참 좋아한다. 가사가 지금의 내 기분과 잘 들어맞아서 더 그럴 지도 모르겠다.
뭐랄까 사람이 사람을 떠날 때 (나의 기준으로는) 그 사람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이 사람은 절대로 안돼..’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어떤 쓸데없는 고집 (너는 이래야만 해), 괘씸함 (네가 감히)이 작용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대방이 사과를 한다거나 잘못했다고 빈다고 해도 일단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으면 상대방이 붙잡으려고 애쓸 수록 잘못했다고 애원할 수록 더 강한 반발심이 솟아오른다. 잘못했다고 울고 빌고 하더라도 그게 충분히 전달이 되지 않았다 싶으면 그 강한 분노와 배신감 내지는 적개심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러니까 상대방의 마음을 돌리겠다고 맘 먹었다면 맥락과 상관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했다고 울고 빌고 해야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시시비비는 그렇게 화해가 된 다음에 가려도 되니까.
대개 어떤 다툼이 생긴다는 것은 서로가 자신에게서 잘못한 점을 발견할 수 없고 상대방이 날 아프게 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쉽게 떠올릴 수가 없다. 오직 자신의 상황을 항변하는 지경에 이르게만 되는 거다. 자신도 아프니까. 그런데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먼저 상대방의 아픔을 먼저 살펴야 한다. ‘왜 둘이 싸웠는데 왜 나만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하면 결과는 파국이다. 그러니까, 다음과 같은 입장이 되어버리는 거다.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렇게 순수하고 착한 날 힘들게 할 거면, 그런데도 내내 자기만 옳다고 할 거면 난 너 같은 사람 없어도 상관없어..’
이런 분노의 마음이란 거다. 그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화가 난 것은 맞는데 상대방이 가버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의 아픔 따위 살펴줄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와 같이 있을 이유가 없다, 그래야 나의 가치를 지킬 수 있을 것 같단 확신이 있어서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이 완전히 굽히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잘 해보자고 빌기 전까진 난 한발도 물러설 수 없다는 말과도 같다.
누군가와 오래 사귀다보면 충돌이 생기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그런데 그 순간엔 이것을 너무나 크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너무나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기대가 크기 때문인지 좀처럼 화가 가라앉지 않고 뭔가 떨어져서 생각하는 여유마저 완전히 바닥나고 내내 분노속에서 시간을 흘려보내거나 새로운 사람을 찾는 게 낫겠다는 비현실적 결론에도 아주 쉽게 도달한다.
내가 누군가를 아주 어렵게 어렵게 만나게 된 것이라면 새로운 사람은 그 사람을 만났을 때의 수고의 2배 4배만큼 들여도 갑작스럽게 만나지지 않는다. 지금의 모든 아픔이 전부 가시고 그렇게 많은 시간의 2배 4배가 지나가도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누군가를 만나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다면 앞으로도 그럴 확률은 매우 높을 수 밖에 없다. 누군가를 누군가로 채우겠다는 게 분노 속에 들어앉아있을 때는 매우 쉬운 일 같이 생각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다들 쉽게 이야기한다. 이 사람 떠나가면 새로운 사람 오니까 걱정 말라고. 내일의 해가 뜬다. 글쎄. 지금의 사람을 내 곁에 둘 때도 엄청나게 많은 고민을 했을텐데
이렇든 저렇든 누군가를 열심히 붙잡아서도 잘 안됐다면 이 노래의 가사 내용대로 내 마음속의 시계를 0으로 돌려놓고 새로 시작하는 거다.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이다. 뭔가 오래 같이 있었던 것을 갑자기 아무 것도 없었을 때로 돌아갔다고 생각하고 새로 시작하는 것. 모아둔 주식을 전부 팔아서 써버리고 0인 상태로 시작하는 것. 내가 가졌던 모든 것 한꺼번에 탕진해버린 뒤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새로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