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 놓을 거울 두 개를 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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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누군가의 책상에 거울이 있는 걸 보면 (보기와는 달리) 무척 외모를 가꾸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러던 내가 책상에 놓을 거울 두 개를 샀다. 하난 집에 하난 회사에 가져다 놓으려고.
왜? 내가 날 관찰하기 위해서다.
얼마전 회의실 카메라에 잡힌 나의 모습을 보고 뜨악한 기억이 있다. 한마디로 ‘저 아저씨 표정이 왜 저래?’
그래도 내가 아주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 기분/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반영된다는 거다. 쓸데없이 정신분석이고 심리분석이고 할 필요없이 그냥 내 얼굴을 거울로 보면 되니까.
사진 찍기 위해 억지로 폼을 잡거나 조금이라도 나아 보이려고 힘쓰는 내 얼굴이 아닌 문득문득 그냥 평소의 내 얼굴을 보려고 거울을 산 거다. 그렇게라도 사랑해주려고.
그렇게 수시로 관찰해주면 내가 어떨 때 편안한 표정을 짓는지 어떨 때 괴로운 표정을 짓는지 잘 알 수 있다. 말을 하고 있을 때의 입모양 그 때의 감정상태. 카메라로 녹화해서 보면 좋겠지만 여전히 번거롭기 때문에.
보기 싫은 얼굴 표정이 튀쳐 나오는 상태라면 그 때의 감정을 그대로 관찰하면 된다.
내가 뭘 그렇게 싫어하는지 내가 먼저 알아차리게 되면 적어도 날 어떻게 돌봐야할지 감이 잡힐테니까.
신기하게도 나는 내가 뭘 싫어하는지, 어떤 것에 강하게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지도 모르고 살아왔다.
그저 나란 사람의 표정은 늘 좋지도 싫지도 않은 상태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란 사람은 어떤 것에 대한 호불호가 대단히 명확했고, 그게 전부 표정으로 드러났다.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또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아도 내가 어떤 기분으로 이야기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던 거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니까 차마 말할 수 없었지만 얼굴로는 전부 다 이야기하고 있던 거다.
그래서 나는 거울을 보고 내게서 왜 그런 안좋은 감정이 생길 수 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알고 그런 나를 달래주겠다는 뜻이다.
소위 그 ‘내 마음 속의 아이’가 내 표정으로 자신을 내보였다면 난 이번 기회의 그 ‘내면의 아이’와 만나 놀아주면서 치유를 할 수 있을지도.
요새 바라보는 내 마음 속 모습은 뭐랄까 수십년동안 잡초들이 무성해지도록 방치해둔 벌판 같은 느낌이다.
잡초들이 이미 무성하게 숲을 이뤄버린지 오래라 전부 다 불태운 뒤에 새로 경작하는 게 빠를 지경인 상태다. 못 해도 한달이상은 그렇게 태워야 될 정도로.
그렇게나 사람의 마음속을 홀랑 불태워서 리셋 시킬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새롭게 꽃을 심는 것은 고사하고 굵은 덩쿨처럼 되어버린 잡초들을 제거하는 것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테니까.
어쩔 수 있나? 이렇게라도 고쳐가며 살아야지.