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걱정하세요? 기도할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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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회사를 출퇴근하던 길에 어쩌다 잠이 들지 않으면 가끔씩 눈에 띄던 어떤 교회에 붙어있던 간판에 쓰여있던 글귀가 떠올랐다.
‘왜 걱정하세요? 기도할 수 있는데…’
그 땐 마음이 많이 힘들었던 시절이라 늘상 지나다녔던 길이었음에도 유독 그 순간 그 글귀가 갑자기 확 와닿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게 하느님께 빌면 되는 걸 왜 능력도 없는 내가 그걸 해결하겠다고 끙끙 걱정하고 있을까? 나도 참 답이 없다.’
어차피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내 걱정 리스트에서 놓아버려야 내가 편안해지니까 이 말은 우리의 정신 건강에 도움을 주는 말임에는 확실하다. 내뜻대로 되든 그렇게 되지 않든 잘 되길 바라며 맡겨버리는 것이니까.
그런 기억 때문인지 비가 조금씩 내리며 제법 쌀쌀한 느낌이 감도는 저녁 무렵에 차를 몰고 들어오는 내게 갑자기 이런 말이 떠올랐다.
‘왜 (쓸쓸하고 춥게) 혼자 계세요? (우리 같이 있으면) 행복할 수 있는데..’
사람과 사람이 같이 살을 맞대고 체온을 나누고 있으면 머리 속 온갖 시름이 다 날아간다. 사랑의 말을 주고 받으며 누군가를 품에 안고/누군가의 품에 안겨있으면 그 편안함/행복감에 취해 황홀한 기분까지 느껴진다. 내가 과연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아니 이렇게 쉬운 행복을 왜 모르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이런 게 쉬운 사람은 한없이 쉬운 일이지만 내 곁에 아무도 없는 사람에겐 또 한없이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같이 있을 때의 행복의 크기에 비하면 정말 말도 안되게 작은 문제를 부여잡고 서로 다투고 고집하다가 결국 혼자 남는 것을 택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부질없는 욕심 따위 던져버리고 같이하던 사람에게 다시 돌아가면 그 역시 따뜻하게 화답하며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텐데, 그래서 다시 서로 같이 하게 되면 그 ‘심각해 보이던’ 모든 문제들이 다 부질없고 깨알같은 어리석음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게 될텐데.
그러나, 스스로 상대에게 상처주려 내뱉은 말들을 어떻게든 지키내기 위해 그렇게 그렇게 사람들이 서로 등을 돌리고 혼자임을 택한다. 그렇게 자초한 외로움에 시달린다.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면 외롭지 않았을텐데 하는 부질없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 광야로 나아가신 예수님처럼 되려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쓸쓸한 고행을 택한다. 얼마안되는 허물따위 통크게 용서해주고 서로 사랑하고자 하면 이 세상은 그냥 따뜻하고 기쁨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공간일 뿐인데.
상대방에 대한 그 손톱만한 욕심 때문에 우린 서로 각자의 어둡고 축축한 느낌의 폐가 안에 웅크리고 들어가 앉아 상대방을 원망하며 이 세상을 그저 정이 매마르고 몹시도 쓸쓸한 공간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거다.
‘왜 혼자 계세요? 우리 같이 있으면 행복할 수 있는데…’
‘왜 혼자 드세요? 우리 같이 먹으면 즐거울 수 있는데…’
‘왜 혼자 춥게 계세요? 우리 같이 부둥켜 안으면 따뜻할 수 있는데…’
이런 말들 다 부질없다.
쓸데없는 고집/욕망에 사로잡인 사람들에게는..
상대방에게 비굴하게 사랑을 구하느니 어둡고 음침한 굴속에서 몸과 마음의 추위를 견뎌내다가 곧 다시 따스한 봄이 오기만을 기다릴 뿐.
그런다고 진정한 내 마음의 봄이 올까? 또 그렇게 누군가를 좋아했다 밀쳐냈다 하면서 살아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